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말레이시아전 '충격패', 금메달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국 1-2 말레이시아

18.08.18 10:51최종업데이트18.08.18 10:51
원고료로 응원

▲ 고개숙인 대표팀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전반 두골을 허용한 뒤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아주 오래된 아시아 축구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졌던 메르데카 배 축구대회에서 아시아 최고의 팀 한국을 홈 팀 말레이시아가 이겨보기 위해 경기 내내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수비에 치중하다가 빠른 선수를 활용한 역습을 펼쳐 한방을 제대로 먹이는 것이었다. 수십 년 전에도 그렇게 당하더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당하고 말았다.

세계 축구는 발전했다고 하지만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옛날 그대로여서 "말레이시아쯤은 가볍게..."라는 생각을 품은 선수들이 있는 것 같다. 속이 꽉 찬 축구 실력으로 경기마다 찾아오는 고비를 넘지 못하면 낭패를 겪는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인가?

김학범 감독이 이끌고 있는 23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7일 오후 9시 인도네시아 반둥에 있는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E조 말레시아와의 2차전에서 1-2로 패하는 바람에 금메달 도전에 빨간 불이 켜졌다.

플레이 메이커의 패스 정확도

아시아 축구 흐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우승 후보 한국을 상대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빠른 압박 플레이로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습 기회가 왔을 때 뒤통수 한방을 제대로 날리는 것이다. 옹 킴 스위 감독이 이끌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역시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말레이시아의 첫 골이 이렇게 빨리 터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경기 시작 후 5분도 안 되어 하지크 나즐리 골키퍼가 멀리 차 올린 공이 한 번 바운드 될 때 한국 골키퍼 송범근은 솟구쳐 오르며 그 공을 잡아냈다. 그런데 그 공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말레이시아의 에이스 사파위 라시드를 우습게 본 것이 화근이었다.

송범근이 뛰어올라 공을 잡고 착지하는 순간 수비수 황현수를 제대로 피하지 못한 것이다. 공이 바운드 되는 순간 두 선수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선수끼리 충돌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송범근이 그 공을 잡지 말고 왼쪽 옆줄 밖으로 쳐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 아쉬운 순간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전반 송범근 골키퍼가 말레이시아 라시드에게 첫골을 허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이 패한 결과를 놓고 봐도 상대 팀인 말레이시아가 이렇게 빠르고 거칠게 압박한 뒤 날카로운 역습으로 대응할 줄 몰랐거나 우습게 본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 셈이다. 바레인과의 첫 경기가 예상보다 잘 풀려 6-0이라는 점수판이 나왔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 아니었을까?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한국 남자축구 선수단 생각에 2차전 상대 말레이시아를 가볍게 이기고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짓고자 했을 것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개막 경기를 뛰고 나중에 합류한 손흥민 선수의 경우도 이 경기를 통해 몇 십 분 정도만 컨디션 점검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플레이 메이커들의 패스가 정확하지 않으니 좋은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기록면에서도 유효 슛은 말레이시아가 한 개 더 많았다. 34분에 상대 골키퍼 하지크 나즐리의 슈퍼 세이브에 걸린 황희찬의 오른발 슛과 88분에 황의조가 넣은 유일한 만회골이 한국 유효 슛 기록 전부였을 뿐이다.

김학범 감독은 전반부에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김건웅에게 맡겼다. 그리고 점점 김정민에게 볼 터치 기회를 점점 늘리게 했다. 후반전에는 교체 선수 황인범이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들 세 선수 모두 전진 패스의 정확도는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다.

▲ 황희찬 '내가 왜 이러지'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황희찬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전부가 수비에 가담한 말레이시아의 벌떼 수비 전술 때문이라고 변명해도 이들 플레이 메이커가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서 '황희찬-황의조' 투 톱에게 넘겨주는 패스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맨 앞 그들을 제대로 빛나게 하지는 못했다. 기본적으로 상대 팀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더 빠르면서도 섬세한 패스가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의욕만 앞세워 축구가 마음대로 이루어질까?

사실 한국 팀의 공격이 부실했던 이유를 플레이 메이커들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빌드 업 과정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어이없는 실수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내용은 물론 결과까지 말레이시아에게 내준 것이다.

