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19년만의 민주노조 설립, 가입원서가 부족했다

새 노조 창립 후 21일 현장 순회 방문에 노동자들 ‘폭발적 가입’ 화답

등록 2018.07.21 19:28수정 2018.07.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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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조 창립에 "온몸에 전율" 단체톡방 600명 넘어

길병원 21일 카카오톡에 개설된 '길병원 직원모임' 단체 대화방. 5시 30분쯤 600명을 넘어섰다. ⓒ 김갑봉


19년 만에 다시 창립한 민주노조에 대한 가천대 길병원 노동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길병원에 새 노동조합이 창립했습니다. 새 민주노조를 알리고, 가입을 안내하러 왔습니다." 21일 각 현장 순회 방문 때 새 노조가 준비한 노동조합 가입원서는 모자랄 만큼 폭발적이었다.

길병원 민주노조 설립은 이번이 두 번째다. 길병원 노동자들은 지난 1999년에 민주노조를 설립했다. 노조를 발족하긴 했지만 당시 사측의 끈질긴 탄압으로 끝내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앞서 지난 20일 길병원 노동자들은 설립 총회를 열고,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인천부천지역본부 가천대길병원지부(이하 길병원지부)를 설립했다. 그리고 21일 오후 병원 각 병동과 진료실 등을 방문해 새 노조 설립을 알리고, 조합 가입을 권유했다.

이번에도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한 노조 가입에 사측의 방해가 예상됐으나, 현장 순회 방문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순회 막바지에 간호본부장과 현 노조위원장이 제지하는 과정에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일긴 했으나,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순회 방문 때 새 노조에 보여준 노동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새 노조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병원 운영의 문제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현장에서 바로 새 노조에 가입했다. 이날 새 노조는 준비한 가입원서가 모자라 온라인으로 가입을 접수했다.

오프라인에서만 반응이 뜨거운 게 아니다. 새 노조를 알리고, 지지하기 위해 만든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길병원 직원모임'의 경우 가입 인원이 21일 오후 5시 30분 현재 600명을 넘어섰다. 단체대화방에는 "정말 소름 돋았다." "온몸에 전율이 일고 있다." "새 노조 가입했습니다." 등의 새 노조 응원 글이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새 노조를 창립한 노조 간부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고 있다. 이는 촛불혁명 이후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면서 한림대의료원ㆍ동국대병원ㆍ건양대병원ㆍ국립암센터 등 26개 사업장에서 새 노조가 설립된 흐름에, 길병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반발이 더해져 새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길병원 새 노조 민주노총 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는 20일 창립 총회를 열고, 21일 각 병동과 검사실 등 현장을 순회 방문하며 조합 설립을 보고하고 가입을 안내했다. ⓒ 김갑봉


현장에선 간호사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길병원 노동조합 가입대상은 2300여명이고, 이중 약 80%가 간호사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은 근무 교대 시 인수인계를 위해 약 1시간을 추가로 일하는데 이에 대한 초과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휴게 시간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하면 휴게 시간으로 1시간을 보장받게 돼 있다. 길병원은 노동시간 8시간에 1시간 휴게 시간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병원 특성상 간호사는 자리를 비울 수 없으므로, 사실상 9시간을 꼬박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 사업장처럼 1시간에 대한 초과근무 수당을 적용해야 한다는 게 새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가 지적하는 부당한 대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새 노조는 "노조가 있는 병원은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 임신부는 노동시간 단축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길병원 간호사 중 일부는 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전기ㆍ시설업무 노동자들은 '감시ㆍ단속 노동자'로 신고 돼있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열린 새 노조 창립총회 때 해당 분야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은 "3일에 한 번 24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감시ㆍ단속 업무라면서 수당을 제대로 적용해주지 않는다. 일반직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1000만원 이상 차이 난다"고 말했다.

