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에 대답한다더니... '총여 폐지' 하자고?

[위기의 총여 ①] 폐지 찬반 투표 들어가는 성균관대... 나는 반대한다

등록 2018.10.02 17:06수정 2018.10.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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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총여)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오는 10월 10일에는 성균관대 총여 폐지 찬반 투표가 진행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여전히 총여가 필요하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보내주세요.[편집자말]

"우리에게는 총여가 필요합니다!" 9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스티커 퍼포먼스로 "우리에게는 총여가 필요합니다!" 글자를 만들었다. 각 스티커에는 불꽃을 형상화한 장미꽃 그림 위에 "If not now, when?"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지난달 19일 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단은 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총여학생회(아래 총여) 폐지 총투표'를 발의한다는 글을 게시하였다. 바로 이틀 전,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아래 인사캠 전학대회)의 결정을 뒤집는 것이었다.

9월 17일 인사캠 전학대회에서는 차기 총여학생회 선거에 대한 제반사항을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 총학생회장단·단과대 회장단·독립기구장으로 구성)에 위임한다는 안건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총여 회칙 정비와 선거 준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총여 선거를 위한 업무에 착수해야 할 중운 위원이 '총여 폐지 총투표'를 제안한 것이다.

성균관대에서 총여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은 지난 8월 10년째 궐위 중이던 총여에 입후보 희망자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2학기 개강 첫날, 대학 내 여학생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재학생 모임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재학생과 졸업생 2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성균관대에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OO대에도 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라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10년 만에 후보 나왔는데...

성균관대에는 올해 3월 미투운동이 일었다. 재학생들이 피해 교수에 연대하고 나서자, 학교는 이들이 '선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담에서 배제하려 했다. 나는 친구들과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에게 찾아가 연대를 요청했다.

그러나 약 두 달 뒤 학교와 면담을 마친 중운 관계자들은 "학교 측과 피해 교수 측의 입장이 상충해 더 이상 연대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최종 입장을 밝혔다. 총학생회가 3월 13일 황급하게 발표했던 '총학생회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는 유명무실한 종잇장이 되었다.
   
학내에서 미투운동이 진행되었던 두 달 동안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은 성명서 한 장을 낸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 학내 유일의 여학생기구인 문과대 여학생위원회는 피해생존자들과 집담회를 개최했을 때 학교로부터 강의실을 연속적으로 반려당해 결국 야외로 쫓겨났다. 하지만 총학생회 등 학생대표자들은 그들에게 공간 하나, 마이크 하나 지원해주지 않았다.

교직원들은 관련 기자회견이나 집담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갔다. 학생들이 건물 외벽을 대자보로 가득 메우자 학교는 그것들을 강제로 철거한 뒤 전에 없던 '게시물 부착 금지' 표지판을 붙여놓았다. 학내 성폭력 피해자에 연대하고자 했던 학생들은 절망을 겪어야 했다. 우리를 대변해주는 힘 있는 학생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총여 폐지 총투표' 논의는 총여 선거를 누가 어떻게 맡아야 할지를 토론하던 9월 17일 인사캠 전학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다른 회의에서도 언급된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는 이유로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은 갑자기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총여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학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에 한 명의 대의원으로서 총여 폐지 총투표안 발의를 위한 대의원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글로벌리더학부 부회장과 경영대학 회장이 같은 식의 홍보를 반복했으며, 휴회 때마다 서명을 모았다. 이들은 이날 논의안건이 통과되면 그에 따라 성실하게 총여 선거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던 중운 위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차기 총여 선거를 중운에서 맡는다는 기존 안건이 가결되고 나서도 폐회 직후 회의장 앞에서 큰 소리로 추가 서명을 받았고, 결국 여러 대의원과 참관인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약속을 지키십시오!"라는 지탄을 받았다.
   
이틀 뒤인 19일 밤,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은 학생회 홈페이지에 자신들이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모아 회칙에 따라 '총여 폐지 총투표'를 발의하였음을 알렸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학우들이 있는바 전체 학우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판단하였으며, 회칙상의 절차를 충족하였으니 30일 이내로 총투표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 학생총투표에 총여 존폐 여부를 묻는 것을 남성의 의견도 반영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면 그것이 바로 여성우월주의다", "민주적인 학생자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폐지'를 묻기 전에 해야 할 일

하지만 성균관대에서는 올해 미투 이후 총여학생회의 기능과 역할, 역사와 필요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토론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이 정말로 전체 학우들의 의견을 묻고 싶었다면 '폐지 총투표'에 앞서 공론장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11월 말 차기 총여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회칙상 유권자인 여학생들이 총여의 필요성을 심판하기에 앞서, 일말의 안건설명회나 토론회도 없이 '폐지 총투표'를 부쳤다. 그러곤 총여를 폐지시킬 의도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의 결정과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안을 3분의 1 대의원의 서명만으로 총투표에 부치는 일, 그리고 회칙상 존재해온 하나의 학생자치기구의 존폐를 단 한 번의 토론 없이 회원들이 아닌 이들도 포함된 다수결로 결정하는 일이 과연 민주적인가. 회칙에 나와 있는 숫자를 지키면, 절차를 지키면, 다수결로 결정하면 곧바로 민주적인 일이 되는가. 게다가 2018년은 미투로 시작해 오랫동안 공석이던 총여 회장 자리에 입후보 희망자가 나오기까지 한 해다.

