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조국, 카드섹션 책 무게만 10㎏...입장료는 50센트"

탈북민들이 본 '빛나는 조국'... 문 대통령 19일 공연 관람 후 평양 시민 향해 대중 연설

등록 2018.09.20 14:24수정 2018.09.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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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평양시민앞에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15만명 평양시민들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대집단 체조 공연인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약 7분간 평양시민을 향해 대중연설을 했다. 남측 대통령이 평양 시민 앞에서 육성으로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 내외와 방북단은 방북 2일차인 19일 오후 9시부터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약 한 시간 동안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경기장에 입장한 15만 명의 평양 시민과 10만 명의 참가자들을 향해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며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의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한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탈북민들이 전한 '빛나는 조국'

 당초 대집단 체조 공연이 북한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문 대통령이 관람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집단 체조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두고 대규모 군중동원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가 있어 왔다. 당초 북측이 체제 선전을 배제하는 등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고 환영의 의미를 더했다고 알려졌으나, 막상 19일 진행된 공연에선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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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인 1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는 15만명의 평양주민들이 참석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북한의 수십 만 대중을 향해 남한 대통령이 최초로 연설한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체제 선전에 이용당한다는 우려를 딛고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평양의 대중 식당인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일반 시민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평양 출신으로 문화예술에 종사해 '빛나는 조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탈북민 ㄱ씨는 "아리랑 체조의 원래 이름이 빛나는 조국이었는데 외국인에게 친숙한 아리랑으로 바꿨다가 이번 9.9절에 원래 이름인 빛나는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보면 수만 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고 장관이다"라며 "원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외화벌이용으로 기획됐지만 외국인들이 표를 사서 보는 경우는 적고 평양 시민에게 50센트(약 550원)에 판다"고 귀띔했다.
    
빛나는 조국은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북한이 내놓은 야심작으로, 지난 9일 첫선을 보였다. 평양 시내 고등중학교(6년제) 학생과 대학생, 지역 대학생 등 10만 명이 동원된 카드섹션과 집단체조로 구성돼 있다. 대집단 체조는 2000년 10월 처음 시작됐으나 2013년 중단됐다가 올해 9.9절을 기해 5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대집단 체조는 참가자 가운데 유치원·초등학생 어린이들이 힘든 연습과 공연에 동원되는 것에 대한 아동학대, 인권 침해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에 따라 올해 9.9절 기념 공연에선 유소년이 참가하지 않는다고 외부에 알려졌으나, 지난 9일 공연에선 5세 어린이 등 10세 이하 어린이 참가자들이 등장했다.   

탈북 전 아리랑 체조 연습에 참여했던 ㄴ씨는 "연습을 하면 도시락을 네 끼를 싸가야 한다"며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고 굶으면서 연습하다 쓰러지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도 연습을 조금 하면 배가 금방 꺼졌다"고 진술했다. ㄴ씨는 탈북 전 평양 근교에서 살다가, 아리랑 체조에 동원돼 6개월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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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인 1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경기장에는 15만명의 평양주민들이 참석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출신으로 탈북 전 아리랑 체조 '카드 섹션'에 동원된 경험이 있는 ㄷ씨는 이것을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떠올렸다. ㄷ씨는 "전방의 수기신호를 보고 그에 맞는 색깔의 페이지를 펼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ㄷ씨는 "카드책의 무게가 10㎏이 넘고 40장 정도 된다. 엄청나게 무겁다"면서 "학교끼리 경쟁심이 생겨서 다른 학교보다 더 빨리 펼치려고 열심히 했다. 책을 펼치면서 책 뒤로 숨는 것"이라며 웃었다.  

페이지를 잘못 펼치는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냐는 질문에 ㄷ씨는 "그런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 뒤 "만약 그런 실수를 하면 일주일 내내 생활총화감이다"라고 밝혔다. 생활총화란, 북한의 각급 기관과 학교 등 개인이 속한 모든 단체에서 자아 비판과 타인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는 제도다. ㄷ씨는 그러나 "만약 그런 실수가 있다면, 내가 실수했다고 큰소리로 말하면서 엎드린다"며 "그러면 동무들이 양 옆에서 메꿔준다"고 덧붙였다.     

ㄴ씨는 "손자를 홀로 키우던 할머니가 손자의 아리랑 체조 연습을 뒷바라지하다가 빚을 졌는데, 이것을 고민하다가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이 오랜 기간 동원되면서 부작용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에 참가자 전원에게 수출용 컬러 TV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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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조국' 평양의 드론 공연 북한의 정권 수립일인 9일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개막 공연이 이뤄졌다고 북한 매체들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에 실린 공연 장면 중 일부로, 경기장 상공에 드론을 띄워 '빛나는 조국'이라는 글자를 표현했다. ⓒ 연합뉴스


 특히 탈북민들에 의하면, 아리랑 체조가 첫선을 보였던 2000년엔 참가자 전원에게 수출용 컬러 TV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 다음 공연에선 전기 재봉틀을 선물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선물의 질이 떨어졌고, 아리랑 체조가 중단됐던 2013년엔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수익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참가자들에게 보수는커녕 선물도 못 주는 형편이 되면서 아리랑 체조 공연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는 생전에 아리랑 체조 참가자들에게 쿠키를 선물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고 알려졌다. 본인이 예술인 출신으로 힘들게 연습하는 참가자들의 고충을 알았던 것이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했던 탈북동포 ㄱ씨는 "외국인을 상대로 티켓을 제대로 팔면 한달 공연에 600만 달러의 수익이 나온다"면서 "평양 시민들에게 팔아도 적자를 메꾸지 못했다"고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평양회담 #남북정상회담 #아리랑 #빛나는조국 #매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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