길병원의 부정부패 혐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길병원이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에게 뇌물 3억 5000만원을 제공하고, 또 위법한 방법으로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건네 사실이 지난 5월 언론 보도로 드러나며,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강수진 새 노조 위원장, "갑질 청산하고, 노동 존중받는 병원 만들 것"

강수진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장 강수진 지부장이 지부 설립 총회에서 지부장으로 선출된 뒤 소감과 의지를 밝히고 있다. ⓒ 김갑봉


길병원 노동자들은 기존 노조보다 새 노조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노조 가입 대상 노동자가 2300여명인데, 이중 8명의 대의원이 모여 선출한 기존 노조로는 길병원의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기존 노조가 지난 20일 대의원 8명이 모여 간선으로 노조 위원장을 선출한 날, 기존 노조에 실망한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대변할 민주노조를 설립하겠다며 20일 창립총회를 열고 강수진 지부장, 안병훈 수석지부장, 이철행 부지부장, 정영민 사무장 등 집행부를 선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21일 병원 각 병동과 진료실, 검사실 등을 순회하며 새 노조 창립을 알렸고, 이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새 노조가 준비한 가입원서가 모자랄 정도로 현장에서 바로 가입원서를 제출하며, 새 노조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새 노조는 기존 노조의 조합원 규모를 500명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어제만 100여명 탈퇴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새 노조는 새 노조의 조합원 가입을 1000명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수진 지부장은 "을의 반란이 시작됐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길병원은 온갖 공짜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직장 갑질에 병들어있지만 어떠한 개선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 뒤, "새롭게 만든 노조는 직원들의 뜻을 모아 갑질을 청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병원, 부정부패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새 노조 강수진 길병원지부장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직장 갑질에 병들어 어떠한 개선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민주노조가 창립했다. 새로 만든 노조는 직원들의 뜻을 모아 갑질을 청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병원, 부정부패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노조 가입 방해는 부당노동행위, 꼭 녹음하세요"

길병원 현재 노조위원장이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와 상급단체인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지역본부의 노조활동을 업무방해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갑봉


새 노조 집행부의 현장 순회 방문에는 상급단체인 보건의료노조 인천ㆍ부천지역본부 조합원들이 동행해, 새 노조 가입을 권유하고 독려하며 힘을 보탰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순회 막바지 간호본부장과 현재 노조위원장이 이들을 제지하며 실랑이가 불거졌다. 20일 대의원 8명 중 6명의 찬성을 받아 연임된 노조위위원장이 보건의료노조가 업무방해를 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러나 법원은 '산별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들이 사용자가 다른 기업의 근로자라 하더라도, 그 산별노조가 단위노조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모든 근로자를 대표해 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들, 즉, 사용자 단체와 직접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그 밖에 노동조합의 운영 조직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고 판결(인천지법 2016노5020 판결)했다.

즉,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를 대표하는 간부들이 해당 사업장의 소속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조합원들을 대표해 노조 활동을 위해 사업장에 출입할수 있는 것이다.

출동한 경찰은 양측을 주장을 듣긴 했지만,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녔다. 경찰 출동은 보건의료노조가 순회 방문을 다 마친 상태에서 이뤄져 더 이상의 실랑이는 없었다.

새 노조가 1차 현장 순회 방문을 마무리한 21일. 600명을 넘어선 '길병원 직원모임' 단체 대화방에는 새 노조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글이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아울러 다급해진 병원 사측은 병동을 순회하며 새 노조가 두고 간 가입원서를 수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라온 글들을 보면 "1시간 됐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네요. 이 더위는 저리가라예요. 얼마나 이 시간 이날을 기다렸던지." "감동입니다. 직장생활하면서 이런 날이 언제 또 있을런지."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소름 돋았어요." "강수진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99년 노조탄압을 봐왔던 일원으로 이번엔 촛불시민이 해냈듯이 반드시 성과 있으리라 봅니다"라는 응원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단체 톡방에 모인 이들은 새 노조 가입 방해에 대해 "혹시라도 부서장이나 다른 윗사람들이 새 노조 가입했냐고 묻거나, 아냐고 묻거든 다 녹취하세요. 법으로 보호 받을수 있고 법적인 처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관리자나 수간호사, 간호본부장 등이 가입했냐, 누가 가입원서 받고 돌아다니냐 등의 질문을 받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기 위해 증거자료 (녹음) 등 확보해주시고 공유해주세요"라고 글을 올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길병원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민주노총 #민주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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