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만 떠올라도 따뜻해지길

전남 해남공공도서관, 도서관 우수 독서 프로그램 선정

등록 2018.09.20 08:44수정 2018.09.2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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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의미

빌게이츠는 말했다. "나를 키운 건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리고 읽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과 더불어 문화를 키울 인재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학교 이외의 또 다른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

국내 도서관법 제2조 1호 정의에 따르면, "도서관"이라 함은 도서관자료를 수집ㆍ정리ㆍ분석ㆍ보존하여 공중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ㆍ조사ㆍ연구ㆍ학습ㆍ교양ㆍ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시설을 말한다.

이제 도서관에는 책, 잡지 등의 인쇄매체 이외에 dvd를 포함한 영상매체, 디지털 자료 등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따라 매체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자료를 보관하는 역할을 떠나 그것을 활용할 기술 역시 도서관이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국내의 도서관 현실은 어떤가. 더 좁게 지역의 도서관은 어떠한가. 도서관 회원 수에 비해 1인당 독서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또한 대출실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보다는 절대 정숙을 강요하는 공부방 역할로 전락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지역의 도서관을 천천히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해남공공도서관(전남, 해남군 소재)은 매주 토요일이 되면 강의실에 야단법석으로 떠드는 초등 저학년 학생들이 공간을 만들고 놀이를 만든다. 때문에 정숙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9월 8일 해남공공도서관에서는 사뿐사뿐글고양이 학교 선서식을 했다 ⓒ 김성훈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뿐사뿐 글고양이 학교'에서는 절대 정숙 대신 절대 규칙이 있다. '혼자서 하는 놀이는 집에서 혼자해라'이다.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하고, 의견을 나눈다. 그러한 과정 속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내 옆의 있는 친구만 아니라 그 친구의 문화까지 이해할 수 있는 길, 좁게는 지역의 다문화에서 넓게는 인터넷 매체를 활용하여 해당 나라의 가옥의 형태, 어린이들의 놀이 등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캄보디아의 여러 유적지를 소개하고 있다 ⓒ 김성훈


지난 15일, 해남공공도서관에서는 캄보디아 선생님 두분이 초빙됐다. 이들 선생님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해남에 거주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유명한 앙코르 사원외 유적지를 빔프로젝트로 쏜 영상과 덧붙여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해남지역 아이들 눈에 자주 보이는 외국인은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을까.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미국인, 유럽인, 프랑스인 보다는 대부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몽골인 등 대개 동아시아 계 외국인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적확하게 이들 문화를 이해할 수업은 사실상 부재하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다는 말은 쉽게 하면서 무엇이 다른지를 제대로 아이들에게 교육하지 않는다면, 나와 다른 것을 틀림으로 인정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가 목격하게 될 것은 틀림에 대한 저항이다. 저항은 곧 폭력적 차별로 드러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우리가 사회적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서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는 사회 완충적 교육 역할도 한다.
 

지난 9월 1일 학부모 초청 사뿐사뿐글고양이학교 하반기 프로그램 소개가 있었다. ⓒ 김성훈

  
도서관과 지역 예술교육단체가 고안한 프로그램

교육은 대상과 공간에 대한 탐구가 우선이어야 한다. 커리큘럼에 맞춰 획일적으로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맞추는 방식은 이제는 지양해야할 것이다. 개인적 성취와 취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날씨가 매일 다르듯, 매번 달라지는 감정, 생각 등을 어떻게 표현하게 할 것인가. 지금 보고 느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충족시켜 줄 것인가.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사뿐사뿐 글고양이 학교'이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고양이'라는 매개를 활용해, 자연, 낱말, 책, 놀이 등의 교집합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결코 혼자서 생각할 수 없었다. 지역의 문화예술 교육단체인 야호문화나눔센터의 강사들과 실질적 행정적 업무를 뒷받침해줄 지역 도서관의 사서 및 도서관장의 도움이 절실했다.

2017년도에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도서관 연계 지원 사업에 공모하여 군 단위 도서관으로 유일하게 선정되어 시행하게 됐다. 1년여의 사업기간 후, 2018년도에는 해남도서관 자체 독서 프로그램 일환으로 시행해 하반기 수업까지 이르렀다.
  

