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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접대 의혹 4명 공개한 'PD수첩'... 클로징멘트 압권

[하성태의 사이드뷰] '고 장자연' 1부, 9년 만에 드러난 정황들... 조현오는 2편에

18.07.25 19:47최종업데이트18.07.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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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방영된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의 한 장면. ⓒ MBC


장고 끝에 취재에 응했다고 했다. 한국이 아닌 곳이었고, 자택도 아닌 호텔 방이었다. 고 장자연씨의 소속사 후배였던 김지연(가명)씨는 "언니를 혼자 보내 미안"했고,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하려고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 PD수첩 > 제작진과의 인터뷰에 나선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

24일 방송된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는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과거 수사 과정에서 13차례나 사건 관련 진술을 했다는 김지연씨의 유의미한 증언을 확보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김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불려나갔다던 접대 자리에서 만난 유력·고위 인사들의 얼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 PD수첩 >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자연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4장의 문건이 공개되자 문건에 적힌 인물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경찰에서는 대대적인 수사팀을 꾸렸다. 41명의 경찰이 27곳을 압수수색했고, 118명의 참고인을 불러 조사했다. 당시 경찰은 강요, 성매매 등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20명 중에서 7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화려하게 시작한 수사는 흐지부지 종결됐다.'

제작진은 김씨를 포함한 여러 사건 관계자의 증언과 제보를 확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5천 쪽에 달한다는 장자연 문건을 포함한 문건들과 사건 수사 관련 조서와 증거목록, 재판 기록 등을 분석했다고 했다. 그 중 '고 장자연 1부'에서 공개한 유력 인사의 이름들은 이랬다. 그들은 모두 성추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거나 장자연에게 접대를 받았다는 정황이 기록에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조선일보 전 기자 조희천, 유명 드라마 PD 정세호, 하이트 진로 회장 박문덕,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둘째 아들이자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방정오.'

< PD수첩 > 접대 대상자 실명 공개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 방송 화면 ⓒ MBC


"아내가 검사라는 이유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경찰의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실질적인 압력이 있었나요?"

< PD수첩 > 제작진을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조희천은 쏟아지는 질문에 "나와 달라", "내 공간을 침범했다"고 말하다가 이내 휴대폰을 꺼내 제작진을 찍었다. 제작진은 그가 이 말 한 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나중에 법원에서 봅시다."


하지만 그는 이미 2008년 5월 당시 장자연의 소속사 김종승 대표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장자연을 성추행한 혐의로 최근 불구속 기소됐다(조희천씨는 2003년 조선일보를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지 9년 만이다. 또 그의 아내가 검사 신분으로 수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그는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2004년 총선에서 고양덕양갑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유시민 후보와 맞붙었다 낙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 PD수첩 >은 조씨가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장자연을 강제성추행 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당시 조씨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검사는 제작진측과 인터뷰에서 장자연 사건 발생 당시 검사였던 조씨의 아내가 수사 상황을 알아봤을 거라고 증언했다. 이날 < PD수첩 >이 실명과 이름을 공개한 이는 물론 조씨만이 아니었다.

2008년 5월 태국 골프여행의 배경


"무서워했었죠. 욕하는 사장을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사장 말을 안 들으면 연예계에 발도 못 디딜 수 있다고(생각했겠죠).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그랬었죠. 태국을 오라는데 울고 있었어요. 저녁에 태국을 오라고 한다고. 좀 거친 표현을 사장이 한 걸로 알아요. "


고 장자연의 지인은 말했다. 그렇게, < PD수첩 >이 공개한 김 대표의 폭력 전력은 화려했다.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상해죄로만 6차례 처벌 받았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도 1건 있었다. 소속사 전 여배우들도, 전 매니저도, 장자연의 지인들도 이러한 김 대표의 폭력 성향을 증언했다. 장자연을 비롯한 배우들이 1억에 달하는 계약 위약금과 함께 김 대표의 폭력을 두려워했음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장자연의 태국 골프 여행도 그러한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 골프 여행에 동참한 드라마 PD는 < M >, <청춘의 덫>, <내 인생의 황금기> 등을 연출한 정세호였다. < PD수첩 >은 당시 가이드 등의 증언을 포함한 사실 확인을 통해 2008년 5월 태국 골프 여행에 장자연과 김 대표, 드라마 감독과 신인 배우 등 여럿이 함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국엔 숙소에 장자연과 정세호 감독만 남겨두고 나머지 일행은 50km 떨어진 다른 숙소로 옮겼다고 했다. 2009년 수사에서 정 감독은 접대 강요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 감독은 < PD수첩 > 제작진에게 김 대표 등이 숙소를 옮긴 것은 "관심도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자연과 골프만 쳤다는 얘기다.

