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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국내개봉하면 주인공 소녀 위험" 금기에 맞선 영화

[스크린 속 중동이야기②] 이집트 페미니스트 소녀 그린 <아말>의 모아메드 시암 감독

18.08.17 15:58최종업데이트18.08.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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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5일, 독재타도를 외치며 중동권에 불었던 혁명의 기운 '아랍의 봄(Arab's Spring)'은 이집트에서도 뜨겁게 타올라 결국 무바라크(Hosni Mubarak)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연이은 대규모 촛불집회로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은 저 멀리 북아프리카에서도 몇 년 전 존재했었다.

수백만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시민들이 참가하여 집회, 행진, 광장점거, 파업 등의 형태로 저항했던 이 혁명을 이집트 자국에서는 '1월 25일 혁명', 내지는 '이집트 존엄혁명'으로 명명한다. 물론 공권력과 집회 참가자들의 유혈충돌로 최소한 846명이 사망했던 이 혁명은 평화로웠던 우리의 촛불집회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론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향후 예멘, 바레인, 요르단, 시리아, 리비아 등 다른 아랍국가들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을 중추로 진행되었던 이집트혁명은 경륜 있는 다수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체계적으로 진행했던 우리의 촛불집회와는 달리, 온라인상의 청년그룹들이 집회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독재, 표현의 자유, 경찰폭력, 부정부패, 높은 실업률 및 저임금 이슈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이 집회에서 이들은 초반에는 반자본주의, 국가주의, 여성주의를 주창했으나 차후에는 이슬람주의도 포함시켰다고 한다.

청년들이 초반에 여성주의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전반적으로 여성 인권이 열악한 이집트에서 직접 온몸으로 저항했던 여성들은 정치적 혁명 중에 또 다른 성평등 혁명을 동시에 성취하고자 했다.

2011년 그날, 타흐리르 광장으로 간 소녀

다큐멘터리 영화 <아말>의 스틸컷 ⓒ 모마헤드 시암


이슬람성지에서의 성희롱을 폭로하는 이슬람권의 미투운동(#MosqueMeToo, 모스크 미투)을 시작했던 이집트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작가&활동가 모나 엘타하위(Mona Eltahawy)씨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당했던 자신의 과거 성희롱 피해와 이집트혁명 중 전경들에게 당했던 폭력과 성희롱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여성으로 이집트혁명에 참여하면서 겪은 그녀의 체험담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상황을 잘 말해준다.

영화 <아말>(2017)의 10대 주인공, 아말(Amal)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집회에 참가하면서 성차별 및 연령차별에 저항하고 다층적 투쟁을 동시에 해내야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나는 축구 운동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말의 모습이 담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이 영화가 전쟁으로 상처받은 여린 십대 소녀 이야기를 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스크린을 통째로 포효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아말은 불과 14살 때 경찰의 폭력에 첫사랑을 잃은 후 과격한 성격의 집회에 끊임없이 참가하고 보수성향의 어머니를 설득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성장해나간다. 이런 그녀의 성장과정을 차례차례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얼마 전 한국에서도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보이후드>(2014)를 연상시킨다.

지난해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제30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 개막작으로 초청되었던 <아말>은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또 지난 20일 개막한 제15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도 초대됐다.  지난 7월 '모든 사람들이 다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모아메드 시암(Mohamed Siam) 감독과 만나 이 특별한 주인공 아말과 이집트혁명, 이집트 시네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혁명 전, 모든 이집트 언론 같은 목소리 냈었는데..."

영화 <아말>의 모아메드 시암 감독 ⓒ 클레어 함


- 주인공 아말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광적인 축구팬 훌리건 그룹을 찾아 다녔는데, 99% 정도는 다 남자들이었고 여자들은 아주 드물었다. 몇몇 소년들을 만나봤으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우연히 아말을 만나게 되었고, 만난 첫 순간에 그녀의 독특한 개성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축구팬 그룹보다는 그녀 개인의 친밀한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여성이 축구를 하거나 관람하는 것은 이슬람 종교에 반하는지 궁금하다.
"이슬람 종교 자체와는 무관하다. 단지 축구는 남성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할 뿐이고, 사회적 관습으로 여성의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길 뿐이다. 아말은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특히 축구를 사랑한다."

