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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속 역사 왜곡... 모두 '이것' 때문이었나

[기획] 190개국 방송되는 tvN <미스터 션샤인>, 김은숙 작가의 문제적 설정들

18.07.28 14:16최종업데이트18.07.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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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 ⓒ tvN


"1930년대 항일 운동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1905년, 한일합병(병합) 이전에 끝까지 항거했던 사람들을 다룬 작품은 많지 않았다. 독립운동의 시초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서, 굳이 어렵게 1900년대로 배경을 잡아 고생하고 있다." (이응복 감독)

지난 6월 26일, tvN <미스터 션샤인>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응복 감독이 밝힌 시대 설정의 이유였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이렇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의 이야기", "노비, 백정, 아녀자, 유생... 신분은 다르지만 자기 나라의 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름 없는 영웅들의 투쟁사." 방송 시작 전까지 캐스팅 논란이 거셌지만, "조국을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긴 이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죽어가던 상실의 시대"와 "뼈아픈 근대사의 고해성사"를 그리겠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된 뒤, 드라마는 친일 미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방송 초반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구동매(유연석 분)의 '흑룡회 한성지부장'이라는 설정이었다. 극 중 흑룡회는 을미사변을 주도한 현양사 하부 조직(역사적으로는 현양사 일부 간부들이 참여해 만든 단체다). 구동매는 여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을 아프게 짝사랑하고, 시청자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고, 이는 '친일 미화'의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미스터 션샤인> 측은 구동매의 설정을 실존 단체인 '흑룡회 한성지부장'에서, 가상의 단체인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수정했다. 또, 지난 5회 방송분부터 도입부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창작된 이야기이며 일부 가상의 단체와 인물을 다루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삽입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적 설정'은 이게 다가 아니다.

문제적 설정, 흑룡회뿐만이 아니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극 중 친일파인 이완익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찾아가 5만원만 내어주면 조선을 바치겠다고 제안한다. ⓒ CJ E&M


드라마의 주요 캐릭터 중 조선을 버린 인물은 네 명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노비인 유진(이병헌 분)의 어머니는 주인집 '나으리'(김응수 분)의 출세를 위해 노리개로 넘겨질 위기에 처한다. 이를 눈치 챈 유진의 부모는 도망을 시도하지만 결국 붙들린다. 그렇게 아버지는 매질을 당해 죽고, 어머니는 우물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난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유진은 도망치듯 신미양요 때 조선에 온 미국 함선에 올라타고, 그렇게 미국인이 됐다.

구동매는 백정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온갖 치욕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천민인 아버지는 어머니가 양민에게 겁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나서지 못했을 정도다. 조선 땅에서 사람대접 받을 수 없는 동매는 이리저리 떠돌다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만난 현양사 간부의 눈에 들어 일본도 조선도 아닌 '현양사'를 조국으로 삼고, 조선으로 와 현양사 하부 조직인 흑룡회 한성지부장이 된다.

'이완용'을 모티브로 삼은 듯한 이완익(김의성 분) 또한 마찬가지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누나 둘, 아래로 동생 하나가 굶어 죽고, 소작 짓던 땅마저 지주에게 빼앗긴다. 여동생을 지주의 소실로 넘기고 받은 돈으로 악착같이 영어와 일본어를 배운 그는, 역관이 되어 조선을 팔아치우는 데 앞장선다.

이완익의 딸, 쿠도 히나(김민정 분) 역시 비운의 캐릭터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 의해 늙은 일본인 거부에게 팔리듯 시집갔다. 남편이 죽은 뒤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한성 유일의 서구식 호텔, 글로리의 주인이 됐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들에게 백성들의 삶을 억압하는 신분제와 지배 계층, 조국을 버리는 게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서사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조선인을 핍박하는 이, 조선을 침탈하는 이는 모두 조선인이다. 저잣거리에서 마구 칼을 휘두르는 잔인한 사무라이들의 우두머리도 조선인, 하층민들의 삶을 신분제로 짓누르고 내모는 이들도 조선인이다. 심지어 이완익은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 먼저 조선을 바치겠다는 제안까지 한다. 일본의 조선 침탈의 시작이, 마치 출세에 눈이 먼 조선인의 제안에서 시작됐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운요호 사건과 신분제 폐지... 누군가는 오해하지 않을까?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1회 후반부, 드라마는 "누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조선은 일본 수군의 상륙에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애신의 내레이션과 함께, 운요호 사건(1875)부터 강화도 조약(1876), 갑오개혁(1894)까지 빠르게 이어 붙인다. 배경 지식이 없다면 운요호 사건과 갑오개혁을 하나의 연결된 사건처럼 느끼거나, 두 별개의 역사적 사건 사이에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편집이다.

