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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지인과 매니저가 지목한 접대자들, 어마어마했다

[TV 리뷰] < PD수첩 >, '고 장자연' 1편 방송... 접대자 4명 실명 공개

18.07.25 19:30최종업데이트18.07.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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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배우 장자연씨가 성접대 의혹 문건을 남기고 사망한 지 9년이나 흘렀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사건 주요 관련자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부인하거나 입을 닫았다. 망자의 억울함과 진실이 그대로 묻히는 듯했으나 지난 7월 초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의 본 조사를 검찰에 추가로 권고했다.

배우 장자연씨는 2009년 3월 7일 사망했다. 사망 일주일 전인 2월 28일, 연예기획사를 설립한 전 매니저를 찾아가 4장에 달하는 자필 문건을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공개된 그 문건을 바탕으로 검경은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람만 118명, 수사기록은 수천 쪽에 달했지만, 기소된 사람은 부모 없는 신인 배우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감금·협박한 혐의를 받은 소속사 김종승 대표와 매니저뿐이었다. 그마저도 술접대·성접대 강요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폭행·협박 혐의만 인정돼 김 대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은 고 장자연 사건을 보도했다. 방송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고, 특히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예고편에 출연해 <조선일보>의 외압 의혹을 폭로해 인터넷이 끓어올랐다.

박문덕 회장이 100만 원짜리 수표 10장을 입금한 까닭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 방송 화면 ⓒ MBC


< PD수첩 > 제작진은 당시 장씨의 술접대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지목돼 검경조사를 받았던 인물들 몇몇을 직접 찾아나섰다. 이날 방송에서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 정세호 드라마 PD 등의 실명이 공개됐다. 박문덕 회장과 정세호 PD가 공개적으로 관련자로 지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진은 필리핀 이민국에 발송한 공문서 회신 등을 통해 박 회장이 장씨와 같은 기간 필리핀으로 동반 여행을 갔던 일을 확인했다. 제작진이 지난 6월 인터뷰한 과거 장자연씨의 소속사 동료 김지연(가명)씨가 박 회장을 접대 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고 지목했다.

제작진은 수사와 제보에서 언급된 인물들의 사진을 김씨에게 보여줬다. 김씨는 제작진이 보여준 사진을 접대 자리에서 확실히 본 사람, 모르는 사람, 헷갈리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김씨는 그중 박 회장을 뚜렷이 기억했다.

앞서 수사 결과 박 회장이 장씨에게 100만 원짜리 수표 10장을 입금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제작진이 접촉한 당시 경찰 수사 관계자는 "(박 회장이) 특이한 변명을 했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김밥값으로 준 돈"이라는 황당한 진술을 하기도 했다. < PD수첩 > 제작진은 박문덕 회장측에 반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장씨는 태국 골프 접대 여행에도 동원됐다. 이날 방송은 김종승 대표가 2008년 5월 두 번의 태국 골프 여행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 중 5월 16일 떠난 골프 여행에는 김 대표와 장씨, 드라마 감독 정세호 PD, 신인배우 최모씨 등이 함께 했다. 방송에 따르면 일행은 골프를 친 뒤 장씨와 정 PD만 숙소에 남겨둔 채 50km 떨어진 다른 숙소로 이동했다고 한다.

2009년 수사 과정에서 정 PD는 접대 강요와 관련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정 PD는 제작진과 만난 자리에서 "(숙소를 옮기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면서 "(그들은) 2박3일인가 3박4일인가 있다가 가고 나는 남은 게 다다. 그게 접대인가? 100만 원이란 액수로 어떻게 혐의를 맞춰보려 한 것 같다"라고 반박했다. 이외 확인된 골프 여행에는 김종승 소속사 대표와 국회의원 보좌관, 장자연씨 등이 동행했다는 진술이 전파를 탔다.

"그때 만났던 조선일보 사장이란 사람이 젊었어요"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 방송 화면 ⓒ MBC


제작진은 최근 장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장자연 사건 당시엔 조선일보를 퇴사한 상태)도 찾아갔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OOO 검사가 (조 전 기자의) 부인이라는 건 수사팀도 다 알았다"고 진술했다.