5분 만에 내준 골은 송범근 골키퍼의 착지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황현수와의 충돌 사건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어도 전반전 추가 시간에 내준 추가 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상대의 역습 패스가 간판 공격수 사파위 라시드 앞 공간으로 뻗어오는 순간 수비수 황현수는 방향을 바꾸는 대응 동작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돌아서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겼으니 손을 뻗어서 잡기 반칙을 저지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사파위 라시드 선수의 실력을 우습게 보았기에 공도, 사람도 빠져나간 뒤에 따라잡지도 못하는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그리고 라시드는 각도를 잡고 나오는 골키퍼 송범근의 타이밍까지 제대로 빼앗는 왼발 슛을 반 박자 빠르게 찔러넣은 것이다. 사파위 라시드 선수의 순간 스피드나 결정 능력은 한국의 황의조나 황희찬 그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더 많은 실점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보기에 민망한 실수들이 눈에 띄었다. 전반전 플레이 메이커 김건웅의 빌드 업 패스(31분)가 어이없게 왼쪽 옆줄 밖으로 굴러나가거나, 수비수 조유민의 어정쩡한 횡 패스를 처리하느라 무리하게 수비에 가담한 김민재가 노골적인 걸기 반칙을 저질러 모하메드 알 호이시(사우디 아라비아) 주심으로부터 옐로 카드를 받은 일(49분)은 헛웃음만 나왔다.

후반전에 들어온 플레이 메이커 황인범은 에이스 손흥민이 교체 선수로 등장하자마자 올린 왼쪽 코너킥(58분)을 너무 힘차게 차 올린 나머지 반대쪽 옆줄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코너킥 하나를 날려버린 이 순간은 낯선 잔디 탓이었을까?

▲ 동남아팀에 일격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1-2로 패한 대표팀 손흥민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0-2로 끌려가고 있기에 1골이라도 아쉬운 시간이 흘러가던 60분에 수비수 조유민은 오른쪽 측면으로 빌드 업을 시도하는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윙백 이시영이 자리잡은 그곳까지 미치지 못하고 옆줄 밖으로 나갔다. 이 패스 실수들을 모두 잔디 탓으로 돌려야 할까?

이 경기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센터백 김민재는 수비수였지만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의 역습 패스를 과감하게 차단하는 역할을 해냈다. 용감했고 빨랐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치다보니 맨 앞 공격수들에게 넘겨주는 패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상대 골키퍼 하지크 나즐리의 순발력이 송범근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알면서도 어정쩡한 수비 뒤쪽 공간에 공을 차 올려서 황의조나 황희찬을 빛나게 하지 못했다. 롱 패스를 받는 쪽에서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그 부정확한 킥을 올려준 김민재는 계속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후반전에 들어온 손흥민이 이러한 패턴을 자제시키는 장면까지 TV 생중계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으니 다양한 공격 전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했다. 88분에 이진현의 절묘한 넘겨주기 패스를 받은 황의조가 한 골을 따라붙은 것만 봐도 패스를 주는 미드필더와 이를 받아 해결하는 공격수의 호흡과 타이밍은 고도의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 김학범 감독 '목 타네'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김학범 감독이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남자축구대표팀은 오는 20일(월) 오후 9시 키르키스스탄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금메달은 그저 의욕만으로 목에 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공격의 완성도는 한 단계 높은 치밀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E조 결과

★ 한국 1-2 말레이시아 [득점 : 황의조(88분,도움-이진현) / 사파위 라시드(5분), 사파위 라시드(45+1분)] 17일 오후 9시, 시 잘락 하루팍 스타디움
◎ 한국 선수들
FW : 황희찬, 황의조
MF : 김진야, 이진현, 김건웅(46분↔황인범), 김정민(57분↔손흥민), 이시영
DF : 황현수, 김민재, 조유민(78분↔이승모)
GK : 송범근

- 경고 : 김민재(49분) / 모드 가잘리(72분), 자카리아(89분), 하지크 나즐리(90+4분)


◇ 주요 기록 비교
슛 : 한국 14개, 말레이시아 5개
유효 슛 : 한국 2개, 말레이시아 3개
코너킥 : 한국 4개, 말레이시아 2개
프리킥 : 한국10개, 말레이시아 16개
점유율 : 한국69%, 말레이시아 31%
오프사이드 : 한국 4개, 말레이시아 0개


◇ E조 현재 순위
말레이시아 6점 2승 5득점 2실점 +3
한국 3점 1승 1패 7득점 2실점 +5
키르키스스탄 1점 1무 1패 3득점 5실점 -2
바레인 1점 1무 1패 2득점 8실점 -6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아시안게임 김학범 손흥민 말레이시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