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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우의 세월호 참사 추모, 그는 공부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 품은 영화 <대관람차>의 호리 하루나

18.08.27 18:51최종업데이트18.08.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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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대관람차>에 출연한 배우 호리 하루나. 이 작품으로 그는 첫 한일합작, 그리고 첫 음악 영화에 도전했다. ⓒ 이선필


이제 20대 초반(1997년생)이지만 이 배우가 거쳐온 작품의 면모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한국과의 인연 또한 특별하다. 30일 개봉할 영화 <대관람차>의 배우 호리 하루나다.

태풍 솔릭이 한창 중부지방으로 북상 중이던 지난 24일 서울의 모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이지만 동시에 깊은 내면을 품은 듯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일본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대관람차>에서 호리 하루나는 5년 전 겪은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해나가는 하루나 역을 맡았다.

특별한 경험

배우 스스로 "이 작품은 특별했다"고 고백했다. 난생처음 기타를 잡고 연주하며 연기해야 했고,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백재호, 이희섭 그리고 가수 출신 배우 강두와 호흡을 맞췄다. 한일 합작, 음악 영화 등 모든 게 그에겐 첫 경험이었던 것. 호리 하루나 외에도 오사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뮤지션인 스노우 등이 이 영화에 비중 있게 출연했다.

"한국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는데 일본 각본과는 완전 다른 형식이었다. 처음엔 읽고 나서 아버지와 하루나의 갈등이 잘 이해가 안 됐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일본과는 달라서 그 부분이 엄청 힘들었다(웃음). 하지만 강두씨와 스노우씨와 함께 연습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느낌이 잡히기 시작했다.

제 고향이 가나가와 쪽이다. 오사카는 제가 가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정서가 확실히 다르다. 사실 촬영할 때 오사카에 사시는 스노우씨보다는 한국 스태프 분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낄 정도였다(웃음). 제가 사는 간토 지방과는 많이 다른 정서가 오사카에 있다."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 우주레이블


▲ '대관람차' 음악으로 듣는 우주여행 지난 23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 <대관람차>의 주역들. 왼쪽부터 백재호 감독과 이희섭 감독, 배우 강두, 호리 하루나, 스노우, 지대한. 영화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조금은 괜찮아지는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슬로우 뮤직 시네마다. ⓒ 이정민


▲ '대관람차' 호리 하루나, 한국영화 첫 출연 배우 호리 하루나가 23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대관람차> 시사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대관람차>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조금은 괜찮아지는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슬로우 뮤직 시네마다. 30일 개봉. ⓒ 이정민


처음 잡아본 기타였지만 아빠를 위해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있는 만큼 호리 하루나는 어색하게 보이지 않아야 했다. 실제로 강두가 하루나의 기타 교습을 맡았다. "강두씨 연주하는 걸 녹화했다가 틈틈이 집에서 그 영상을 보며 익혔다"고 그가 말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강두와의 작업을 두고 그는 "대화보다는 느낌으로 알 수 있게 됐다"며 "소통이라는 게 굳이 말이 아니더라도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닫게 됐다"고 내심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실제로 강두씨와 나이 차가 18년이지만 영화 설정에선 몇 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질문에)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앞세워서 생각하기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강두씨가 어색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일본어를 전혀 못 하신다고 했는데 대사를 정말 잘하시더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 배우는 속도가 참 빠른 것 같다. 하지만 제 한국어는 늘지 않고 있다(웃음)."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대관람차>는 음악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의 큰 상처를 위로하려고 한다. 곳곳에 세월호와 후쿠시마 참사를 연상케 하는 설정이 담겨 있다. 호리 하루나 역시 그 지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가 맡은 역 또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슬픔이 있는 인물이었다.

"제가 그런 아픔을 실제로 겪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사고 이후 후쿠시마로 가서 자원봉사를 했을 때 봤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하루나를 이해해 나갔다. 그리고 전에 일본과 한국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로의 집에서 홈스테이도 하고,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더 자세히 알게 됐다.

일본의 젊은 친구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는 말들이 많지만 학교에서 잘 교육하지 않기에 그런 것 같다. 저 역시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가 교류 프로에 참여하면서 진실을 알게 됐다. (세월호 참사는) 제가 모르는 사고도 아니고, 그 사고로 저 역시 큰 상처를 받았기에 지금까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영화로 한 번 더 사건을 되새기는 기회가 됐다."


ⓒ 이선필


"후회할까 걱정하지 말고 해보고 후회하자"

<대관람차> 제작진과 인연도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마지막 응원>이 초청받았을 때 한국에 온 호리 하루나는 같은 부문에 초청된 백재호 감독과 만나게 됐고, '언젠가 같이 작품을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오사카를 찾은 백재호 감독이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호리 하루나가 등장한 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 "한일 교류 프로그램을 하면서 늘 한국과 인연을 나누고 싶었는데 한일 합작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좋았다"며 당시 기억을 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호리 하루나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초청작인 <마지막 응원>(Don't Say That Word)으로 일본에서 타마 뉴웨이브 작품상, 후우오카독립영화제 우수상 등을 받았고, 두 편의 TV 드라마에도 출연해 인지도를 쌓고 있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 극중 아키(마츠오카 마유)의 아르바이트 동료로 잠깐 등장한 호리 하루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기를 얻는다든가 인지도에 신경 쓰기보다는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며 제법 당차게 그가 말했다. 최근 출연작인 <카랑코에의 꽃>은 학교 내 성소수자 이야기를 농밀하게 그린 작품. "특별히 성소수자 이야기라서 출연한 건 아니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시나리오가 좋아서였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영화 속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 그러니까 소모적으로 쓰이는 캐릭터보다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할 법한 사람의 캐릭터를 하고 싶다. (배우라는 단어에 쑥스러운듯 웃으며) 스스로는 아직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중요하다. 온전한 사람으로 여러 경험과 공부를 하면서 그걸 바탕으로 연기하고 싶다.

연기 역시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에 부딪힌 것 같다.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단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걸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연기를 했다. 세 살 때부터 클래식 발레를 했는데 엄마가 영화를 되게 좋아해서 함께 영화를 보다가 막연하게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연예계는) 무서운 곳이라고 했지만...(웃음)."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단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걸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연기를 했다." ⓒ 이선필


"지금은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며 호리 하루나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소식을 전했다. 전공은 심리학.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사람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은 이 신인의 깊은 내면이 느껴지는 선택이다.

"일본에선 만화 원작이 인기가 많은데 이런 원작이 아니면 영화 제작이 힘들긴 한 게 사실이다. 그만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적기도 하다. 좋은 감독님들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많은데 어서 제작됐으면 좋겠다. 극장 관람권 가격도 많이 비싼 편이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극장보다는 DVD를 빌려 보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관람차> 역시 극장에서 보시는 걸 추천한다(웃음)."

호리 하루나 대관람차 백재호 세월호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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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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