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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바퀴벌레'...일본 내 혐한시위는 상상 이상"

[인터뷰] <카운터스> 이일하 감독, 혐한 시위 맞서는 야쿠자 운동가 조명한 이유

18.08.08 20:53최종업데이트18.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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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운터스>의 이일하 감독을 지난 6일 만날 수 있었다. ⓒ 인디스토리


시작은 한 극성스러운 시위였다. 라면을 사러 도쿄의 한 한인타운 마켓을 찾았던 이일하 감독은 '일본에서 꺼져라', '때려죽이겠다'는 구호를 서슴없이 외치는 일본 극우 단체 재특회 회원들을 마주했다. 매스컴에서만 봤던 혐오시위는 상상 이상이었고, 그렇게 카메라를 들게 됐다.

오는 광복절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카운터스>는 이일하 감독이 지난 5년간 취재한 결과물이다. 재일교포, 조선인, 재일중국인, 홋카이도 원주민 등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를 향해 혐오 발언을 일삼는 극우 단체에 대항하는 또 다른 시민단체 '카운터스'의 이야기다. 이 중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스 내 조직인 오토코구미(남자조직)에 집중했다.

전직 야쿠자인 다카하시를 필두로 한 이 조직은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기 일쑤지만 "혼쭐내줘야 하는데 분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 이일하 감독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6일 서울 홍대입구의 모처에서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접한 혐오는 상상 이상"

그간 일본에서 다큐멘터리와 음악을 공부하며 <당신의 행진곡>(2003) <울보 권투부>(2014) 등으로 일본 사회 내 소수자를 카메라에 담아온 이일하 감독은 혐오시위에 대해 "무서우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저같이 공부하러 온 사람도 그럴진대 직접 그 차별과 혐오를 겪으며 사는 사람들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라며 그는 이 영화의 기획 과정을 전했다.

"당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재특회와 카운터스 사이를 경찰이 막고 있고 서로가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며 소음을 낸다. 사실 그게 카운터스 전략이기도 하다. 일반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뭘 하는지 잘 모르고 둘 다 나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일상에선 사실 그런 혐오감이 드러나지 않는데 공개적으로 한국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일본 TV에선 일부러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특회를 도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나중에 그게 잘못된 판단이라는 의견들이 나오기도 했다.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진보 매체는 해당 사건을 꾸준히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 이후 혐오 데모가 있다고 하면 계속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그런데 카운터스 내 특이한 사람들이 있더라. 우락부락하고 거칠게 응수하는 이들이 있어서 접촉했다. 다큐를 찍고 싶다고 하니 면접을 보러 오라더라(웃음). 신주쿠에 있는 한 카페에서 다카하시 등 4명을 그때 처음 만났다. 제 뒤를 캐더라. 들어보니 그간 카운터스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고, 실제로 한 일본인 감독이 찍기도 했는데 너무 성의 없이 만들어서 원성이 나오던 때였다."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카운터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혐오 발언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교사, 언론인, 정치인, 회사원 등 구성원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다카하시를 중심인물로 내세운 이유를 이일하 감독은 "멋있잖나"라고 답했다.

"처음부터 오토코구미를 내세우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제가 보기에도 그들은 멋있었다. 시민단체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이 있다. 근데 그들은 스스로를 나쁜 놈이고 생양아치라고 말하면서 혐오 발언을 하는 이들을 못 봐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카운터스 내부에서도 욕을 많이 먹었다. 이 정도면 (영화에선) 최고 캐릭터잖나.

저 역시 시민운동은 맑고 깨끗하게 백조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근데 백조도 물에 뜨기 위해 수면 아래에선 발을 동동 구르잖나. 다카하시를 만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 담진 못했지만 그는 폭력적인 또 다른 우익집단을 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결판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결판내서 우익을 회유해 재특회 데모를 방해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대단한 전략이지(웃음)."


진정한 우익과 보수

이일하 감독은 "다카하시야말로 본인 스스로 진짜 우익이라고 여긴다"며 그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영화에서도 다카하시는 오전엔 (전범들이 잠들어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고 오후엔 카운터스 활동을 한다. 사실 다카하시 역시 우익 단체에서 활동하던 전력이 있다. 그러다 카운터스 초기멤버인 이토와 인터넷에서 논쟁을 벌였고, 직접 만나 결판을 내자는 제안에 만난 뒤 대화를 통해 카운터스의 의의를 인정하게 된다.

"다카하시는 나라를 위한 행동이라는 신념이 매우 강하다. 본래 카부키쵸에서 활동하던 야쿠자였다. 코리아타운에서 가까운 동네라 종종 한국인 식당을 찾곤 했는데 단골인 식당의 주인 할머니가 혐오시위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엔 다카하시와 정반대 위치에서 혐오 발언을 조장하는 재특회 창시자 사쿠라이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끊임없이 데모를 주동한다. 이일하 감독은 1년의 설득 끝에 재특회를 취재할 수 있었고, 사쿠라이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사쿠라이는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을 시작했더라. 초창기엔 우익 인터넷 TV에도 출연하곤 했다. 그렇게 기반을 넓혔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니 급격히 팬이 늘었다. 사람을 현혹하는 말을 굉장히 잘해서 논리가 부족한 사람들은 넘어가기 쉽다. 일본 경제가 침체된 이유로 재일교포 등 소수자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어서라고 하잖나. 한국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공부했다. 또 제가 인터뷰할 때 그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하기도 하더라. 매스컴을 이용할 줄 아는 친구지.

