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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며 쓰러진, '미션' 변요한이 던진 아픈 질문

[리뷰] <미스터 션샤인> 마지막 장면 보며 '친일파 청산'을 떠올리다

18.10.01 14:18최종업데이트18.10.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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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외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끝을 보게 될 것이고,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호기심에 그 처음과 마주하였고 예상했던 것처럼 그 끝을 볼 때 가슴에는 호기심 대신 슬픔이 가득찼다. 아니 슬픔을 넘어서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까지 느껴야 했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이야기다. <미스터 션샤인>은 '지상파 수목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시절에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으로 KBS 2TV에서 38.8%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이병헌, 김태리, 변요한, 유연석, 김민정 등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나왔다. 처음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땐 꼭 챙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그러나 이 드라마의 배경이 '구한말'이라는 사실이 그 결심을 머뭇거리게 하였다.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이라면 아무리 내용이 재미있어도 결국은 비극적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한말 다음에 올 시대는 우리 민족이 국권을 박탈당한 채로 살아야 했던 일제 강점기이고 그런 비극적 시대로 향해가는 이야기가 행복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김은숙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도 <미스터 션샤인>은 쉽게 성공하기 힘든 얘기라고 생각했다.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이 시기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아픔인 소녀상과 함께 살고 있다. 분명 과거이나 일제 강점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그 아픈 상처가 나기 직전의 시간을 바라본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을 해할 것이 분명한 흉기를 두 눈 똑바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1회를 보고 나니 2회, 3회가 보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방영되는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3개월이라는 시간을 같이 해야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그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 비록 드라마 일부 내용은 허구이지만 그 시절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아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계속 생각나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내용을 매주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울분이 쌓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김은숙 작가가 그 비극적 시대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결국은 그 모든 걱정을 이겨버리고 말았다. 

궁금증에 1회를 보고 나니 2회가 보고 싶어졌고 2회를 보고 나니 3회가 보고 싶어졌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결국은 비극적 결말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렇게 결국은 다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있었던 것일까?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여자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 때문이었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총을 들고 다니는 여자 주인공. 처음에는 그저 남자 주인공에 의존하는 흔한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과 다르게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점이 나를 사로잡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사로잡은 건 단순히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고애신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병의 길을 택한 고애신이 사회와 운명에 맞서며 자신의 삶을 개쳑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고애신의 집안은 유명한 양반 가문이다. 극 후반부에 집안이 몰락하게 되었지만 극 초반 고애신의 집안은 위세가 당당한 집안으로 나온다. 때문에 그런 가문의 일원인 고애신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한 생활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고애신은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의병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 고사홍(이호재 분)이 손녀가 택한 길을 막아선다. 

알게 모르게 의병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고사홍이었으나 손녀만큼은 그 길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의병 활동을 하던 아들을 잃은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애신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고애신의 이런 행동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는 개화사상을 말하던 조상훈이 봉건사상을 대표하는 아버지 조의관과 갈등을 빚는 부분이 나온다. 다소간의 언쟁이 있었지만 결국 조상훈이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인 조의관의 말에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 나온다. 

그보다 앞선 1800년대 후반, 게다가  양반 가문이라면 가부장 문화가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애신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의병의 길로 들어선다. 물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며 의병 활동을 원래부터 지원했던 할아버지 고사홍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그 길을 걷겠다는 고애신의 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개인적 행복과 사랑이 아닌, 조국을 택한 고애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그렇게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며 나선 고애신 앞을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조선의 노비 출신인 미국 해병대 대위 유진(이병헌 분)과 양반 가문의 자제인 고애신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고애신 가문이 몰락하면서 그런 장애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그가 사랑하는 유진은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현재는 미국 국적을 가진 군인이다. 따라서 고애신이 마음만 먹었다면 미국 국적의 군인인 유진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삶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잃고 싶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건 고애신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애신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택한 의병의 길, 개인적 행복과 사랑이 아닌 조국을 택했다. 

자신이 택한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고자 하는 고애신의 그 강렬한 의지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고애신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과연 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걷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강한 의지로 그 길을 걸어가는 고애신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기에 비극적 결말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계속 지켜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고애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한 여인을 사랑했던 또 다른 남자들의 삶도 끝까지 보고 싶었다. 고애신을 사랑했던 남자는 셋이다. 미국 군인인 유진,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동매(유연석 분), 조선 최고의 갑부 집안 아들인 김희성(변요한 분)이다. 

이 중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갔던 남자 주인공은 고애신과 서로 사랑했던 유진도 아니고, 고애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구동매도 아닌 김희성이었다. 그건 사실 좀 이상한 일이었다. 김희성은 총을 잘 쏘는 유진이나 칼을 잘 쓰는 구동매에 비해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그런데도 내가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끝까지 애정을 갖고 어떤 길로 나아가는지 가장 유심히 지켜본 남자 주인공은 김희성이었다. 왜일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김희성은 조선 최고 갑부 집안의 자제다. 그렇지만 그렇게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한 집안이기도 하다.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유진이 어린 시절 노비였을 때 그의 부모를 죽인 이도 바로 김희성의 할아버지였다. 그랬기에 김희성의 집안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앙갚음을 하고 싶어 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 나쁜 짓을 한 김희성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에 김희성은 밥을 먹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한다. 그리고 김희성의 이런 대사가 드라마에 등장한다. 

"내 아버지요? 내 조부요?" 

그는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에게 원한의 대상이 아버지인지 조부인지 묻는다. 적지 않은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김희성의 집안이 여전히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잘 살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김희성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리 양심적인 인물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희성의 할아버지는 본을 보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노비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양심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악독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았던 남자, 김희성

그런 집안에서 자랐다면, 김희성 역시 양심적이지 못한 인물로 성장했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김희성은 양심적이지 못한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르게 성장했다. 겉으로는 항상 웃고 있고 넉살도 좋아 보이지만 김희성은 자신의 집안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진심으로 아파한다. 김희성이 유진의 부모가 자신의 조부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집안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김희성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김희성은 쉽게 친일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거부한다. 하지만 당시 조선 사회의 모든 이들이 김희성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미스터 션샤인>에는 가공의 친일파 인물인 이완익(김의성 분)뿐 아니라 실제 친일파인 이완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친일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열심인 것은 쉽게 말하자면 부끄러움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때문에 불행해질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난 누구보다 쉽게 친일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으나 부끄러움을 알았기에 그러지 않았던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인물의 삶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김희성을 더욱더 애정을 가지고 보게 된 듯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그랬기에 내겐 의병을 상징하는 고애신 뒤로 태극기가 휘날리는 장면보다 김희성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이 더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김희성처럼 부끄러움을 알고 친일이 아닌 길을 걸었던 인물이 많았다면 친일파 후손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고 독립 운동가 후손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오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내가 <미스터 션샤인>을 외면해 하려 했던 이유가 오로지 시대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스터 션샤인>을 다 보고 나면 다가올 아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의병의 후손보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후손이 더 잘 살고 있는 현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지금 이 현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물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종영했지만 아픈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친일파 청산이 '민족의 화합'을 위해 묻어두어야 할 일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인지 말이다. 광복 후 수십 년이 흐르도록 답하지 못한 이 질문에 당신은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스터 션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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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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