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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 다룬 '100분 토론', 진행자가 이래도 되는 건가

새 진행자로 체제 정비한 MBC < 100분 토론 > 여혐 vs. 남혐 토론이 남긴 아쉬움

18.07.25 20:29최종업데이트18.07.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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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0분 토론'의 새로운 진행자인 김지윤 박사. ⓒ MBC


MBC < 100분 토론 >이 새 진행자 김지윤 박사와 함께 돌아왔다. 첫 주제는 최근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를 통해 촉발된, 이성간 혐오 논란이었다.

이날 토론에는 여성주의 철학자 윤김지영 교수(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권력형 성범죄'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이은의 변호사,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정영진 시사평론가가 논객으로 나섰다.

1999년 첫 방송 이래 12명의 진행자가 < 100분 토론 >을 거쳐 갔지만, 그중 여성 진행자는 한 명, 단 3개월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진행자를 새롭게 내세우고, 첫 주제로 여성 관련 이슈를 택한 것은 나름 의미심장했다.

< 100분 토론 >은 시민논객을 없앤 대신, 워마드에서 회원으로 활동 중인 사람과의 인터뷰, 일반 시민들의 길거리 인터뷰 등을 내보냈다. 워마드에서 활동 중이라는 이 회원은 "기존 여성 단체들은 성 평등과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워마드는 우리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았으니 남성들도 아동이든 성 소수자든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 당해봐라라는 의견이 강하다"라거나, 최근 워마드에 대한 부정적 뉴스에 대해 "일베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관심받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 자극적인 언어를 쓰지 않았을 때는 아무도 듣지 않았지 않나"라고 말하는 등 워마드 내 주류 분위기를 전했다.

인터뷰를 본 뒤 이은의 변호사는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한다"면서 "법의 테두리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만 넘지 않는다면 일베나 워마드가 무슨 말을 하든 그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영진 평론가는 "미러링은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상대가 깨닫게 해주는 것인데, 워마드의 미러링은 몇 배, 몇십 배 강한 워딩으로 폭력을 전 인터넷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택광 교수는 "약자 조롱, 패륜적 언어 등은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들의 비윤리적인 주목 경쟁은 디시인사이드, 일베 등에서도 드러난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워마드가 여성주의와 결합돼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워마드에 특별한 과격함이 더 있다는 근거를 대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은의 변호사 역시 "언론이 워마드의 부정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그들의 행동 기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들의 긍정적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누가 여성주의 안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논란이 될 부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 속에서 정작 이야기되어야 할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후 "표현의 자유에도 금도는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는 동일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혐오라는 단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극단적인 폭력성과 혐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방임할 수는 없다" 등 논객들의 열띤 설전이 이어졌다.  

< 100분 토론 > 새 진행자 된 김지윤 박사... 첫 방송은?

MBC '100분 토론'의 새 진행자가 된 김지윤 박사. ⓒ MBC


< 100분 토론 >은 제한된 시간 동안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논객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와 쟁점을 주제로 뜨겁게 논쟁하며 합리적 해법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논객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해당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립해나간다. 이는 <썰전> 등으로 대표되는 토론 형식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과, 정통 토론 프로그램인 < 100분 토론 >의 분명한 차이다.

그래서 < 100분 토론 > 진행자는 여타 시사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와 달리, '중재자'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공정한 토론 진행으로 논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와야, 시청자들이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 자기 생각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주제 역시, 첨예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주제인만큼 사회자의 균형감 있는 진행이 기대됐다. 하지만 김지윤 박사는 달랐다. 

윤김지영 교수: "메갈리아가 이성애자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대해 비판하고 폭로했다면, 워마드는 이성애자 남성뿐 아니라 성 소수자나, 장애를 가진 남성 등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남성들도 자신들의 성별 정체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혐오에 가담해왔다는 걸 폭로한 겁니다. 이런 것들이 성 소수자 커뮤니티 내 레즈비언들에 의해서 폭로됐고, 그동안 소수자성을 가진 남성에게 피해를 당했을 때에는 제대로 공론화조차 하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분노가 드러난 거예요. 하지만 워마드는 여기 그치지 않고 소수자 남성들이 받는 차별 현상 자체를 기각시키거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모두 강자화하는 등 일반화된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혐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김지윤 박사: "문제는 노약자라든지 어린이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거 아닐까요? 예를 들면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11개월 남자아이가 죽었다는 기사에 '잘 죽었다'는 끔찍한 댓글이 달려서 전 굉장히 충격을 받았거든요. 또,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여성 운동에 앞장 서서 목소리를 냈던 분이신데, 그 분의 죽음에 대해서도 모욕을 한다든지... 남자라면 무조건 혐오를 하는 발언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윤김지영 교수: "노회찬 의원 죽음 같은 경우 일베에서 '좋아요'가 1만 건이 넘었어요. 하지만 워마드는 어제 확인해보니까 몇 백건이...."