"쟤들도 골프를 좀 배우고 싶다네요(라고 해서) 그래서 간 거야. 그리고 걔네들은 2박3일인가 3박4일인가 있다가 먼저 가고 나는 남은 게 다야. (그게)접대인가? 개똥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이 새끼들 어떻게든 백만 원이라는 액수로 엮어서 (혐의를) 액수로 맞춰보려고 그러는 거야."

7년 전 < PD수첩 >에 들어온 익명의 제보 내용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 방송 화면 ⓒ MBC


"경찰 발표에 핵심 내용은 다 빠졌다."
"2008년 초에 장자연, 하OO, 박OO 사장 등 여행을 갔는데 필리핀 여행 갔다와서 돈도 받고 수표도 받고 했는데 경찰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수표 주고받은 통장 계좌들 경찰에서 이야기가 나올 듯하더니 다 덮었다."


또 다른 태국 접대 여행도 있었다. 무려 7년 전인 2011년 < PD수첩 >이 받은 익명의 제보는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중 장자연과 출입국 기록이 일치하는 인물 중엔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도 있었다. 장자연의 소속사 후배인 김지연씨 역시 박 회장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취재에 응한 하이트진로 관계자 역시 "한국 연예인들하고 동남아나 어디 다닌다, 동남아쪽 가겠죠"란 답을 들려줬다. "그 분이 비행기 오래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제작진은 장자연과 박문덕 회장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출입국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9년 당시 경찰 수사에서도 박 회장은 100만 원짜리 수표 열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은 경찰 수사에서 이 돈을 "김밥값"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박문덕 회장 외에도 장자연의 계좌에 수표를 입금한 사람은 총 20여명. 입급된 백만원짜리 수표는 총액이 1억 가까이 됐다고 한다. 박 회장을 포함해 재미교포 사업과 법원 관계자 등 모두 힘 깨나 쓰는 유력인사들이었다.

경찰은 수표에 관련된 사안을 내사 종결해 버렸다. 당시에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이었던 이명균은 제작진에게 장자연이 고인이 됐는데 "어떻게 수표를 입증하느냐", "증거가 없다"고 답했다. 당시 검찰도 보강 조사를 하지 않았다. 박문덕 회장도 < PD수첩 > 제작진을 만나서 해명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장자연 대응팀의 실체

그리고 마지막 인물. < PD수첩 >은 고 장자연의 로드매니저를 통해 문건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방 사장'이 "방씨 일가 중에 막내아들"이란 사실을 확보했다. 그는 과거 경찰 수사에도 응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2008년 당시 <조선일보> 미디어 전략 팀장이자 현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방정오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장자연은 어머니의 기일에 방정오 전무의 접대 자리에 불려나갔고, 그것이 큰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수사경찰 역시 술자리에 방 전무가 장자연과 동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수사과정 확인서에는 방정오의 이름은 있었으나 조사한 경찰관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한 전직 형사는 만약 조서가 작성된 뒤 나중에 수정된 것이라면 큰 문제라며 "공문서 위조"라고 비판했다. 이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며, 또한 <조선일보>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 파헤쳐 봐야 할 대목이다.

방송 다음날인 25일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는 입장문을 통해 "2008년 10월 28일 밤 지인의 전화를 받고 뒤늦게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고 장자연 씨가 있었다고 한다. 저는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먼저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라며 "이후 장자연씨와 연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 PD수첩 >측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알리며 "앞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장자연 사건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오늘까지 왔습니다. 접대 자리에 있던 힘 있고 높은 사람들, 누구하나 처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이들에 대해 제대로 수사했던 것일까요? 왜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 처벌받고 접대를 받은 사람들은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다음주 < PD수첩 >은 장자연 사건의 수사와 그 은폐 과정을 조명하려고 합니다. 이 사건을 필사적으로 덮으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이 힘과 권력을 이용해 감추려했던 사실들을 밝힙니다."

< PD수첩 > 한학수 PD의 클로징 멘트다. 그리고 < PD수첩 >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던 조현오씨의 인터뷰와 전 조선일보 관계자 등을 통해 <조선일보> 대응팀의 실체를 알린다고 예고했다. 결국 첫 번째 예고대로 "정권을 운운하며 협박"했다던 <조선일보>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엄청난 '대응'들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인터뷰 속 고 장자연의 모습은 꿈 많은 배우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아파하는 이들이 많았으리라. 사건의 재구성이어도 좋다. 과거 제보와 새로운 인터뷰를 포함, 실명과 함께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 PD수첩 >의 용기를 응원한다. '고 장자연 2부'를 기대하며.

장자연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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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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