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63화

에어컨 안 틀고 버티기, 이해를 못 하시겠지만

"여름이 더 힘들다"는 취준생 아들... "전기요금 폭탄 무서워서" 그림의 떡

등록 2018.08.02 16:32수정 2018.08.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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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4층 연립 1층이다. 방 아래가 주차장인데다 작년에 집 앞에 5층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이래저래 냉난방비가 많이 들어야 하는 구조다.


7월 31일 박종철 열사 아버님 박정기 어르신 영결식을 마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매일 더위의 수치를 갱신하는 날들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서울은 최고 더위인 39도의 더위가 예상 된다고 했다.

유난히 더운 우리집, 취준생 아들은 괜찮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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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사용 안한 에어컨 에어컨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 ⓒ 이명옥


연립 주택 1층인 우리 집은 공기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바깥보다 더 덥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 아이가 선풍기 한 대로 버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다. 큰마음 먹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아들), 에어컨 틀어. 39도라며."
"아직 괜차농."
"어."


'아직 괜찮다'는 아들의 답에 난 더 이상 에어컨을 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다. 찜질방 같은 우리 집에서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들이 견디기에 절대 괜찮지 않은 무더위라는 것을.


사실 작년까지 우리 집은 에어컨 자체가 없는 삶을 살았다. 올해는 에어컨이 있기는 있다. 에어컨이 없는 것을 아는 동생이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사용하던 에어컨 한 대를 30만 원 들여 우리 집 안방에 설치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두려워 에어컨을 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서 그저 벽걸이 장식품 정도로 여기며 여름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이따금 한적한 모퉁이에 자리한 카페에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더위를 식히는 눈치다. 지하철이 시원해서 내리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들이 더운 집에서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 알기에 살짝 미안해진다.

사실 나도 오가며 흘리는 땀을 빼면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낫기에 더운 집에 들어오기가 싫을 정도다. 지하철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은행, 강연장, 음식점, 카페 등은 대부분 냉방이 잘 되어 있기에 밖에서는 더위를 별로 느낄 수 없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아들이 말했다.

"우리 집은 차라리 겨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추위는 그럭저럭 견딜만 한데 더위는 정말 참기 힘들어요. 빨리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고서도 나는 '에어컨을 틀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미의 속마음을 아는 아들은 집에서는 아예 에어컨 사용 자체를 포기한 것 같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있기는 한 걸까? 아들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미안하다. 아들아, 좀 더 더위를 견뎌주렴. 대한문 앞에는 이 찜통 더위에 두 번째 분향소가 차려져 있어. 오늘은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온 몸을 낮추며 가는 오체투지를 한다는구나. 비록 오체투지는 함께 못하지만 피켓이라도 들고 걸으려고 나가보려 한단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을 버텨내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선풍기마저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에너지 약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더위를 잘 견뎌보자."

[관련기사 : '극한노동' 전전하던 나, 요즘 대한문으로 출근합니다 http://omn.kr/ry1r]

에어컨 대신 더위를 줄여주는 생존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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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나기 생존 도구들 물로 순환하는 선풍기. 벽걸이 선풍기. 대자리. 아이스 팩 ⓒ 이명옥


그래도 그렇지, 111년만의 더위를 어떻게 나고 있는지 궁금할 거 같아 공개한다. 2년 전 이동용 선풍기 한 대와 고정용 선풍기로 여름을 버티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이 선풍기 한 대를 보내왔다. 물과 얼음팩을 이용해 기존의 선풍기보다 시원함을 더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요즘 그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주 물을 넣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일반 선풍기보다는 조금 더 시원하다.

또 얼마 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줄이려고 대나무 자리를 장만했다. 워낙 날이 더우니 대나무 자리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밤에 주로 애용하는 것은 아이스 팩이다.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아이스 팩을 손수건에 싸서 등 뒤에 대거나 팔과 다리에 댄 채 선풍기를 틀고 누우면 조금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대신 밤에 서너 번씩 깨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아들 컴퓨터 방 의자에는 옥수수 껍질을 이용해 만든 방석을 두 장 깔았다. 옷은 최소한으로 입고 지낸다. 음식은 열기를 식혀 줄 냉모밀, 냉면, 미역오이냉채, 어린 싹 채소, 오이 등으로 조리하지 않거나 열기를 최소화 하는 음식을 먹는다.

이온 음료와 물은 냉동실에 얼려서 마시고 있다. 자주 찬물 샤워를 하는데 날이 하도 더우니 물도 차갑지 않고 돌아서면 다시 땀이 흐른다. 어서 열대야의 무더위가 지나고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길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해마다 더위가 심해지니 과연 내년에도 에어컨 없는 여름나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여름나기 #에어컨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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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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