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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먼저 지워야, 병역특례 비극 사라진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병역특례 논란 휩싸인 손흥민과 방탄소년단... 현명한 해결 방법은

18.09.04 15:22최종업데이트18.09.0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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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우리의 선수입니다. 우리는 그를 아끼고 걱정합니다."

아마도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의 한결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주장으로서 손흥민 선수는 과거 축구 대표팀을 이끌던 주장 박지성 선수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손흥민 선수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달성과 병역 문제를 향한 걱정도 이어졌다.

그런데 그 걱정을 한 사람이 한국인들뿐이었을까. 손흥민 선수의 병역 문제에 관해서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연 손흥민의 소속 팀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마음도 간절하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손흥민이 골을 넣고 우승을 하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야, (군문제를) 피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와 함께 토트넘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길 고대합니다."
"손흥민 선수의 병역 혜택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손흥민도 걱정을 많이 한 게 사실입니다."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포체티노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은 한국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의 주요 이슈였던 손흥민의 병역 면제 여부가 한국인들의 관심사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단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손흥민의 몸값이 1억 유로(이적료)에 가까워졌다는 뉴스가 나오는 상황이었던 터라, 아시안게임을 지켜보는 많은 축구 팬들도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듯보였다.

▲ 자랑스러운 와일드카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축구대표팀 손흥민(왼쪽부터), 황의조, 조현우가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한일전이었던 결승전에서 극적인 승리가 확정되자, 토트넘의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BBC를 포함한 외신과 해외 스포츠 언론들이 '손흥민의 병역 면제'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언론은 물론이요.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에 해당하는 이들 역시 기뻐하는 손흥민과 병역 면제 확정을 연결 짓는 모습이었다.

반면 아시안 게임 엔트리가 발표되던 시점부터 논란을 달고 다녔던 야구팀 선수들을 향한 비난은 식을 줄 몰랐다. 금메달을 따고도 몇몇 선수들과 감독이 욕을 먹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3일 입국장에선 야구대표팀 내 논란의 당사자들이 기념촬영이 시작되자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웃지 못 할 소식도 전해졌다. 이게 다 군 면제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금메달 소식이 전해진 후, 이미 아시안게임 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병역 특례' 혜택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으로부터 방탄소년단의 2018년 두 번째 빌보드 1위 탈환 소식이 전해졌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손흥민의 금메달과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빌보드 1위

방탄소년단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중음악 성공의 지표로 삼곤 하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 우리 가수들도 이미 56년 전부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시아 걸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사실 그때는 걸그룹이라는 명칭도 없긴 했습니다만 미국에 진출했던 '김 시스터즈', '찰리 브라운'이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원더걸스, 보아, 빅뱅, 그리고 싸이까지...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상위권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였죠. 진입장벽은 늘 그렇게 높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의 방탄소년단. 지난 5월, 빌보드의 메인 차트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 200'에서 첫 1위를 한 데 이어서 석달 만에 또 다시 1위에 오르면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한 해에 2번 이상 '빌보드 200'에 이름을 올렸던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 비틀즈, 레드제플린, 대단한 이름들이죠. 이제 방탄소년단은 이 전설의 슈퍼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지난 3일, 방탄소년단의 소식을 전하는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멘트는 이례적으로 길었다. 멘트의 소재가 대중문화 소식임을 감안하면 더욱 길게 느껴졌다.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 앨범이 나온 지 열흘 만이요, 지난 5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에 이어 3개월 만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재탈환한 시점이기도 했다.

한 해에 두 번 정상을 밟은 건 2014년 영국 그룹 원디렉션의 사례가 있었지만, 비영어권 가수가 영어가 아닌 앨범으로 1년에 두 차례 1위에 오른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가수로는 최초다. 또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 첫 주 판매량은 올해 미국 주간 앨범 순위의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낙연 총리도 청와대도, 지난 2일과 3일 SNS를 통해 연이어 미국 현지로부터 들려온 방탄소년단의 쾌거에 축하를 보냈다. "방탄소년단과 한국 음악계에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 2010년대 팝 음악계 전체에 의미 있는 일"이라는 미 경제지 <포브스>를 필두로 영국의 BBC, 권위 있는 음악 잡지 <롤링스톤즈> 등 외신들도 방탄소년단의 기록할 만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이다. 물론, 전 세계인들의 소통 창구인 SNS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국내에서 예고됐던 논란(관련 기사 : 손흥민 군면제 해주자? 문 대통령의 '여섯마디'에 답 있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점화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위선양' 소식을 전한 손흥민과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 말이다. 3일 이 문제를 짚은 손석희 앵커의 멘트는 관련 내용을 한 눈에 요약하고 있었다.