- 아말은 나이에 비해 정치적 식견이 뛰어나 보인다. 특별히 영향을 미친 요인이 있다면?
"아말은 이 점에서 아주 특별한 소녀다. 그녀가 13살에서 20살로 성장하는 시기에 이집트 사회는 크나큰 변혁을 겪었다. (소녀는) 남들이 30년 동안 겪을 일을 짧은 시간에 직접 겪고, 관찰하면서 아주 영리하고 조숙해진 것 같다. 아마도 가장 큰 배움터는 타흐리르 광장이었다고 본다.

그녀에게 뉴스란 TV를 통해 듣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뉴스의 중심부에 존재했다. 집안에서 수동적으로 뉴스를 전해 듣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말은 집회 현장 최전방에서 자신의 눈으로 진실을 목격하곤 했다. 물론, 소셜미디어도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전해 들었고 이를 통해 만날 장소를 정하고 새로운 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 이집트의 언론은 이집트혁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모든 나라에는 여론을 조작하는 주류언론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대안언론의 존재 여부다. 혁명 전에는 모든 이집트 언론들이 매번 같은 목소리를 내곤 했다. 마치 북한을 연상시킨다. 특히, 국영방송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그를 지지했으나, 혁명 후 그가 타도된 뒤에는 다양한 형태의 언론이 풍요롭게 존재했다. 일부는 정치풍자를 하기도 했고, 광장의 소식만을 직접 전하는 채널도 생겨 혁명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나는 당시 언론이 이집트혁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 다큐 속에서 경찰의 폭력에 강하게 항거하던 소녀가 결국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아말의 이런 모순된 모습이 암울한 이집트 사회에 갇힌 청소년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말이다. 이집트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조국에서조차도 본인만의 자리를 찾기 어렵고,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내에서 순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언론, 정치계, 의회에서도 이들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다."

"남성뿐 아니라 사회 전반 바뀌어야 성평등 가능"

- 본인은 여성의 인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스트인가.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10대 여성 아말에게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개인적으로는 싱글맘으로 나를 키우셨던 어머니의 삶을 통해 여성차별적인 사회의 모순을 배웠다. 이집트를 포함해서 아랍세계에서 젊은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았다. 나의 어머니는 여성인 자신도 남성처럼 똑같이 지적이고 교양 있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해야 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위해 평생 싸워야한다는 그 느낌은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이런 남성우월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에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남성만의 잘못도 아니고 여성만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아말과 주위 친구들만 보더라도, 그 어린 나이에 불평등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를 쉽게 기성세대로부터 배운다. 아주 어이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아랍세계의 남성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바뀌어야 성평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희망적인 것은 현재 여성운동이 진행 중이고, 혁명 이후 큰 동력을 얻어가고 있다. 여성의 권익을 위한 많은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 힘들게 만들었는데 이집트에서 상영 허가를 받지 못해서 속상할 것 같다.
"딱히 그렇진 않다.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것 자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내가 정말로 국내에서 영화를 공개하고 싶다면 인터넷상에서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 당장 내일이라도 올릴 수 있다. 카이로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관객들이 볼지도 모른다.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아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조심스럽다. 그녀의 안전을 100% 보장하기 전에는 이집트 내 상영 계획은 없다. 물론, 언젠가는 영화가 국내에서도 소개되기를 바란다. 아말의 삶의 방식과 여정이 우리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

아랍세계에서 최대 규모인 이집트의 영화산업

다큐멘터리 영화 <아말> 스틸컷 ⓒ 모마헤드 시암


- 이집트에서는 주로 어떤 소재의 영화가 상영제한을 받고 있나?
"내가 이해한 바로는 정치, 섹슈얼리티, 종교, 이런 순서로 우선순위가 정해져있는 듯하다. 즉, 정치적인 비판은 어느 수위를 넘어가면 불가능하다. 그 다음엔 성적인 소재. 이집트는 그나마 아랍계치곤 오픈된 편이긴 하다. 튀니지와 레바논은 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종교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내용이 무함마드를 비판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나와 이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섹슈얼리티와 종교는 동전의 양면이고 두 소재를 같은 무게로 판단한다고 평가한다. 검열관들이 지레짐작만 하고, 아예 영화를 보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 이집트의 영화산업은 아랍세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제외하면, 영화의 소재가 크게 위축될 것 같다.
"흠. 그건 어려운 질문이다. 정확한 수치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이집트에서 한해 50~60편의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한 해 150편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꽤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다. 영화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가진 이집트에선 모든 사람들이 매주 영화관을 찾곤 했다. 우리에게 영화 관람은 취미, 그 이상의 것이다. 한마디로 한 세기에 걸친 유구한 전통이다. 우리는 이집트 고유의 많은 스타, 스튜디오, 영화, 채널들이 있고 이는 아랍 전역으로 수출되어왔다. 지난 30년간 이집트 내 영화산업이 침체기에 빠졌으나, 현재 훌륭한 독립영화들의 부상으로 이집트의 영화전성기가 다시 부활하는 추세다."

