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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마지막 장면에 숨겨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한 수'

[현장] 기자간담회... '아베 축하 전화 논란'에 "정쟁 소재 되길 원치 않아"

18.07.30 17:10최종업데이트18.07.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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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간담회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 '어느 가족'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족이라는 주제에 꾸준히 천착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번 선택은 '유사 가족'이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3대, 게다가 구멍가게에서 식료품 등을 훔치는 좀도둑 가족 이야기가 국내 극장가를 감동 시키고 있다. 지난 26일 개봉 이후, 현재까지 누적 관객 4만을 넘으며 그의 개봉작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흥행 중이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30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밝혔다. 현장에선 최근 일본 정부의 무신경한 반응 등을 묻는 질문도 이어졌다.

비혈연 공동체의 가능성

<어느 가족>은 지난 5월 열린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세계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를 시작한 뒤 주로 독립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해서 큰 규모의 개봉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며 "여전히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 이 영화를 300만 명이 보고 있고 아시아 각국에서도 개봉하게 됐다. 한국에서도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품 만들 때 처음엔 작게 시작해서 오래 시간을 두고 길게 키워가자는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이번에 뜻하지 않게 칸에서 수상하게 돼서 그 힘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전달되고 있다. 예상치 않았는데 기쁜 일이다. 일본에선 (원작을 각색하지 않은) 오리지널 영화로 대규모 개봉하기가 수월하지 않은데, 오랫동안 영화 일 한 것을 이렇게 보답받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달콤한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 흥행하는 이유를 묻자) 최근 들어선 무엇이 사람 정서에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는가 등을 의식하지 않는다. 의식한다고 해도 잘 안 될 수 있으니까. 전해질 것은 전해진다는 생각이다. 제 자신에게 절실한 주제를 파헤치면 전달될 것이라고 지금은 확신한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캐나다, 한국 등에서 제 영화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수용해주신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여러 가족의 형태를 영화에 담았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일종의 '유사가족'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스스로 "가족이란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기에 억압적으로 가족에 대해 규정하지 않는 게 좋은 자세"같다며 그는 "이번 영화에선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기자간담회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 '어느 가족'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느 가족> 마지막 장면을 두고 여러 감상이 있다. 잔인하고 어둡게 보신 분도 있고, 뭔가 빛이 느껴진다고 보신 분도 있다. 작품마다 전 (제가) 상대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면서 임한다. 이번 작품에선 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해석은 관객분들의 몫이니 제가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찍으면서 생각한 건 쇼타(영화 속 남자 아이)가 느끼고 경험한 게 그에겐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린(영화 속 여자 아이)에 대해서도 뭔가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나름 그 아이가 큰 변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첫 장면에서 린은 자신의 집 난간 틈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그는 틈새가 아닌 뭔가 물건을 바닥에 놓고 거기에 올라가 바깥세상을 본다. 훨씬 더 넓은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겐 큰 변화였다."
 


대가족으로 돌아가자고 한 아베, 영화로 묵묵히 말한 감독

'쿨재팬'을 외치며 일본 문화의 세계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아베 일본 총리에 대한 질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일본 국회에서 아베가 감독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이 공론화되는 등 정치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최근까지 일본 사회는 대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전통적 가족 형태를 주창하기도 했다. <어느 가족>은 이런 일본 정치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다.

"정부가 축하를 표한다는가 하는 게 영화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되기에 그와 관련한 이슈화를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한 편의 영화를 두고 국회에서 말을 한다는 게 사실 좀 그렇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국회에 쌓여있을 텐데 정쟁의 소재가 된다는 것도 편하지 않다. 이 영화로는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유사가족을 다룬) 이 영화가 일본 내 어떤 대상과 현상에 반대하거나 경종을 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작인 <바닷 마을 다이어리>도 질문자께서 언급하셨는데 그 영화의 원작도 어떤 것을 고발하는 의도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들이 결과적으로 경종의 의미가 됐을 수도 있다. 보시는 분들에 따라 그렇게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이어 최근 그가 자서전을 통해 말한 일본영화의 왜소화 현상에 대해 물었다. 앞서 그가 살짝 언급했듯 현재 일본 영화계에선 소설이나 만화 등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오리지널 영화가 큰 규모로 제작되기 힘든 환경이다. 그런 와중에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 그의 작품이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점이 있다.