소속사 동료 김지연씨는 그날 일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제작진에게 술자리 배치도까지 그려 보였고, 장씨가 그날 입은 옷까지 기억했다. 김씨는 "(장씨에게) 테이블에 올라가라고 했다. 춤추고 내려오는 언니를 (조씨가) 잡아당겨 무릎에 앉혔다"며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과거 김씨는 검찰에 나가 조희천과 대면조사 및 최면수사까지 받으며 힘겹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호, 조희천, 박문덕 이들 세 사람은 반론을 요청하는 < PD수첩 > 취재진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이트진로 사옥으로 찾아간 제작진에게 회사 관계자는 "회장님은 안 계신다"고 했다. 정세호 피디는 "골프를 쳤지만 어떤 접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희천 전 기자는 취재팀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뒤 "법원에서 보자"고 응수했다. 지난 2009년 수사 당시 그들 중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고, 진실은 지금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방송 말미에 장씨의 로드매니저는 방정오 현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를 지목했다. 그는 "(장자연씨가) 2008년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호텔 지하에 위치한 모 주점에서 방씨를 만났다"고 또렷이 기억했다.

"조선일보 사장 있잖아요, 이름 계속 거론된 그 방씨 일가 중 제일 막내. 그때 만났던 조선일보 사장이란 사람이 젊었어요. 키도 크고 핸섬했어요. 젊은 CEO 느낌." 

그는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의 차남으로, 당시 조선일보 미디어전략팀장이었다. 최근 검찰은 방씨와 장씨가 첫만남 이후 여러 차례 통화한 통신기록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건과 관련해 55분간 경찰서가 아닌 호텔룸에서 경찰조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는 25일 오전 낸 입장문에서 "2008년 10월 28일 밤 지인 전화를 받고 뒤늦게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고 장자연씨가 있었다고 한다. 저는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먼저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밝히며 이후 장씨와 연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MBC < PD수첩 >에는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앞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

MBC < PD수첩 > '고 장자연 1부' 방송 화면 ⓒ MBC


방송에 나온 한 연예 관계자는 "엄마가 직접 관리하거나 잘 사는 집 애들한텐 안 그러지만 가난하거나 부모가 없는 신인들은 지금도 그런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4장의 자필 문건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장자연씨는 30대, 40대, 50대에도 배우로 살고 싶어했다고 한다. 고향인 전라도 정읍에서 올라와 배우가 되려고 홀로 고군분투했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20대 가장이었고, 소속사 대표에게 밉보이면 연예계에 발붙이지 못할까 봐 모든 부당한 일을 참았다.

사망 당시 장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전속계약이 여러 해 남은 데다 1억 가까운 위약금을 물고 나올 수도 없었다. 죽기 일주일 전 전 매니저를 찾아가 작성한 문건엔 주민번호가 적혀 있고, 장마다 도장이 찍혀 있었다. 방송에 나온 한 연예 관계자는 고소를 염두에 둔 문건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자리에 불려나가고 성접대를 강요당하는 노예 계약은 물론 김종승 대표에게 벗어나고자 했던 장자연씨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문건 속엔 폭행·강요·욕설, 골프 접대, 술 접대 등을 강요받은 사실이 생생히 드러나 있다.

사망 전 장씨의 계좌엔 100만 원짜리 수표가 1억 가까이 입금됐다. 입금자는 총 20여 명. 재미교포 사업가, 맥주회사 회장, 법원 관계자 등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내사 종결했다. 제작진을 만나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김지연씨는 2009년 당시 검경에 나가 13차례나 진술을 했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가 처음에 제작진과의 인터뷰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극구 사양한 이유를 이해할 만했다.  

제작진이 찾은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한사람 말만 듣고 기소하기 어렵다. 지위도 낮은 사람이 그렇게 만지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부인할 때 입증할 방법을 나한테 말해달라", "수표 준 것만으로 성매매 대가라고 하는 건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일관했다.

다음 회 예고편에는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등장했다. 조 전 청장은 "(조선일보가) 정권 운운하면서 협박을 하니까..."라며 "두세 차례 회사(조선일보)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하면서 개인적으로 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조선일보 전 관계자는 "(조선일보사 내에) 장자연 대응팀이 있었다. (이들이 한 일은) 방상훈·방용훈의 이름이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한 지인은 "조선일보 도움이 분명히 필요한 날이 있을 텐데라고 하더라. 협박으로 느꼈다"고 밝혔다.

지난 9년간 국민들은 검경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질타했다. 왜 공권력은 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이 사건을 필사적으로 덮으려 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은폐·외압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히 규명하는 것이다.

장자연 조현오 성접대 의혹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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