그리고 곧바로 등장하는 것이, 갑오개혁의 결과물인 신분제 폐지다. 신분제는 현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분명 불합리한 제도다. 드라마는 주요 캐릭터들의 서사에 신분제에 의한 피해와 끔찍함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여준다. 운요호 사건과 갑오개혁이 단절된 사건이라는 역사적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는, 마치 운요호 사건으로 시작된 개화의 결과로 신분제가 없어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조선 지배 계층의 무능함과 탐욕, 참담한 백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는 공을 들이지만, 같은 시기 있었던 일제의 수탈과 핍박, 그로 인한 수많은 백성들의 고통은 그리지 않는다. 을미사변(1895)과 같은 끔찍한 만행 역시 지나간 사건으로 임팩트 없이 언급될 뿐이다. 을미사변은 <미스터 션샤인>이 알리고 싶었다던, 의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대신 화려한 진고개 점등식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조선 사람들, 인천과 서울 사이에 놓인 기차와 달콤하기만 한 '불란서 제과'의 눈깔사탕, 알파벳송을 부르며 'LOVE'를 꿈꾸는 신식 학당에 다니는 소녀, 그리고 폐지된 신분제 등 개화의 달콤함과 편리함만을 전면에 부각한다. 신분 운운하며 하층민을 압박하는 이들은 모두 한복을 입었거나 개화가 늦은 이들이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이는 기모노를 입은 쿠도 히나를 비롯한 남들보다 빨리 개화한 이들이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을 모두 걷어내고 보자. 과연 <미스터 션샤인> 속 조선은, 계속 유지되는 게 맞는 나라였을까? 과연 제국주의의 침탈이 나쁘기만 했던 걸까? 오히려 망해서 더 나은 나라라고 느끼는 이들은 없을까?

드라마가 생략한 역사를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는 이들만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애신의 절박함에 공감할 수 있다. 생략된 만행과 역사는, 조선을 침탈한 열강에 대한 비판 대신,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을 탓하게 만든다. 

제국주의 핵심 보다 곁가지 집중하는 건 왜곡

<미스터 션샤인>이 한 장면 ⓒ tvN


물론 일제에 가담한 조선인, 조선인을 핍박하는 조선인, 매국에만 혈안이 된 지배 계층,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곁가지 현상일 뿐이다. 정작 그 핵심에 있는 것들을 설명하지 않고 곁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한 왜곡이다.

이응복 감독은 당시 기록이 풍부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무엇보다 <미스터 션샤인>은 교과서에서도 가르치고 있는, 이미 확인되고 증명된 역사적 사실도 선택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응복 감독의 제작발표회 발언과 김은숙 작가가 기획의도를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미스터 션샤인>은 단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주요 캐릭터에 부여된 서사를 보면,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항일 투쟁하던 진구-김지원... 뭘 위해 싸웠을까? 

일본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죽은 고애신의 부모.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의병활동을 했던 걸까? ⓒ CJ E&M


우선 고애신은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고씨 가문의 영애다. 할아버지는 살아 청백리 칭호를 받은 왕의 스승이고, 일본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부모는 애신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곱게 사대부의 '애기씨'로 자라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애국심으로 의병이 된다.