해남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노는 깐따(전병오) 선생님 ⓒ 김성훈


프로그램 내용 및 수업

설계와 시공에는 간극의 차가 발생한다. 머릿속에 구성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문화예술교육은 현장에서 달라진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교육의 여건, 아이들의 수준, 학부모의 반응 등을 포함한 지역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에 따라 변화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뿐사뿐글고양이 학교를 진행하는, 전병오, 정수연, 김성훈(글쓴이)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강의실 문을 열어준 해남공공도서관 박향미 관장도 '커리큘럼의 변화'를 지지했다. 그것을 우리는 '학습의 이행 과정'이라고 불렀다.

연극적 요소의 행위와 문학적 요소인 관점 및 서사의 문제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말하자면, '놀이'의 형태가 규칙을 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가 학습목표가 된다. 그것을 실제로 계획하고 놀이를 하는 과정까지에는 각각의 맡은 역할과 스토리를 이해해야한다. 얼기설기 꿰찬 이야기의 구성에는 그 스토리를 지배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놀이 활동에 접점할 수 있는 단계가 필요했다.

스마트폰으로 혼자 놀기에 익숙하고, 학원 가기에 바쁜 아이들 일상, 교육의 색깔이나 주제 의식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 없이 학부모의 권유로 동기 없이 따라온 아이들에게 의욕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동기유발 역시 아이마다 다르게 다가갈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돼야 했다.

세 명의 강사는 각각의 별칭으로 아이들을 전담했다. 나는 놀이 담당으로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프로그램 진행 담당은 우주에서 온 깐따(전병오)가 맡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진행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규율을 알려주고 지도해주는 분야는 삐야(정수연)가 맡았다.

별칭은 선생님이라는 칭호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맡은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가 그 수업에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 스스로 놀 꺼리를 만드는 것, 다만 놀이판은 다양하게 펼쳐 놓는 것, 아이들은 선택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 선택이 모두가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설명 방식에 변화를 모색했다. 사뿐사뿐 글고양이 학교 수업은 혼란을 즐긴다. 일자배열의 책상에서 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은 성인이 돼서도 고역이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가령, 우리는 동화책을 펼치고 책을 읽는다면 순번을 정했다. 아무렇게나 뛰고 놀고 구르는 아이들은 학습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노는데 관심이 있고, 어떻게 하면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화책 첫장을 펴고 일부러 작은 소리로 속닥이듯이 읽었다. 그러면 으레 한 두명의 아이들이 관심을 갖기 마련이었다. 지금껏 실패한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한쪽에 관심을 갖는 무리가 있으면 다른 무리도 서서히 통합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규칙이 있다. 절대로 앞 부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재밌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작기 앞으로 돌려 다시 보자고 하면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것처럼 사람을 맥없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쭉 읽는다. 그리고 난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 타이밍에 깐따가 바톤을 이어 다시 한 번 동화책을 읽어준다. 이야기가 재미있거나 혹은 처음부터 설명을 듣지 못한 아이들은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이때에도 절대 규칙이 있다.

먼저 수업 내용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 단계 미션 수행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극 물품을 고른다거나, 칠판에 오늘 할 수업 제목을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 그림과 함께 '신나는 기차여행'이라는 글귀를 제 마음대로 그린다.

문제는 20여명의 정원 속에 모든 것이 관심 없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만의 탐구 활동에 빠진 아이, 동료와 잘 어울리지 못한 아이는 늘 있었다. 그 비중은 크지 않지만 진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짜 교육이란 커리큘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아이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 동료와 어울리는 것,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지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사색에 빠진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극 교육을 해온 삐야의 몫이었다. 아이의 눈 높이에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어울려 그 아이가 하는 것을 함께 해주며 자연스럽게 본 수업에 동화되게 했다.