"제가 정확히 왜소화라고 말하진 않았고 번역상 조금 달라졌을 수 있는데 막연하게 제 말의 취지를 떠올리며 설명을 드리겠다. 일본영화 산업이 점점 내향적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국제사회에 시야를 두기 보단 안으로만 파고들고 그만큼 영화 산업의 방향이 가늘고 좁아지는 게 아닌가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영화는 구로사와나 오즈 감독 등 멋진 선배들이 있었고, 해외에서 호평받기도 했다. 그 후광으로 지금까지의 작품도 좋아 보이게 됐지만 이 현상이 계속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다행히도 전 여러 나라에서 개봉하게 됐지만 현재의 일본영화 산업이 바뀌지 않는다면 재능 있는 인재임에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고, 창작자들이 시야를 넓게 가지지 못하는 쪽으로 굳어질 것이다. (제 입장에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뭔가 확장 시키고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기작은 해외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과 작업도 꿈 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린 등 자신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특별함도 강조했다. <어느 가족>에서 두 배우는 각각 유사 가족의 아빠 오사무 시바타와, 할머니 하츠에 시바타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의 구상 직전 연금사기사건 기사를 봤다. 부모가 사망했는데 신고하지 않고 연금을 받아 생활하다가 발각된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 기사를 보고 혈연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진전시켰다. 혈연이 아님에도 가족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란 말고는 생각나는 배우가 없었다.

릴리 프랭키씨와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편지를 주고받았다. 손으로 편지를 써서 그걸 사진으로 찍은 후 SNS 메신저로 보내는 특별한 방식으로 소통했다. 오사무는 영화 내내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제 자리에 있음으로서 쇼타가 아버지를 앞지르는데 그래서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그만큼 어려운 역할이라 말씀을 드렸다.

키키 키린씨가 누가 봐도 좋은 배우라는 것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나 말씀드릴 게 있는데 6명이 함께 바닷가에 가서 파도놀이 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할머니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으로 고맙다고 중얼거리는데 그때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촬영일이었다. 대본에도 없었고, 사실 현장에서 전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편집실에서 보니 입이 움직이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고맙다는 말이더라.

사실 그게 키키 키린의 마지막 등장 장면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연기를 보고 영화 마지막에 그 부분이 나올 수 있게 대본을 수정했다. 키키 키린씨는 영화의 핵심과 주제를 포착해서 자신의 연기 안에 슬쩍 꺼내놓는 배우다. 그렇게 배우가 꺼낸 것을 간과하면 연출자가 별로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저 역시 그걸 놓치지 않고 받아치는 연출을 하려 한다. 늘 진검 승부를 하는 심정이다. 그렇게 주고받는 과정이 가능한 배우가 현장에 있다는 건 연출자로서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쇼타(죠 카이리)가 물건을 훔치기 직전이다. ⓒ 티캐스트


<어느 가족> 이후 당분간 가족에 대한 탐구는 없을 예정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 역시 가족 드라마이기보다는 가족과 사회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마찰에 주목했다"며 "앞으로도 가족은 변해갈 것인데 그에 따라 제 마음에서도 어떤 모티브가 생길 수 있다.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차기작에 대해 운을 뗐다. 다음 작품은 일본이 아닌 국제 작업이다. 에단 호크, 줄리엣 비노쉬 등이 참여할 예정.

"다음 주에 파리에 가서 영화 준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금까진 제 작품이 언어나 문화를 뛰어 넘어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면 이번엔 연출자가 문화나 언어를 넘어 작업할 수 있을지가 숙제로 다가왔다. 흥미로운 상황이다. 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이게 좋은 형태로 마무리 된다면 이후 다른 문화와도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가 많다. 지금 작품을 발판 삼아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칸영화제 일본 영화 아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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