처음에 그를 취재하기가 힘들었다. 경찰이 그 친구를 항상 둘러싸고 있어서 말을 건네기 힘들었다. 곁에 있던 재특회 다른 회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이메일도 썼다. 10개월 지났을 때였나. 인터뷰는 하겠는데 대신 돈을 달라고 하더라."


정작 힘들었던 부분은 일본 경찰의 방해였다. 촬영 중인 카메라를 미는 건 기본이었고, 감독을 둘러싸고 조사하기 일쑤였다고. 이일하 감독은 "특히 여성에 대한 재특회의 공격이 심했다"며 "촬영 이후 편집과정에서 신분 노출로 뜻하지 않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신경 썼다"고 말을 이었다.

"영화에 나온 분들은 다들 한 번 이상 협박 편지를 받은 분들이다. 여성으로선 견디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토 역시 집에 가면 편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더라. 아이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토씨는 그들에게 '와라, 우리집 주소는 이것이다'라며 담판을 지으려고 하더라. 그래서 다카하시도 만나게 된 것이지."

그 때문에 카운터스 내 여자조직인 온나구미는 영화에서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이밖에도 이일하 감독은 2016년 6월 시행된 혐오표현금지법 발효의 일등 공신인 아리타 의원을 언급했다. 카운터스의 염원이었던 관련 법안을 아리타 의원이 끈질기게 발의했고, 3년의 싸움 끝에 비록 처벌 규정은 없는 개념법이지만 혐오표현의 공개적 표현을 금지할 근거가 마련됐다.

"아리타 의원은 저널리스트 출신인데 옴진리교를 끝까지 추적했던 분이다. 사실 정치인이 이런 시민운동에 참여하면 상당히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지금도 인터넷에 아리타 이름을 치면 쓰레기 같은 사람으로 나온다. 포르노 사진과 합성한 것도 올라와 있다. 그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더라. 옴진리교는 실제로 사람들을 죽인 단체잖나. 그때부터 다져진 내공이지. 인터넷에서 아리타 낙선운동 본부도 생겼는데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했다."

▲ 실천하는 정의로 뭉친 '카운터스' 지난 1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카운터스> 시사회에 참석한 주역들. 카운터스 창립멤버 이토 다이스케, 이일하 감독, 멤버이자 사진가 시마자키 로디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혐오와 빈곤의 상관관계

이일하 감독의 경계인 내지는 소수자 정서는 그가 일본 땅에 발을 디딘 2000년부터 발동된 게 아닐까. 그가 발표했던 여러 단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들이 그 증거다. 가장 처음 만들었던 작품은 일본에 불법 체류하던 한국인 여성의 이야기(<당신을 위한 행진곡>, 2003)였다. 특히 도쿄 조선 중고급학교 권투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울보 권투부> 속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정서가 <카운터스>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울보 권투부>는 재일동포를 그린 것이고 <카운터스>는 그런 동포와 관계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재일동포를 돕는, 소수자를 돕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분들을 담고 싶었다. 그게 이번 영화로 옮겨진 것이지. 일본 조선학교를 돕는 단체들도 대부분 일본 분들이 하는 것이거든."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재일동포 3세이자 인권운동가 신숙옥씨는 "사회가 빈곤할수록 돈 안드는 오락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혐오와 차별은 쾌락이고 오락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일하 감독은 적극 동의했다.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 이후 디플레이션이 왔잖나. 성장기 때만 해도 돈을 잘 쓰던 사람들이 이젠 주춤하고 있다. 5억 엔이던 부동산이 1억 엔이 되는 경험을 해서 그런 것이지. 기성세대의 짐을 젊은 세대가 지고 있다. 그래서 사쿠라이 같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힘든 건 저 외국인들 때문인데 왜 국가는 외국인들에게 돈을 퍼주나!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이다. 근데 외국인들도 세금을 다 내거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록음악에 심취했던 청년이 일본으로 건너가 18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공부했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일본 다큐멘터리 거장 하라 카즈오 감독이 그의 박사과정 스승이기도 하다.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에 영구 귀국한 이일하 감독은 차기작 소재를 한창 발굴 중이다.

영화 <카운터스>의 이일하 감독 ⓒ 인디스토리


"음악을 좋아해서 원래는 뮤직비디오 이런 걸 찍었어야 하는데 하다 보니 제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더라. 교수님 역시 '지금 넌 사회문제를 말하고 싶어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을 위한 행진곡> 이후 쭉 다큐를 찍게 됐다. 사실 원래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근데 IMF 이후 저도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었다. 미국은 또 엄청 학비가 비싸지 않나. 일본에선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으니(웃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도 보고 그랬지만 일본을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본을 좀 알고 싶었다. 역사적으로도 맥락이 있고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니까. 또 제 선배들이 일본에 레코딩 하러 많이 가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공부할 때 선생님들이 참 치열했다.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이것밖에 못하냐며 멱살도 잡혀보기도 했다(웃음). " 


여전히 그는 좋은 다큐멘터리를 고민하고 있다. "다큐가 사실이자 진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그는 "한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큐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는 소신을 밝혔다.

"다큐가 무조건 선이자 진리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난 시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를 관찰해 온 이일하 감독의 중간 결론이었다.

카운터스 혐한 일본 재특회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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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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