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학교수들 "사법농단,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전국 규모 첫 성명... "사법의 위기, 정의의 위기, 국가의 위기"

등록 2018.09.17 12:01수정 2018.09.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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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70주년 및 법원의 날인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사법농단' 피해자들이 모여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구속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등의 사법농단 의혹에 전국 법학교수 137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법농단 의혹을 가리켜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라고 요구했다.

17일 로스쿨 21개 소속 교수 75명과 법과대학 39개 소속 교수 62명은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전국 법학교수 성명을 발표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SNS를 통해 "연대의 성명을 내달라"고 요청한 지 10일 만으로, 법학 교수들이 전국 규모로 성명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무후무한 일"

이들은 성명에서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이렇게 법원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관의 양심을 팔아 권부와 거래한 적은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판결,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 등 소위 '재판거래' 대상으로 꼽히는 의혹에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학생들에게 중요 판례로 가르쳐 온 사건들이 모두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하니, 허탈하기 그지없다"라고 밝혔다. 

교수들은 "이것은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헌법 파괴이자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이로 인해 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재판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 이 사태는 사법의 위기이자 정의의 위기요, 국가의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정치권과 법원의 소극적 태도 비판


이들은 정치권과 김명수 대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이들은 "이것보다 훨씬 경미한 사건에서 국정조사나 특검을 실시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국회의원들이 왜 이 사태에선 입을 다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을 향해서도 "불신의 당사자인 법원은 갈팡질팡하고 있다"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실규명에 협조한다고 천명했음에도 그에 따른 사법행정적 조치는 부족하기 그지없고, 관련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대부분 기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행위까지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제자들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나"라며 "이 상황에서 우리 법학 교수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선생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전문]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전국 법학교수 성명

지난 1년 간 사법농단 사태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처음엔 대법원에 밉보인 일부 법관을 특별 관리해 인사 상 불이익을 주었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할 법원에서, 그것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상고법원을 설립한다는 명분으로 권부의 핵심과 연결해 재판을 거래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 헌정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이렇게 법원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관의 양심을 팔아 권부와 거래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지난 몇 년 간 학생들에게 중요 판례로 가르쳐 온 강제징용사건, 과거사 손배사건, 전교조, KTX 및 쌍용자동차 노동사건 등에서, 모두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하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헌법파괴이자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이로 인해 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재판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 이 사태는 사법의 위기이자 정의의 위기요 국가의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에 심히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보다 훨씬 경미한 사건에선 국정조사나 특검을 실시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국회의원들이 왜 이 사태에선 입을 다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법원의 태도도 의아하다. 지금 우리 사법부가 일대 위기에 빠져 있는데도 그 불신의 당사자인 법원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 중차대한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실규명에 협조한다고 천명했음에도 그에 따른 사법행정적 조치는 부족하기 그지없고, 관련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대부분 기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행위까지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은 심각한 사태다. 학생들에게 법과 정의를 가르치는 법학교수라면, 더욱 내일의 법률가를 키우는 로스쿨 법학교수라면, 밤잠을 자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제자들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사법농단을 이야기하면서 헌법적 문제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학생들이 과거사 사건에서 왜 대법원이 뜬금없이 소멸시효기간을 재심 판결 확정 후 6개월로 제한했는지를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우리 법학 교수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매일같이 대법원 판례를 가르치면서 사법정의를 강조하는 우리가 이 사태를 외면하는 것은 법학교수로서 양심상 허락하지 않는다. 법과 정의를 갈망하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법률가가 되겠다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우리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제자들이 법률가와 법학도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선생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에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과 법과대학 등에 소속해 있는 우리 법학교수 일동은 다음 사항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1.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법농단과 증거인멸에 책임 있는 자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며, 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2.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에 관여한 전·현직 대법관들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3. 국회는 이 사태에 대해 즉각적으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특별재판부설치를 위한 관련법 제정을 서두를 것이며,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대법관과 법관에 대한 탄핵절차에 돌입하라!

4. 국회는 재판거래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2018. 9. 17.
전국 법학교수 일동
#사법농단 #로스쿨 #법대 #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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