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만 분양받아도 중산층이라는 환상

[리뷰]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읽고

등록 2018.09.23 16:59수정 2018.09.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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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국

바야흐로 부동산 정국이다. 지금이야 잠깐 남북 이슈에 가려 잠잠하지만 이 기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부동산은 언론 1면에 등장할 것이다. 부동산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파괴력이 큰 만큼 각 정치세력들이 이용하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을 보자. 그들은 당장 종부세를 끌고 들어와 정부여당이 세금폭탄을 터뜨린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결국 부동산을 계기로 꺼꾸러졌던 참여정부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부동산 이슈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진보세력은 부동산과 관련되어 9.13 정책도 부족하다며 비판 중이다. 부동산이 부익부빈익빈을 심하게 하는 주범이라며 정부여당에 더 센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부동산은 나쁘지 않은 이슈다.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데 있어서 부동산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을 앞둔 13일 오후 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 이희훈

 
문제는 이와 같은 주장들을 대하는 국민들의 모순적인 시선이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모두 국민을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헷갈린다.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모두가 이해 관계자이며, 두 가지의 욕망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값이 오르면 좋겠다는 욕망과 집값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전혀 반대의 입장 같아 보이지만 이 역시 종이 한 장 차다. 집은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두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당장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집 산다고 난리인데 나 혼자 집을 사지 않아 혼자 뒤떨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나서서 시원하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답을 주면 좋으련만 이 역시 요원해 보인다. 언론들은 진영 논리에 따라 주장을 하는 것 같고, 정부의 답변 역시 믿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철저한 원칙을 정하고 정책을 집행하면 될 것 같은데, 부동산의 경우 국민들의 욕망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는 터라 이 역시 마냥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부동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부동산은 우리네 삶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을까? 결국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연유부터 알아야 하는데 여기 이 문제를 정치지리학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다. 바로 임동근·김종배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이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자원이라고 할 때, 이 자원의 발생과 이동, 분배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 지리학입니다. 또 정치든 권력이든 인간이 이 자원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지 연구하는 학문을 정치지리학이라고 합니다. - 20p
 
아파트 신화의 시작

저자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권력이 어떻게 공간을 구획해 왔는지 설명한다. 결국 공간을 구획한다는 것은 권력의 의지요, 그것에 따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주민자치와 행정구역 개편 등을 별도로 인식하지만 정치지리학에서 그것들은 긴밀하게 연결된, 권력의 주요 통치 방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저자는 아파트에 주목한다. 처음 도입될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와우아파트 붕괴와 함께 서민 아파트가 몰락한 이후 아파트는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된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볼 수 있듯이 아파트가 중산층의 상징이요, 국민들의 내 집 마련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베트남전 특수와 중동 건설 붐이 끝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던 재벌의 욕망과 맞닿아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거의 모든 재벌들이 아파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주택시장이 포화가 된 지금이야 토목 자본들이 살아남기 위해 4대강을 파고 북한 진출에도 적극적이지만 그 당시 대세는 아파트였다.

그들은 아파트가 곧 성공의 기준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켰고, 온갖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국민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 중 삼성은 마케팅에 올인했는데 아파트명 래미안을 고급 브랜드화 하면서 차별화를 꾀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아파트가 아닌 래미안에서 살게 되었다. 아파트가 주거 공간이 아니라 계급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1987년 이후 재건축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1982년부터 해외 건설이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고, 1987년 즈음 되면 거의 5분의 1로 줄거든요....1987년부터 돌파구를 계속 찾다가 결정타가 나왔는데 바로 신도시입니다 – 175p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주택 시장에 과도하게 들어가 IMF 이후에 위기가 옵니다. 1997년 이후에 IMF 사태는 토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건설회사들은 여전히 탄탄했습니다. 주택에 과도하게 투자해 들어간 삼성만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래미안'이란 브랜드를 만들어서 마케팅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합니다. 래미안이란 브랜드는 IMF의 산물이에요 - 169p
 
권력과 아파트 신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 반비

 
권력은 이런 자본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정부는 재벌들에 온갖 특혜를 줘가며 그들이 주택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했으며, 앞장서서 아파트 신화를 부추겼다. 당시 정당성이 약했던 군사정권은 주거 안정화를 통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신화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사회의 보수화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어쨌든 아파트에서 살게 된 사람들은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그만큼 사회변화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권력은 이를 통해 체제 안정을 꾀했다. 지금도 아파트 가격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하곤 하는데 이는 결국 지금까지의 아파트 신화가 빚어온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30만 가구 40만 가구가 분양 로또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분양 제도가 잘 작동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만 분양받아도 중산층이 된다는 신념, 어떻게 보면 환상을 갖게 됩니다.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다른 불만들을 억눌렀다고 봐야죠. 일단 아파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체제, 틀 자체를 깨기 싫어하게 된 면이 있었겠죠 – 206p
 주택 로또....정치와 정권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희석되면서 많이 보수화됐죠. 일단은 빚으로 집을 샀던 계층을 확대한 것이 제일 주효했습니다. 자기 집 가격이 떨어지면 빚을 갚고 나면 깡통 주택이 되니까, 계속 가격을 유지해야 됩니다....굉장히 긴 시간 동안 사회가 안정돼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223p
 
아파트 신화의 균열
 

그러나 이와 같은 아파트 신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대한 선망은 여전했지만 IMF를 겪으면서 그 신화를 이끌어가던 동력이 약해졌다.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있어서 전제 조건이었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노동시장은 다양해졌고, 중산층은 무너졌으며, 하우스푸어가 양산되었다.
 
서양에서는 주택 대출은 주로 20년 장기 상품이었습니다. 이를 고안한 것 자체가 자본가들에겐 혁명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20년 장기근속 체제를 만듦과 동시에 노동자가 임금으로 고스란히 은행 대출금을 갚게 만들었으니까. 이건 포트주의의 산물입니다. 주택문제는 곧 일자리 문제예요. - 250p
 
대신 등장한 건 주상복합단지였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각 지자체는 자체 수입을 위해 지역마다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용도변경 등을 통해 자본을 불러들였는데 신자유주의의 자본은 이를 십분 이용하였다. 지자체 정치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개발을 추진했다. 자본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행정이 분할되고 경쟁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2000년대에는 중앙정부가 추진하던 도시계획이 포기되고 본격적인 도시 개발의 시대가 열렸다. 부동산 개발이 금융화 기법을 통해 진행되었고, 돈 많은 개발업자를 위해 규제 등이 완화되었다. 지자체들은 이를 지역발전이라고 포장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공공성의 약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존재하는 아파트 신화와 도시개발을 한다며 끊임없이 올라가는 건물들. 이와 같은 복잡한 현실에서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빚내서 집을 사라는 등 부동산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향한 욕망의 질주들을 제어해야 한다.

부동산을 통해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임을 분명히 하고 땅보다 땀이 우대받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촛불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정부가 할 일이다. 부디 문 대통령이 이 위기를 슬기롭고 강단 있게 돌파하길 바란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반비, 2015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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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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