드라마의 순서는 이렇다. 애신이 태어난 지 이틀째 되던 날 이완익 암살 작전 실패로 부모가 죽는다. 어린 애신은 강보에 싸여 아버지 동지들의 품에 안겨 한성에 오고, 그해 가을 운요호 사건이 터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일제의 조선 침탈은 운요호 사건에서 시작됐다. 운요호 사건도 터지기 전, 애신의 부모는 왜 일본에 가서 항일 운동을 하고 있었던 걸까?

운요호 사건이나 강화도 조약 직후 일본의 침략은 경제 침략 위주였다. 백성들의 반감은 있었지만, 거센 항일투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조직적인 의병 활동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등장했다. 무엇보다 이 때(1869~1876)는 일본과 교류가 단절되어 있던 시기라 상인조차 일본에 가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고애신의 부모는 민간인이 일본에 가지도 못하던 시기에 일본에 가서, 일본의 침탈이 시작되기도 전에 항일운동을 한 셈이다.

이러한 타임라인 당기기는, 드라마의 중심이자, 남자 캐릭터들을 모두 독립운동으로 끌어들이는 애신의 남다른 혈통과 고귀함, 애국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이렇게 독립운동의 타임라인을 당기느라, 매국노의 등장도 지나치게 빠르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은 1870년대를 전후로 대두된다. 그리고 이 정한론은 운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조선의 운명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완익과 같은, 의병들이 맞설만한 친일파의 등장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친일파를 운요호 사건 이전에 등장시킨다. 그리곤, 이완익이 스스로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 "5만원 만 내어주면 조선을 바치겠다"며 운요호 사건을 제안하게 만들었다. 극 중 애신과 대척점에 놓여있는 악역 이완익의 속물성과 악함을 강조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이 때문에 드라마는 조선 침탈이 이권에 눈이 먼 조선인에 의해 시작된 것처럼 그리고 말았다.

이게 다, 로맨스 때문?

주인공들의 엇갈리는 로맨스를 강화하기 위해, 역사는 이용된 게 아닐까? ⓒ CJ E&M


일본에 맞서는 귀한 집 '애기씨'를 보호해줄 수 있는 미국 군인 유진 초이, 강력한 전투력과 폭력성을 가졌지만 애신을 향한 마음만은 순애보인 사무라이 구동매, 신분상으론 애신과 가장 어울리지만 가진 건 돈뿐인 정혼자 김희성(변요한 분)까지. 조선을 원망하거나, 조선이 망하든 말든 관심 없던 이들은 결국 애신을 향한 사랑 때문에 변화한다. 이들의 불행하고 끔찍한 어린 시절의 서사는 결국 이 변화를 더 극적으로, 애신을 향한 사랑은 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만들 것이다.

하층민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애국심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신분제는 더 극단적으로,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로맨스와 대립 구도를 위해 사실과 다른 역사적 사실을 서사로 부여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제작진은 "알려지지 않은 1900년대 초반의 항일 운동을 알리기 위해" 1904년 한일병합 이전을 배경으로 로맨스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비극의 역사는, 그 속에서 엇갈리는 주인공들의 애달픈 사랑을 위해 이리저리 변주되고 말았다. 결국 <미스터 션샤인> 속 비틀어진 역사는, 드라마의 러브라인과, 캐릭터들의 설정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쓰인 셈이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내수용이 아니라는 데 있다. 로맨스를 위해 비틀어진 역사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방송되고 있다.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미스터 션샤인>이 그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는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낮에는 '애기씨', 밤에는 의병 활동을 하는 고애신. 그리고 그를 지켜줄 수 있는 미국인 유진 초이. ⓒ CJ E&M


<미스터 션샤인>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드라마 장르인 만큼,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사물을 다루는 작가에게,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방된 지 68년이나 됐지만 일본은 여전히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심지어 틈만 나면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미 확인된 역사조차 왜곡한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드라마의 영향력과, 한류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 드라마로 인해 잘못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미스터 션샤인>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접할 전 세계 190개국 외국인들은 더 큰 문제다. 청소년들이 잘못 배운 역사는 살면서 바로잡을 기회가 많겠지만, 외국인들의 머리에 각인될 잘못된 정보는, 누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미스터 션샤인 미션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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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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