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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얼굴 왜 저래?... 10년 전 그날, 그가 내게 한 일들

[공모-극장에서 생긴 일] 난생 처음 극장에서 스릴러 영화를 봤더니...

18.09.01 20:13최종업데이트18.09.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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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 포스터. ⓒ (주)쇼박스

 

십 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별생각 없이 뒹굴거리던 저녁 도착한 문자. "내일 영화 보러가자. 조조니까 10시까지 CGV로 와." 네 명 친구들의 단톡방이다. 나는 사전에 무슨 영화인지 잘 찾아보지 않는다. 그래야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기대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다. 몰라야 본전일 때가 많다.
 
몇 달 전 영화 <버닝>을 볼 때도 19금이란 소릴 듣고 쓸데없이 설렜다가 남모르게 실망했다. 옴므든, 팜므든 파탈 멜로를 기대했는데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건데 무식하게도 헛된 기대를 한 셈이다. 19금이 다 그런 19금은 아니다.

 

<추격자> 액션물이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던 그때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 (주)쇼박스


극장에 도착하니 제목이 <추격자>란다. 액션물인가보다. 액션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끝나고 점심이나 먹으며 수다 떨 생각에 별 저항 없이 광고시간에 커피를 마셨다. 사실 나는 '미어캣'이다. 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옆에서 누가 큰소리만 내도 온 어깨가 들썩일 정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학대를 당했다거나 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닌데,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해보면 아마도 간이 작은 게 분명하다. 불행히 위는 크다.
 
그러니 공포영화는 언감생심. 심지어 코미디 영화에서 웃기려고 놀래키는 장면에서도 뻔히 보이는데도 놀라서 들고 있던 음료를 쏟는다. 내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뜻밖의 팝콘 무상급식을 받기도 한다. "너때문에 더 놀랐잖아." 내가 극장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너무 잘 낚여서 스스로가 한심할 때도 있다.
 
<추격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로 전직 형사였던 보도방 사장 김윤석이 연쇄 살인범 하정우를 쫓는 영화다. 초반부터 하정우는 자신이 여자들을 죽였다고 패를 까지만 긴장감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영화인지 꿈에도 몰랐다.

 

세상에나, 사람 머리에 망치로 정을 치다니. 자동으로 몸이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소리도 무서워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민방위 훈련도 아니고, 돈 내고 무슨 짓인지. 이어폰이라도 가져왔음 이럴 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들으며 두려움을 떨쳐내고 평정심을 유지할 텐데. 대신 눈감고 귀 막고 속으로 애국가를 5배속으로 4절까지 불렀다.
 
갈수록 이거 뭔가 촉이 좋지 않다. 제목만 액션의 탈을 쓴 공포다. (이)승철 오빠 노래처럼 "밖으로 나가 버리고" 싶었다. 우리 넷 중 가장 용감무쌍 무대포는 당시 늦둥이 셋째를 임신한 친구 A이다. A는 스크린을 한 번 보고, 겁에 질려 엎드린 나를 한 번 보고는 사이코패스 같은 오묘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오로지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낮게 속삭였다. "이거 태교에도 안 좋을 거 같아. 우리 나가자." 내 머리꼭대기에 서 있는 그녀는 낮게 화답했다. "괜찮아, 나 이런 영화 좋아해." 임신 7개월쯤이라 배가 상당히 불러있는데 아마도 반은 간덩이일 것 같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몰려왔던 공포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 (주)쇼박스

 

나 다음으로 겁이 많은 친구 B를 공략했다. 그녀도 벌써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의자 밑으로 최대한 숙여 스크린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숨었다. 몸이 쥐며느리처럼 말렸다. "야, 나가자." 난감한 표정의 그녀는 "쫌만 있다가 나가자"고 말했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친구라 본전의 반도 못 뽑았으니 무서워도 참는 것 같다. 돈이 더 무섭다.
 
친구 C는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묵직한 친구다. 감정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 같은 얼굴로 묵묵히 화면을 보고 있다. 애타는 눈빛을 보내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중에 들으니 너무 긴장해서 그랬단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아무리 귀를 막아도 공포는 온다. "4885"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빼꼼히 들어 화면을 올려보았다. 추격이 시작되었다. 치고 박고하더니 하정우가 잡혔다. 이렇게 잡히는 건가.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근데 웬걸. 경찰서에 잡혀간 두 사람 중 김윤석이 수갑을 차고 있다. 이야기가 풀릴 듯 말 듯 이상하게 풀려간다. 감독이 요물이다. 아주 사람을 들었다놨다 한다. 답답한데 억지스럽지가 않다. 하정우는 눈빛이 왜 이런 거야. 사람 선하게 생겨가지고 저러니 소름이 더 끼친다.
 
널리 알려진 전설의 슈퍼마켓 장면. 슬핏 본 장면에 여자의 손끝이 떨리는 걸 봤다. 30대에 요실금 올 뻔했다. 이 후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거의 의자 밑에 껴 있었고 너무 무서워 일어서서 나갈 수도 없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라는 시처럼 나는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른 사람들의 리뷰 글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알았다. 대개는 가족들에게 영화내용을 상세히 얘기해 주는 편인데 이 영화는 "진짜 무서워"밖에 할 말이 없었다.
 

생애 첫 스릴러 영화의 날카로운 추억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 (주)쇼박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찌나 움츠려 있었는지 목과 어깨에 담이 왔다. 부항을 떠야 하나. 당시 2월이라 추운 날씨였는데 몸에서 한기가 빠지질 않았다. 아이 낳은 지 십년도 넘었는데 몸조리를 다시 해야 할 판이다. 기가 다 빠져서 입맛도 없다. 다들 영화 한 편 봤을 뿐인데 녹초가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단다. 임산부 친구A만 여유롭다. 외려 "그렇게 무섭냐?"라며 나를 보며 웃는다. 샤브샤브도 잘 만 먹는다. 독한 것. 사람이 무서우라고 만들어 놨으면 예의상이라도 벌벌 떨어줘야지 인정머리가 없다. 사실은 그 담대함이 부럽다.


어찌됐든 생애 첫 스릴러 영화를 무사히(?) 봤다. 요즘 시나리오 쓰기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한 나는 시나리오 관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단순한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공권력에 대한 풍자, 성을 파는 여자들에게 자행되는 끔찍한 범행들과 사람들의 무관심, 진실을 알고자하는 개인의 무력감, 책임회피를 위한 눈감아 주기 등등, 현실과 너무나 맞닿아 있다. 거기에 숨 막히는 이야기 전개로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미친 연기력들. 하지만 그렇다고 두 번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게 함정.
 
이 영화의 엔딩이 수정되었다는 글을 봤다. 원래는 머리 잘린 미진이 죽기 전 더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죽고 나서도 마지막 두 남자의 격투 장면에서 그녀의 잘린 머리가 흉기로 쓰이는 엽기적인 장면이 있었단다. 너무 잔인해서 수정했단 글을 읽고 이 명대사가 떠올랐다.
 
"고만해라, 마이 무따."
 
추격자 공포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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