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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양장을 입고 독립운동 하는 김태리, 그가 몰랐던 것

[리뷰] tvN <미스터 션샤인> 드러난 애신의 약점과 스토리의 전환

18.08.07 12:20최종업데이트18.08.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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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길 바랐던 부분이 있다. 양반 출신인 고애신(김태리 분)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다. 그가 구하려는 조선이 노비를 비롯한 천출,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양반을 제외한 다른 신분의 백성들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국가인지에 대해서였다. 지난 4일 방송된 9회 마지막 장면에서 유진(이병헌 배우)의 대사에서 드라마는 그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고애신은 무지와 안락 대신 앎과 위험을 선택한 독립운동가 캐릭터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가 조선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배경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가 작용할 것이다. 부와 계급이 주는 풍족함과 권력 역시 애신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양반집 애기씨 고애신, 그에게 주어진 특권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예를 들면, 고애신의 스승인 포수 장승구(최무성 분)는 거사를 벌일 때마다 애신의 조부 고사홍(이호재 분)에게 자금을 빌리기 위해 머리 숙여 부탁을 해야 했지만 애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고개를 숙이거나 특별한 수고로움 없이, 단지 주변인의 마음을 조금 아프게 한다는 부채감과 개인적인 고통을 감당하면 된다.

애신이 거사를 나갈 때 남성으로 위장하기 위한 고급 양장들은 그가 활동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는 복장이다. 한 벌에 쌀 두세 가마니는 줘야 할 법한 양장을 노동하지 않는 그가 열 번이나 맞춘 것, 평상복은 따로 있고 양장은 거사를 나가는 경우에만 활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독립운동은 그야 말로 '귀족적'이다. 중요한 일을 할 때 조건에 맞는 의복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애신을 제외한 다른 의병들은 대부분 평민의 옷을 그대로 입고 거사에 임한다. 또한 양반집 '애기씨'이기 때문에 그는 사적 질문을 차단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으며, 세상 일에 무지할 것이란 이미지 역시 활동 전후의 이동과 알리바이 생성에 대단히 유용하다.

물론 귀족적 신분과 별개로 그가 여성(애기씨)이라는 점은 그의 삶에 많은 제약을 걸어놓았다. 이는 4회에서 잠깐 드러난다. 스승 장포수는 애신에게 "넌 어느 편이냐"고 묻고 애신은 "조선은 아녀자에겐 잘 못한다"며 "나는 스승의 편"이라 답한다. 양반이 아닌 여성으로서 독립운동가 애신도 중요하게 다룰 지점이지만, 이 글에선 그의 계급과 부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극중에서 애신은 첫 거사 직후 길거리에서 유진과 설전할 때 "감히 나를 이렇게 노상에 세워두는 사내는 없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비혼의 양반집 애기씨가 살인사건이 일어난 밤 하인도 없이 혼자 거리에 있는 것은 이상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의구심 역시 애신의 말 한 마디로 모두 정리가 된다.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애신은 신분에서 오는 권력과 재물에서 오는 부유함, 덧붙여 사대부 가문에서 비롯된 명예까지 모두 누리는 극상위층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은 그가 독립운동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데 많은 이점들을 제공한다.

편안한 환경서 자란 고애신의 한계, 앞으로는...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자신의 저서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빈 틈없이 매끄러운 연결들은 사유의 틈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고애신의 캐릭터를 설명하다 독일의 교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갑작스럽지만, 그의 주장은 애신의 캐릭터 부연에 꽤 적절하다. 한병철 교수가 말하길 매끄러운 것, 편안한 것, 노력없이 획득할 수 있는 그 무엇들은 들여다 봐야 할 내면이 없다. 애신이 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양반이란 신분과 굉장한 부는 노력없이 획득된 것이고 그에게 매끄럽고 편안한 환경을 보장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애신이 양반 이하 신분의 백성들에게 신분제 사회 조선이 얼마나 잔인한지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신분과 부는 그가 사유할 틈새를 없애버린 요소들인 것이다.

그녀에게 양반 이하 신분의 백성들은 안쓰러운 존재였지만 원래부터 양반을 섬겨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기도 했다. 견고하게 안락하기만 한 평화 속에서 자란 그녀는 '생명은 모두 귀하다'했던 공자의 문장을 의심할 기회가 없었고 그 문장을 이유로 백정 구동매(유연석 분)를 구했다. 애신의 말을 듣고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며 비난하는 구동매의 울분을, 애신은 구조적 상처가 아닌 '개인적인 화'로 축소시켜 이해했고 자신은 상처받았다고 생각한다.

'조선에선 노비였다'는 유진의 고백을 듣기 전까지, 애신에게 유진은 이유는 모르지만 조선과 자신에게 호의적인 이방인이었다. 백정으로 태어나 온갖 멸시를 받았던 구동매는 '조선을 배신하고 일본인이 된 변절자'로 여겼을 것이다. 물론 노비였던 유진의 과거와 백정으로 핍박받았던 동매의 과거는 타인이 알 수 없는 사적 기억이다. 하지만 애신이 보통 조선 백성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을 양반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유진과 동매 각각의 인물들을 이해하고 판단했던 그의 모습들은 다분히 편의적이고 평면적인 '양반'다운 수준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9회 끝에 나오는 유진의 대사는 이렇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죽여라. 재산이 축나는 것은 아까울 것이나 종놈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게 되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조선이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5일 방송된 10회에서 애신은 변명없이 돌아선다. 유진의 대사는, 그 동안 박수만 받으며 매끄럽게 그려졌던 애신의 민족적 캐릭터성에 묵직한 제동을 건다. 그 제동이 극의 중반을 정리하며 후반으로 나아갈 틈의 역할을 할 만큼 유진의 대사는 힘이 있었고, 자랑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했던 애신의 캐릭터는 이제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누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스터선샤인 김태리 애신 유진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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