이 수업의 형태는 때론 반대로 행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분야에 세명의 선생님이 동시에 투입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함께 만든 솔개라는 놀이가 있다. 해남공공도서관 앞마당에는 해남공원이 있다. 거기에는 우뚝 솟은 나무와 바위 하나가 있다. 아이들은 패를 나눠 병아리와 닭이 되어 술래 잡기를 한다. 그때 세명의 강사는 아이들과 함께 뛰며 논다. 논다는 것은 어른이어서, 아이어서 봐주는 것 없이 정말 논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의한 내용을 적어요 ⓒ 김성훈


우수 독서 프로그램 선정

올해 해남공공도서관은, '사뿐사뿐글고양이 학교'로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관하고 2018년 책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도서관 독서 프로그램 경연대회에서 우수 독서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서울, 경기의 시 단위 도서관이 선정된 것과 상반되게 전남에서는 군 단위 도서관으로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심사 기준은 참신성과 다른 도서관이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참여 학생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도서관 고유 기능인 책과 친해지는 방법에 다른 대안 모델로서 인정 받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덧붙여 책이라는 활자에만 아이들의 눈과 상상력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의 주변에 보이는 자연물, 사람, 지역 공동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모색한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난 삼월 삼짇날, 우리는 축제현장에서 주인공이었어요 ⓒ 김성훈


지역에 돌아오는 혜택

교육을 교단에 선자와 책상에 앉은자로 구분하는 것은 구시대의 산물이다. 또한 교육의 공간이 교실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도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다. 전남 해남군 관내에는 초중고 합쳐 50여개의 학교가 있다.

각각의 학교는 그 지역의 명소이지만 학교 밖의 지역과 연계한 확장성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라는 것을 극복하고 지역 소통의 허브의 역할을 해남공공도서관이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이번 사뿐사뿐 글고양이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제시했다.

매주 수업의 큰 틀은 변하지 않지만, 참여 아이들이 관심 갖는 것,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교육 내용으로 구성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 상반기 때는 '절기'와 '축제'라는 주제로 접근했다.

지역의 크고 작은 축제에서 '어린이'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어른들이 하는 놀이에 아이들은 축제의 주체자이기 보다는 수혜자에 가까웠다. 이것은 비단 해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주형틀에 맞춘 붕어빵처럼 부스가 늘어선 가운데, 느낌도 감동도 없는 체험 부스가 축제 현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반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찾았다. 삼짇날 돌아오는 제비로 분장을 했고, 꽃으로 변신했다. 또, 꽃수레에 올라 타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멤버가 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준비를 아이들이 하기는 힘이 든다. 그 부분을 지역의 학부모와 어른들이 도와줬다.

아이들의 생각이 우선이었다. 이것은 관점의 문제였다.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끈기가 없을 수도 있었다. 싫증도 빨리 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어른들의 자세였고, 아이들이 축제를 하는 동안 즐겼다는데 의미가 컸다.
  

오늘은 뭘할까? 아이들이 칠판에 사뿐사뿐글공야힉교를 적으며 생각한다 ⓒ 김성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오늘은 뭐 해요?"

안녕이라는 말 대신 아이들이 토요일 10시, 해남공공도서관 2층 대강의실을 열면 하는 말이다. 뭘 한다는 말을 굳이 묻는다면 늘 대답은 똑같다. 글쎄 뭘 할까이다. 뭘 할까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눈여겨 본다.

여전히 우리는 '학습의 이행과정'이다.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수업 첫날에는 늘 학부모 강연회를 연다. 사뿐사뿐글고양이 학교 수업은 시끄럽다는 것과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솔직히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다행히 지역의 학부모님들도 우리와 똑같이 학습이행과정을 거쳤다. 신뢰하는 눈빛을 보여주고, 수료식이 있는 날까지 대부분의 아이들 이탈 없이 꼬박꼬박 챙겨 도서관으로 등교 시켜주는데 그 소임을 다해준다.

연극, 문학, 미술 등 융합형 예술 작업을 자연과, 지역과 벗삼아 함께 한다는 것, 그 취지는 좋지만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이 '어떻게' 였고 '왜'였다. 왜 지금 이러한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이제는 지역에서도 묻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무엇이 우선이 돼야 할까.

박향미 해남공공도서관장은,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으로 거듭나는 해남공공도서관이 시도하는 맞춤형 어린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활짝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수연 강사는 낱말시장, 팝업북 제작, 그림자 놀이 등 문학, 그리고 상상의 동물인 글고양이를 통해, 교육의 무대가 따로 구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업에 임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어른의 몫은 무엇일까. '그 시절만 떠올라도 따뜻했다'는 감성, 그것 하나 아닐까.
 

해남공원에서 우리는 모두 악동이 됐다 ⓒ 김성훈

#사뿐사뿐글고양이학교 #해남공공도서관 #야호문화나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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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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