- 이집트 영화산업이 침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개인적으로 봤을 땐, 1980년대에 경기침체가 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빈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제작된 것 같다. 80~90년대에도 비슷한 색깔과 톤의 영화들이 제작되다보니 관객들이 흥미를 잃은 것 같다."

-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나는 관객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심란한 주제의 영화가 좋다. 두고두고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사유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기 때문에, 주인공이 성공하는 해피엔딩 영화를 절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년이 지났음에도 지인들이 찾아와 특정 장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견해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런 걸 즐기는 편이다."

- <아말2>를 제작할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언젠가 아말도 감독인 나와 함께 관객의 박수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물론, 이 소망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녀는 한 방에서 3명 이상의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들었다. 이 영화는 청소년을 소재로 한 성장영화지만, 더 성숙한 성인으로 변화하는 아말의 삶을 그려보고 싶다. 여성차별적 사회에서, 어려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 그런 과정에 수반되는 내적 고민들을 심도 있게 연출해보고 싶다. 아마도 아말은 그때쯤이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몇 년 후 속편으로 다시 영화제를 찾고 싶다. 이 작품이 <보이후드>에 비교되곤 하는데, 후편은 이집트 경찰이자 어머니인 아말을 코믹하고 내밀하게 그려서 <파고>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웃음)"

- 이집트 혁명 후 독재자는 끌어내렸지만, 그 결과로 야기된 현재의 정치적 혼란, 심한 물가상승률과 실업문제 등 민생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인해 정권교체를 후회한 적은 없는지.
"사실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이집트혁명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으나 우리에게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나는 결과와 무관하게, 혁명 당시 수백만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하나 되어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 행복한 순간이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런 경험은 다시 겪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14살 소녀였던 아말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실연으로 상처로 사랑이 끝날까봐, 사랑을 시작하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지나간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인생의 막바지에서야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본다. 결과가 어떨지라도,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삶은 공허할 뿐이다."

- 아랍어로 '희망'을 뜻하는 아말 (Amal)처럼, 이집트 사회에서도 희망이 보이는지.

"물론이다. 나는 시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희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꼭 내일 당장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또한, 한두 명이 거리에서 희생을 한다고 갑자기 사회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바뀌어야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이 점만 염두에 두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말>의 모아메드 시암 감독 ⓒ 모아메드 시암


심사위원으로 체코카를로비바리영화제(6월 29일~7월 7일)를 찾은 시암 감독은 당시 매일 4편의 영화를 심사하고 동시에 많은 행사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 자정이 다돼서야 겨우 나의 인터뷰 요청에 응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친절함에 감사를 전하며 그의 멋진 작품, <아말>이 곧 한국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는 머릿속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영화를 애정한다고 했다. 나도 <아말>을 본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몇몇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특히, <아말>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노래 한 곡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집트의 조용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니(Mohamed Mounir)의 이 노래, 'Banat (Girls)'는 대략 6년 전에 유행했다고 한다. 사회적 주제의 의미심장한 가사로 사랑을 받는 그의 음악 중 특히 '소녀들'은 밝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구슬프게 느껴지는 멜로디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소녀들은, 모든 소녀들은, 별처럼 빛나길 꿈꾼다. In my country, the girls, all the girls dream to shine like stars"

아말의 꿈도 그의 노래 가사와 같은 것 아닌가 싶다. 언젠가 그녀와 그녀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시암 감독처럼 멋진 남성들도 그 길에 함께 손잡고 연대해주길 바란다.



☞이전기사 : "피난민을 인간방패로..." 종군 기자가 목격한 참혹한 현실 http://omn.kr/rywg

이집트 아말 아랍의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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