2018년 9월 3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 JTBC 유튜브 갈무리


"그런데 이 BTS로 인한 새로운 논란거리가 생겼습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오늘(3일) 올라온 글입니다. '방탄소년단 세계 1위 병역면제해주세요. 아시안게임 1위도 해주는데…' 방탄소년단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자는 글은 수십 건이 등장을 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와 야구선수들이 군 면제를 받는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병역법 조항에 나오는 '국위 선양'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병역 면제 혜택은 40여 년 전인 박정희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양정모 선수가 첫 특례자가 된 이후에, 병역특례제도는 고무줄처럼 변해 왔습니다. 2002년에는 월드컵,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추가됐었고, 4년 전에 아시안게임에서는 66명이 한 번에 특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병무청장은 병역특례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예견된 병역특례 논란, 섬세해야 할 개선안

JTBC <뉴스룸>뿐 아니라 대다수 언론들도 앞다퉈 손흥민과 방탄소년단을 거론하는 기사를 내놓고 있다. 단적으로, 방탄소년단의 맏형인 진(25·김석진)과 손흥민 선수는 동갑내기인 1992년생이다. 방탄소년단이 거둬들이는 수익과 손흥민 선수의 몸값이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준조차 시대착오적이고 계량조차 모호한 '국위선양'이란 잣대로 본다면, 방탄소년단과 손흥민의 비교우위를 가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노는 물'이 다를 뿐이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와 해외 클래식 콩쿠르 입상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듯, 전 세계 팬들을 거느리는 K-POP 아티스트와 역시나 해외 팬들이 무수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의 '국위선양'을 단순 비교 할 순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상식' 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결국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올림픽 3위 이상 입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 등등. 이들 입상자들이 공익근무 요원으로 편입된 이후 특기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는 자격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논란이 돼왔던 사안이 최근 들어 전무후무한 기록과 영향력을 자랑하며 '국위선양'에 나선 방탄소년단과 손흥민의 병역특례 형평성 문제로 국민적 관심사가 됐을 뿐이다. 최근 이 문제로 '이슈 파이팅' 중인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3일 페이스북에 올린 주장이 이를 대변한다.

"바이올린 등 고전음악 콩쿠르 세계 1등은 군 면제 받는데 대중음악 세계 1등은 왜 면제 못 받느냐는 상식적인 문제제기"

이날 병무청 역시 병역특례 제도를 재검토 하겠다고 나섰다. 분명 긍정적인 신호라 할 만하다. 제도든 예술이든, 유명인의 사례나 그들의 족적이 어떤 '선도'를 이끌어내는 법이다. 다만, 형평성을 전제로 그 기준은 확실히 섬세하게 다듬는 것이 전제가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이 필요하달까.

스포츠 대회와 대중예술, 기존 예술 장르의 변별점의 출발은 무엇인가. 세부 기준의 근간이 될 대회나 차트의 선별은 또 어떤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 그 기준에서 소외될 수 있는 종목이나 분야 선수들, 예술가들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 금메달 목에 건 오지환 1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오지환(오른쪽)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 연합뉴스


이를 위한 다각도의 연구와 토론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복무 시점부터 연기 여부까지, 지금껏 세심하지 못했던 기준들로 인해 차별받았던 사례들을 보완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던 이들까지 보듬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 말이다. 이를 위해 병무청은 태스크포스(TF) 구성이나 외부 용역 등 개선안 마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좋다. 다만 더욱 철저한 계획과 보완책이 필요하다. 그 전제로, '국위 선양'이란 박정희 시대의 표현부터 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올림픽 금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과 K-POP의 영향력을 단순 비교하는 비극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메달 유무로, 입상 여부로 병역이란 인생의 갈림길에서 부득이하게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양산되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 탄탄한 기준과 그로부터 비롯된 형평성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이유다. 그래야만 손흥민 선수의 병역 면제도,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빌보드 1위도 마음 놓고 축하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방탄소년단 손흥민 병역특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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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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