김지윤 박사: "(두 사이트는) 회원 규모가 다르잖아요."


워마드의 극단적인 미러링과 남성 혐오적인 발언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설명하는 윤김지영 교수에게, 김지윤 박사는 극단적 댓글 몇 개를 예로 들었다. 해당 댓글을 단 네티즌이 워마드의 유저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은 없었다.

김 박사는 "워마드나 일베나 마찬가지다, 넘어섰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워마드가 일베의 자양분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말도 했다. 앞서 '1만 건'과 '몇 백 건'으로 규모가 다르다고 본인이 언급한 뒤에 이 둘을 동일 선상에 둔 발언을 한 것이다.

토론자? 진행자? '중재자' 역할 벗어난 진행자 

MBC '100분 토론' 방송화면 캡처. ⓒ MBC


무엇보다 이런 식의 대화는 토론 사회자와 패널 사이에서 오간 대화로 보기 어렵다. 토론 테이블 한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정영진 평론가 옆자리가 어울릴 만한 수위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김지윤 박사: "남혐이 성립하느냐 마느냐... 어쨌든 간에 혐오가 존재하는 건 맞단 말이죠."

이택광 교수: "그거는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여성의 남성에 대해 혐오 표현이 있느냐... 있을 수 있죠. 윤김지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남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니만큼 구조적 차원에서 남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혐오 표현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제국주의자가 어떤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피통치인이 일을 하다 화가 나서 주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분명 내용만 보면 혐오적 표현이죠. 하지만 그걸 혐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그건 피식민지인의 명백한 분노죠. (여성의 남성 혐오 발언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혐오 표현은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차별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지윤 박사: "사회적 주류라고 해서 혐오적 표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주류를 향한 혐오 표현이 사법적으로 처리 가능한 국가들이 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뉴질랜드는 백인에 대한 혐오 표현도 혐오로 인정하고 있거든요. 그건 국가마다 정의가 다른 것 같고요. 사실 제가 궁금한 부분은, 이분법적으로 남자, 여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혐오하고 있는데, 굉장한 심각한 수준으로 보이거든요. 예전에도 된장녀, 김치녀... 아스라한 기억 속의 단어들인데... 이때는 이런 단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제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없다라는 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여성 혐오적 표현인 김치녀와 된장녀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늘어난 건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과,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분노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미러링 덕분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마치 된장녀와 김치녀와 같은 표현이 사라진 것은 자정 분위기 덕분이라는 듯, 그 과정에서 등장한 여성들의 미러링 표현에 대한 문제만 지적했다.

'남변' 표현 없다는 말에 '남자 간호사'는 있다? 

MBC '100분 토론' 방송화면 캡처. ⓒ MBC


김지윤 박사의 주제 이해 부족과 젠더 감수성 부재는 성별 간 임금 격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택광 교수의 발언에 "여성들이 시간제 근로자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고 첨언한 대목과, "남변(남자 변호사), 남검(남자 검사)라는 표현은 없다"는 이은의 변호사의 말을 끊고 "남자 간호사라는 말은 있는데요"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토론 진행자의 중립적 스탠스가 반드시 미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여성들의 정규직 비율이 낮은지, 왜 여성들이 특정 직종에 몰려있거나 특정 직종에서 배제되는지, 왜 어떤 직업 앞에는 '여자'가, 어떤 직업 앞에는 '남자'가 붙는지... 진행자는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부분을 걸고 넘어지며 토론자들의 대화를 끊었다.

김지윤 박사 체제의 < 100분 토론 >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뎠다. 정치학 박사, 외교 전문가, 미국 정치 소식통으로 알려진 김 박사는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약한 바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100분 토론>의 변화도 불가피하겠지만, 진행자의 평소 소신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공정하고 균형감있는 진행으로 시청자들이 자신의 반대 의견도 편견없이 들을 수 있도록 도와왔던, 진행자의 균형감 있는 '중재자' 역할만큼은 변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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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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