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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랑했던 배우... 키키 키린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 마디

[리뷰] 고 키키 키린이 남긴 세 편의 영화, 세 가지 장면을 기억하다

18.09.19 11:01최종업데이트18.09.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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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일본 배우 키키 키린이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단골 출연해 한국에서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배우다. 그녀를 두고 '국민 엄마'라는 호칭이 붙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만으로 키키 키린의 연기를 설명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첫 주연작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도쿄타워>에서부터 최신작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키키 키린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존재감을 더욱 빛냈을 뿐 아니라, 영화가 담고있는 메시지를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전해주는 배우였다.
 
정성을 다해 앙을 만드는 '요시이 도쿠에'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한 작은 가게에서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주인 센타로와 알바생 도쿠에의 이야기다. 키키 키린은 이 영화에서 도라야키에 들어갈 팥소 '앙'을 만드는 알바생을 연기했다.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요양소에서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야 했던 도쿠에는 어쩐지 불행해 보이는 센타로를 만나 '앙'을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팥이 내뱉는 말에 귀를 귀울이면서 모든 정성을 다해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 이는 비단 앙을 만드는 과정만은 아닐 것이다. 도쿠에는 무기력하게 삶을 흘려보내는 센타로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남긴다.
 
"잊지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니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지나가버린 과거 대신, 지금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요시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키키 키린은 다 큰 철부지 아들을 둔 어머니 '요시코' 역을 맡았다. 아들 료타는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현재는 흥신소에서 사설 탐정으로 일한다. 아내와 이혼하고도 몰래 뒤를 밟기도 하고, 아이 양육비도 못 보내면서 번 돈은 경륜으로 날리기 일쑤다.
 
아이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그 날도 료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찾아 전당포에 팔아넘길 생각으로 어머니집을 찾았다. 요시코는 이 철없는 아들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며 나무라지 않는다.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걸 이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태풍이 휘몰아치던 그 날 밤, 요시코는 말한다.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중략) 그래도 살아가는거야. 그럼, 그런 적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거야. 이렇게 하루하루를 그래도 즐겁게. 인생이란거 단순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과 살아가는 '하츠에 시바타'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 티캐스트

 
영화 <어느 가족>에서 키키 키린이 연기한 '하츠에 시바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을 모아 '가족'으로 만든 구심점이자 실질적인 가장이다. 여섯 명의 가족은 사실상 하츠에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을 '부양'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츠에는 가족들을 진심으로 아낀다. "다들... 고마웠어." 다함께 놀러간 바닷가에서 하츠에가 마지막을 예견한 듯 가족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읖조리는 장면은 두고두고 먹먹함을 남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따르면 이 대사는 키키 키린의 애드리브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한마디는, 공교롭게도 그녀가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었다. 어느 영화에서든 늘 담담하면서도 따스하게 우리네 인생을 이야기했던 배우, 키키 키린. 덕분에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던 순간에 종종 위로를 받곤 했다. 고마웠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그녀에게 건네야 할 인사인지 모른다.
키키 키린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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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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