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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박일도에 빙의된 사람들, 현실이 더 끔찍하다

암울한 현실이 불러 낸 '호러 <손 the guest><오늘의 탐정><러블리 호러블리>

18.09.29 12:21최종업데이트18.09.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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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에서 다룬 '아랑의 전설', 이는 우리 고전 소설인 <장화 홍련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오래된 대표적 귀신 설화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밀양 고을에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한다. 결국 '밀양'은 기피 부임지가 되고 마는데, 담이 큰 이상사라는 부사가 부임한 첫 날 잠자리에 든 그를 찾아온 건 '처녀 귀신' 아랑이었다. 양갓집 규수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아랑. 하지만 사실은 관가에서 일하던 이와 유모의 작당으로 겁간의 위기에서 저항하다 살해당하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귀신이 되어 부사를 찾아간 것. 부사들은 그런 아랑의 속도 모르고 '귀신'의 존재만으로 혼비백산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원형적' 귀신의 전설에서도 보이듯 죽어 저승으로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유는 바로 '이승'에 있다. 그 '이승'이 문제인 것이다.
 

손 the guest 김영수 ⓒ ocn

  

손 the guest 최민상 ⓒ ocn

  
현실로 부터 고통 받는 영혼의 빈틈을 찾아든 '손'
 
OCN 수목 드라마 <손 the guest>는 바다에서 온 '손' 박일도가 그의 숙주가 되는 일반인들에게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한다. 박일도에 '빙의'된 이들은 괴력을 발휘하며 살인도 불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이들이 '빙의'되는 이유다. 이른바 영혼의 빈틈이라고 칭해지는 '자존'의 약한 지점을 '박일도'는 귀신답게 알아차리고 찾아든다. 극중 첫 번 째 빙의자였던 김영수(전배수 분)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터널 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온 몸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의 '산재'에 대해 업주는 나 몰라라 하고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도 위로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박일도'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분노를 사업주와 가족에 대한 살해로 풀어내고자 한다.
 
김영수에 이은 폐차장의 최민구-최민상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생 최민구가 빙의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박일도가 찾아간 건 형 최민상이었다. 결국 그를 잡았지만 '구마' 기회를 놓치고, 최민상은 스스로 잔인하게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정리를 요구하는 어머니. 정신병에 걸린 둘째 아들도, 박일도에 희생된 형도 그 원인은 어머니의 가정 폭력과 폭언, 학대였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빙의된 김은희(김륜희 분). 그녀는 자살한 약혼자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에 박일도에 빙의됐다. 외려 죽으려 한 그녀를 구해 복수를 하게 해주겠다는 것. 빙의된 김은희가 찾아간 곳은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료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김은희의 약혼자를 왕따시키고, 사내 폭력의 희생자로 만들었으며, 이에 못 이겨 회사를 떠난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부풀었던 젊은 연인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의 모든 미래를 빼앗겼다. 약혼자는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지닌 김은희는 죽음 대신 무참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렇게 드라마 속 '손'을 부르는 건 현실이다. 노동자를 외면한 사주의 이기심과 가장의 산재 앞에 신음하는 가족의 고통, 가정 폭력, 그리고 직장 내 왕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사회 문제들이 결국 '인간'을 쇠잔하여 하여, '손'의 숙주로 만든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손에 빙의된 괴물이지만, 그들의 폭주는 무섭지만 처연하다.
 

오늘의 탐정 선우혜 ⓒ kbs2

  
여전히 어린 아이인 생령이 벌이는 죽음의 장난
 
KBS <오늘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 선우혜(이지아 분)의 폭주로 인한 범죄. 병상에서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여전히 의식은 벌레를 잡아 죽이던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선우혜는 '장난'처럼 사람들의 목숨을 거둔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의 경우처럼 거두는 방식이 희생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선우혜'의 잔인한 장난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버림받았던 혹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아들에게 폐만 된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강권하던 선우혜에게 버티던 이다일(최다니엘 분)의 어머니는 결국 대신 아들의 목숨을 거두겠다던 협박에 손목을 긋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청력을 잃었던 정여울(박은빈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여울에게도 동생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 식이다. '영'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러블리 호러블리 라연 ⓒ kbs2

  

러블리 호러블리 필립 모 ⓒ kbs2

  
귀신조차 불러들이는 산 자의 운명과 사랑
 
KBS <러블리 호러블리>의 귀신은 어쩌면 가장 전래의 전형성을 지닌다. 이른바 '귀신의 전매 특허인 '한'의 현대적 버전이다. 8년 전 코리나 레지던스에서 죽었던 두 사람, 라연과 필립의 어머니는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이다. 8년의 주기로 죽을 운명에 빠진 아들 필립과 의붓 딸 을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24년 전 을순의 운을 빌려 아들의 생명을 구했듯이, 이제 귀신이 되어 돌아와 위기의 순간마다 노랫소리로 홀린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이 저질렀던 업보를 필립을 통해 갚아 을순을 구하고자 한다.

8년 전 현 필립의 공식적 연인이던 윤아에게 살해당한 라연. 하지만 그녀는 귀신이 되어서도 침묵했다. 방화범이자, 스토커라는 의심도 참아냈다. 윤아는 그저 필립의 허울뿐인 연인이었으니까. 하지만 필립의 마음이 을순에게 움직이자, 라연은 '내가 너무 늦었지'라며 돌아온다.
 
이렇게 '호러'를 표방한 세 드라마 <손 the guest>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속 호러는 현실을 길어 올린다. 귀신은 무섭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신은 처연하고, 그들을 '귀신들리게' 한, 혹은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 안쓰럽다. 그렇게 드라마 속 '귀신'은 삶으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삶은 그들의 먹이요, 놀이요, 미련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드라마는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해 뜻밖에도 삶을 경고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손 THE GUEST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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