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전파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보증기간이 지나면 고장 나는 전자제품들, 왜?

등록 2018.07.22 18:10수정 2018.07.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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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하드디스크 고장난 하드디스크 ⓒ 김인철


노트북은 내가 매일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다. 얼마 전 오 년 전에 구입한 노트북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그동안 하드디스크가 두 번이나 고장이 나서 해당 업체 서비스센터에서 유상으로 교체를 해야 했다.


이상하지? 컴퓨터 부품은 대부분 수리가 아니고 교체를 해야한다. 다른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하는 대신 통째로 교체를 해야 한다. 예전에 선풍기나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전파사를 가면 콘덴서나 저항, 다이오드만 갈면 말끔히 수리를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왜 업체에선 수리가 안 될까? 기술은 발전하고 부품은 정교해지고. 아마도 안해주는 거겠지. 하긴 그 많던 전파사도 이젠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전자과를 전공했고 이십대엔 전자회사에서 두루두루 부서를 옮겨 다닌 경험으로 보자면 충분히 수리가 가능할 텐데 말이지. 고장난 하드디스크는 두 번 다 보증기간이 지났다. 제품을 만든 업체의 기막힌 상술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나만 재수가 없는 걸까? 두차례 하드디스크 교체 비용만 삼십만 원이다. 동네 정육점에서 삼겹살 600g을 스물다섯 번은 살수 있는 돈이다.

이참에 노트북을 새 걸로 확 바꿔버릴까 싶었지만 그러자니 노트북의 다른 부품들은 멀쩡하고 백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이래 저래 고쳐서 쓰긴 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부품은 싸지만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 저녁에 노트북을 써야 한다. 기다릴 여유가 없다. 좀 비싸지만 서비스센터에서 부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서비스센터 기사는 불친절하다. 불량 원인도 잘못 알려주더니 급기야는 당일 수리가 안 된단다.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는데 한시가 넘어서 퇴근해야 한단다. 난 어쩌라고. 언짢은 마음에 수리기사와 말다툼을 했다. 서비스센터. 깔끔한 시설과 과한 친절과 웃음 뒤에 감춰진 표정의 그늘이 짙다. 디지털화한 강박 때문일까? 기분이 좋아야 할 토요일 아침에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난다.

겨우 노트북을 수리 한후 집에 왔다. 쓸모가 없어진 하드디스크를 버리기도 뭐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똑같은 하드디스크가 두개다. 저 네모난 잿빛 금속성 물체 안에는 나와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야기와 추억이 무려 500기가바이트로 담겨있다.


0과1. 매트릭스처럼. 텍스트와 사운드와 이미지들이 0과 1로 압축된 물리적 공간. 하드디스크.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0과 1로 변환된 물리적 공간. 한동안 두개의 하드 디스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별도의 외장하드에 백업을 해놓지 않았다면 그 추억을 복구하는 데 또 수십만원이 들었을 것이다.

0과1. 디지털은 휘발성이 강하고 돈도 많이 든다. 왜 요즘 나오는 전자제품들은 대부분 수리가 안 되고 통째로 갈아야 하는걸까? 숫자 0과 1이 아닌. 달달거리는 선풍기와 더운 바람이 나는 골드스타 에어컨. 목이 늘어난 흰색 메리야스를 입고 뜨겁게 달궈진 인두를 든채 숨결과 호흡이 먼지가득한 공간을 휘감던 전파사의 사장님, 수리기사의 땀과 여유. 그 많던 골목의 전파사는 다들 어디로 사라진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노트북 #외장하드 #하드디스크 #전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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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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