하지만 다음날 경영대 학생회장은 총여가 폐지되지 않을 시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은 총투표 발의안에 서명한 대의원들의 명단을 철저히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서명한 60명의 대의원들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각 단과대, 과, 독립기구의 대표자로서 서명한 것이기에 회원들은 대표자들의 결정을 알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일부 대의원들은 주도적으로 서명을 모은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으로부터 비공개를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연서명단을 공개하고 총여 폐지 총투표를 공고할 권한은 성균관대 인사캠 총학생회장에게 있지만, 그 역시 연서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동문서답하고 있는 실정이다. 9월 29일 현재까지도 '검토 중'이라는 명목으로 연서명단은 비공개에 부쳐져 있다.
   

연서명단 공개 요구에 대한 총학 답변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의 두 번째 요구였던 연서명단 공개에 대해 총학생회는 답변을 회피하고 절차에 따라 총투표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익명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의 성균관대 게시판에는 총여 폐지 총투표를 앞장서서 발의한 글로벌리더학부 회장단과 경영대학 회장에게 '빛-글리', '킹영대' 등의 찬사가 흘러넘쳤다. 반면 총여 지지측에게는 그 필요성을 입증해 자신들을 설득하라는 요구와 비방이 빗발쳤다.

하지만 에브리타임에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글이나 여성주의 독서 모임 홍보글을 올리면 신고 클릭 몇 번에 순식간에 자동으로 삭제되고 누적 시 게시판 접근 권한이 제한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9월 개강 이후 지금까지 이미 총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20여 장의 대자보가 성균관대 중앙대자보판과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되었다.
 
- 새내기배움터에서 AM, 러브샷4단계 등 성희롱과 성추행이 수없이 발생.
- 명륜 정문에서 지나가던 남자가 "나랑 섹스할래?"라고 성희롱함.(대숲#72397)
- 노콘섹스 강요 때문에 지속적으로 사후피임약을 먹어야 했던 여학생의 호소.(대숲 #73423)
- 16년 인사캠 축제 MC "여자분 다리에 멍이 들었는데 왜 들었을까요?" 등 성희롱 발언을 함.(대숲 #73190)
- 15,16년 글리학부 학부생이 여러 학부생을 성희롱하였고 이후 신고한 피해자를 협박함."

- 대자보 <우리도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중에서

2018년 미투에 대한 대답이, 수많은 대자보들에 대한 대답이 '총여 폐지 총투표'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피해자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던 학생대표자들의 다음 행보가 '총여 폐지'란 말인가.

적어도 내가 4년 동안 대학에서, 거리에서, 피해자들의 곁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학생자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1인1표-다수결-총투표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며, 학교가 무섭고 주류적 시각에서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소통과 설득의 노력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마는, 그런 손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학내 미투운동에 연대하며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앞장서서 맞서줄 힘 있는 자치기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에 합류하게 되었다. 총학생회는 성평등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관련 부서나 정책은커녕 유관 사업을 해보려는 재학생 단위나 개인에게 지원 노력 혹은 의지조차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인권센터가 학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작동하고 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정작 피해를 입었을 때 인권센터를 찾지 않았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일을 센터가 맡기 어려운 지점 때문이기도 하고, 3월 미투운동에서 폭로되었던 인권센터의 학생 색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위 사실과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알리는 대자보와 카드뉴스를 제작했고, 관련 토론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총여'는 사라질 수 없다
 

기자회견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 9월 12일, 재학생 모임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현존하는 총여학생회 회칙의 정당성을 의심하며 선거를 방해하고자 하는 학생대표자들을 규탄하며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총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총여가 필요하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말해왔다. 세상은 아직 평등하지 않고, 성차별에 기반한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관점에서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기구는 부재하다고.

그러면 총여가 필요 없다는 사람들은 좀 더 합리적인 근거를 대보라고 말한 뒤, 온갖 대학의 총여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나열하며 역시 총여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체 무엇이 '합리'인가. 총여가 사라져야 하는 합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총여가 대학사회에 처음 등장한 80년대에 비해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차별이 '나아진다' 한들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져 더 이상 여학생이 소수가 아니어도 젠더권력과 성차별이 남아있는 한 여학생은 여전히 대학 내 소수자라는 말이다. 이는 여성이 약하다거나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채 드러나지 못한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미투의 교훈은 성폭력의 근원이 성차별에 있다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성차별이 존재하는 한, 그에 맞설 총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마침내 총여학생회가 필요 없어지는 그 날까지, 더욱이 아무런 근거 없이 '날치기'로 총여를 폐지하려 드는 이번 총투표를 통해서는 절대로, 총여학생회는 사라질 수 없다.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총여 #총투표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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