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은?

[서평] 조현대 지음 소설 '기억의 저편'

등록 2018.09.21 15:08수정 2018.09.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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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건 뭘까. 비장애인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답은 점자다. 시각장애인 작가가 쓴 <기억의 저편>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시각장애인이 글자를 읽도록 만들어진 점자가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은 내게 꽤나 충격이었다. 책에서는 점자를 처음 배우는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점자를 쓰게 한 후 종이를 제출하게 했다. 종이를 뽑아 선생님에게 내밀자 지훈의 앞에 있던 승혁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귀싸대기가 올라갔다. "야, 이놈 자식아. 제대로 찍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 지훈의 순서가 되었다. 지훈은 겁을 먹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디 보자. 응, ㄱ, ㄴ, ㄷ. 여기까진 잘했네. 그런데 왜 ㄹ는 5점을 찍었냐. 선생님 말씀을 뭐로 들은 거야?" 지훈 역시 뺨을 맞았다. 뺨을 맞자 귀가 얼얼했다. 오늘부터 고난의 시작이구나. 지훈은 푸념했다. '이 어려운 점자를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책 <기억의 저편>을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입장에서 점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글보다는 더 쉽게 만들어져 있겠지 하고 지레짐작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점자는 6개의 점자로 모든 글자를 표현해야 하고 손가락으로 읽기 때문에 예민한 손끝 감각을 익혀야 한다. 또 한글 점자와 영어 점자가 달라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크다. 주인공 지훈도 혹독한 연습 끝에 점자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기억의 저편' 표지 기억의 저편 표지입니다. ⓒ 조현대

 
<기억의 저편>은 시각장애인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시골에서 지내던 주인공 지훈이 맹학교에 가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겪는 일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장애인이 장애인 자체의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중도 장애인이 된 이는 장애인으로 살기보다는 과거의 비장애인으로 산다. 또는 내가 어떡하든 의학에 도움을 받아 반드시 지금의 내가 아닌 비장애인으로 살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즉, 장애인은 현재에 살기보다는 과거에 살고 미래에 사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인식은 지훈이라는 인물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지훈은 장애에 대해 불편해하지만 한 번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런 지훈을 보며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장애인이 사는 환경은 70~80년대와 현재의 한국사회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책은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 꿈, 교육에 있어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한계가 만들어지는 사회라는 걸 주인공의 삶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느새 지훈의 입장에서 볼 뿐만 아니라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장애를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떠올려보고 싶다면 무엇보다 현 한국사회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의 저편 #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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