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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웃음꽃 핀 '수미네 반찬', 공익성도 잡았다

[TV리뷰] 허기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요리, 김수미가 해내다

18.09.15 13:24최종업데이트18.09.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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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네 반찬>의 한 장면 ⓒ tvN

 
"자극적이지 않고 진짜 딱 집밥 같아요. 식당 밥 같지 않고." 
"그럼 집밥이야. 그걸 내가 해드리려고."


김수미는 요리를 하면서 엄마를 떠올린다고 했다. 식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면서, 조리를 하는 과정을 통해, 구현된 맛을 음미하며 엄마를 추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음식을 '미각'과 연결짓곤 하는데, 실제로는 시각·청각·후각·촉각까지 포함된 오감(五感)으로 하는 체험이다.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당시의 분위기와 기분이 어땠는지 등 모든 것이 음식 속에 축적된다. 그만큼 음식은 강렬하고 절절한 기억이다. 

tvN <수미네 반찬>이 일본에서 반찬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 절묘한 신의 한 수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맛' 혹은 '고국의 맛'을 그리워하고 있을 수많은 재일 교포들을 위한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김수미니까 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지금 이 시대에 '엄마가 반찬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캐릭터가 아닌가. 프로그램의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반찬 코너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묵은지볶음, 코다리조림, 고사리 굴비 조림, 꽈리고추 멸치볶음, 묵은지 목살찜, 꽃새우 마늘종 볶음 등 수북이 쌓아놓은 반찬들은 금세 동이 났다. 이틀에 걸쳐 무려 1500개의 반찬통이 팔린 것이다. 결국 김수미는 1인 반찬 구매 개수를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맛을 보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수미네 반찬>의 한 장면 ⓒ tvN


김수미는 더운 날씨에도 차례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급기야 대기줄이 다음 골목까지 이어지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교통정리에 나섰다. "여기는 왜 이렇게 오래 먹어! 빨리 먹고 나가!" 애타는 김수미의 마음을 아는지라 손님들도 조금씩 서둘렀다. 그러자 장동민도 "셋 셀 테니까 그 안에 드세요"라고 거들고 나섰다. 가게 안은 웃음꽃이 피어 났다.

워낙 손님들이 많았던 터라 막판에 음식이 다 떨어졌고,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젠 순발력과 기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셰프들은 현지에서도 식재료 공급이 가능한 콩나물탕 백반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뭔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제육볶음 백반을 급조했다. 손님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한국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맛이야."
"치료받았어요 마음이..."


수미네 반찬가게를 찾았던 손님들은 모두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들의 흡족함이 TV 화면을 통해 분명히 전해졌다. 정말 오랫만에 한국의 맛을 경험한 교민들은 어릴적 기억들을 더듬으며 행복감에 잠겼다. 해외여행을 가서 고작 며칠을 먹지 못해도 그리운 것이 집밥이 아니던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고대(苦待)했을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김수미의 정성 가득한 음식은 그리움에 허기진 마음들을 꽉 채워넣었다.
 

<수미네 반찬>의 한 장면 ⓒ tvN

 
그래서였을까. 장동민, 그리고 셰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했다. 최현석 · 여경래 · 미카엘 셰프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물밀듯 몰려오는 주문에 몸은 이미 지쳤지만,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드려야 한다는 정성과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전문가답게 위기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대처했다. 프로의식이 돋보였다. 장동민은 특유의 넉살로 웃음을 줬고, 주방과 홀을 오가며 부지런히 일했다. 

손님들도 한없이 너그러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합석에도 기꺼이 응했고, 맛이라도 보라며 자신의 음식을 상대방에게 기꺼이 권했다. 다들 함께 잔치 분위기를 내며 그 시간을 만끽했다. 물론 카메라가 돌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집밥'이라는 개념이 주는 푸근함이 공간 자체에 잔뜩 배어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것이 어쩌면 한국(인)의 정(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미네 반찬>의 한 장면 ⓒ tvN

 
"제가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고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재일교포들에게 큰 꿈도 주고, 반찬으로 정신적으로 치유도 한 것 같아서 '너 참 잘했다'라고 제가 저한테 칭찬하고 싶어요."

'굳이 일본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삐딱한 의문에 tvN <수미네 반찬>은 분명한 답을 보여줬다. 필요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야만 했다. 가능하다면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른 지역에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LA, 괌, 토론토 등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또 다른 해외 편이 기획되리라 짐작된다. 

예능은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재미'가 우선순위가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익성'이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방송은 공공재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크로스오버가 이뤄지고 있듯이 예능은 모든 영역과의 교류가 가능하다. 통섭(統攝)을 추구하는 데 유리하다. 그만큼 유연하다. 

tvN <수미네 반찬>은 예능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 웃음과 공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음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내고 있는 셈이다. 어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으랴. 이 글을 쓰는 내내 김수미의 묵은지 목살찜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꾸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아, 혹독한 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미네 반찬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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