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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완전히 반대였던 남녀... 이별을 되돌리고 싶은 남자

[넘버링 무비 105]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기억하니?>

18.10.08 17:33최종업데이트18.10.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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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기억하니?> 스틸 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사랑이라는 감정과 추억은 서로 뗄 수 없는 존재다. 사랑은 분명히 현재에 존재하지만, 점차적으로 쌓여가는 추억 속에서 그 무게가 더해지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랑이 끝나는 지점의 이별 또한, 이별 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추억이라는 공간 속의 기억들에 붙잡히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플래시 포워드 작품으로 선정된 발레리오 미엘리 감독의 영화 <기억하니?>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사랑과 추억,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경험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가꿔 나가는 연인의 삶은 슬프게도 두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저장되고 만다.

02.

연인인 두 사람에게 동일한 경험이 다른 추억이 되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각각의 대상이 갖고 있는 성격이나 가치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부분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도 사랑을 대하는 태도, 특히 추억과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데, 이 부분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다.

기억은 나쁜 추억을 없애기 위해 좋은 기억만을 선별적으로 저장하는 거짓말을 한다는 남자와 기억은 원래 다 좋은 것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좋은 부분을 알게 된다는 여자. 두 사람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다. 특히, 과거에 단 한번도 나쁜 기억을 가져본 일이 없다는 여자에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은 괴로운 추억이 되기에 우리의 사랑도 행복한 지금 멈추어야 한다'는 남자의 방어적인 태도는 여자의 말에 의하면, 그녀에게 처음으로 나쁜 기억이 되어 남는다.
 

영화 <기억하니?> 스틸 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사랑과 추억에 대한 담론을 영화 전체에 걸쳐 펼쳐 나가는 작품이다 보니, 영화의 많은 부분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향유하고 있는 두 남녀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의 사랑이 무엇인지, 과거의 사랑은 어땠는지, 아픈 추억이나 기억은 없었는지'와 같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들. 하지만 감독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겉으로는 솔직한 척 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균열을 발생시킨다. 애초에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을 이어주던 유일한 접착력마저 힘을 다하게 되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아있게 될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갈등과 이별.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함께하는 기억이 아닌,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커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각자가 삶과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리 긍정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추억 속의 행복과 따뜻한 감정에 대해 회의적인 남자로 인해 여자는 자신의 과거 속에 숨겨두었던 슬픔과 아픔을 조금씩 직시하게 되고, 남자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는 여자를 이용해 과거 속 자신의 슬픔과 어두움을 현재의 기억으로 눌러나간다.

04.

만약 이 모든 과정이 시간적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달되기만 했다면 이 작품은 상당히 심심한 모습으로 러닝타임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발레리오 미엘리 감독은 두 사람의 다름과 기억과 추억이라는 대상의 속성을 끊임없는 시점 전환과 대상의 변화를 통해 변주를 만들어내며 혼란한 심리를 표현한다. 특히, 기억이 거짓말을 한다던 남자의 말을 감독은 기억의 편집을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데, 감독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정말 어떤 시점이 현재이고 과거인지, 또 미래이고 현재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남자의 기억 속에서 과거와 현재, 여자의 위치가 계속해서 변화하듯이 말이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편집 또한 이 작품의 몽상적 분위기와 미장센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특히 빠른 컷 전환을 통해 꿈을 꾸듯 표현되는 두 사람의 육체적 사랑과 눈이 내리거나 흐릿하게 지나쳐가는 기억 속 감정의 표현들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의 표현을 거의 완벽하게 이끌어낸다. 여자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남자의 노력이 실제와 남자의 상상, 두 번에 걸쳐 표현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영화 <기억하니?> 스틸 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우리는 흔히 사랑의 보편적 감정에 대해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또 그 정수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제로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 해답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 영화 <기억하니?>에서도 묻고 있듯이, 사랑의 구성원인 두 사람의 모습조차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그 수 많은 사랑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영화는 엔딩에 이르며 어떤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 또한 이 두 사람이 만든 사랑, 그 하나의 모습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타이틀은 더욱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렇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너, 그 때의 우리 모습을 기억하니?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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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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