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무역전쟁'이 히틀러를 불렀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1929년 대공황, 미국의 잘못된 선택

등록 2018.07.21 20:31수정 2018.07.2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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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장풍을 일으키듯 일으킨 강풍. '토네이도'라 불릴 만한 무역전쟁이 점점 넓은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 '토네이도'는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터키·인도·캐나다 등의 반발도 초래하고 있다.

일례로, EU는 철강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이 품목 수출이 유럽으로 몰릴 것을 우려해, 23개 철강 품목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잠정조치를 19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23개 품목에 대한 한국의 수출 규모는 3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이 동쪽 트럼프를 쳐다보다가 서쪽 EU한테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한두 나라도 아니고 세계적 범위로 무역전쟁이 확전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적확한 사례가 있다. 물론 지금 상황이 파국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무역전쟁이 확산되다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예가 20세기 전반에 있었다.

1929년, 세계는 미증유의 경제 대공황에 직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세계 경제에 끼친 영향은 심대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제3장에 이런 말이 있다.

"1929년 10월 월가(미국 주식시장)의 추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이 선진국을 강타했다. 그 엄청난 충격은 역사상 최대였다. 미국·독일·영국·프랑스에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노동인구가 일자리를 잃었다."

대공황은 경기침체를 초래했고 이것은 실업률을 폭증시켰다. 그리고 유럽 인심을 흉흉하게 만들어, 나치즘과 파시즘이 대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부르는 요인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공황 속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인물,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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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절인 1936년, 7세 된 딸과 함께 배급권을 기다리는 미국 여성의 모습. ⓒ 퍼블릭 도메인


잘 알려진 그 인과관계 덕분에 최대 이익을 얻은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대공황은 히틀러의 당인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SDAP)에 일대 행운을 안겨주었다. 대공황 이듬해에 베를린에서 출생해 <슈피겔>지 및 <차이트>지에서 근무한 뒤 역사 저술가 등으로 활동한 하랄트 슈테판(Harald Steffahn)은 <아돌프 히틀러>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1929년 10월 말 뉴욕 증시의 파산이 빚투성이의 독일 경제를 대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경기침체의 영향이 유럽 전체에 퍼져나가기 훨씬 전에 실업자의 수가 340만으로 껑충 뛰어올랐을 때, (군소 정당이라서) 위기 국면에 접했던 NSDAP는 불만을 가졌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표를 대량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18.3%에 해당하는 640만 표를 얻었다! 1930년 9월 14일은 민주주의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107명의 히틀러 부하들이 갈색 제복을 입고 승전고를 울리며 제국 의회로 들어왔다."


2년 전인 1928년 선거에서 NSDAP는 81만 표를 획득해 12석을 차지했다. 그래서 군소 정당의 위기를 겪었던 NSDAP가 2년 뒤 1930년에는 대공황 덕분에 640만 표에 107석을 획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히틀러가 제2당 리더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공황이 히틀러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세를 몰아 히틀러는 1933년 총리가 되고 1934년 총통까지 겸하게 됐다. 이처럼 대공황이 히틀러 집권에 결정적 도움이 되고 이것이 제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대공황이 제2차 대전의 원인이 됐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물론 대공황이 발생한다 하여 곧바로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은 아니다. 1997년 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했지만, 이런 사건들이 대전 발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미흡하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인류는 지혜를 모았다. 1997년 위기를 겪은 뒤에는 종전의 선진 7개국(G7)에 더해 한국·중국·브라질 같은 신흥 경제강국들을 포함시켜 G20을 만들었다. 여기서 전 세계 경제 현안을 논의했다.

2008년 위기를 겪은 뒤로는,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이었던 G20을 정상급 회담으로 격상시켜 문제해결 능력을 제고시켰다. 물론 완벽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협력을 통해 세계는 최근의 경제위기를 그럭저럭 넘겼다.

미국의 이기주의가 불러온 예상치 못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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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 위키백과


그런데 1929년 대공황 때는 그런 노력이 미흡했다. 결정적 이유는 미국 이기주의, 미국 중심주의 때문이었다. 대공황 하면 흔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연상하지만, 실은 다른 게 먼저 연상돼야 한다. 그 '다른 것'의 파급력이 훨씬 막강했기 때문이다. 뉴딜 정책은 미국에 국한되는 것이지만, 그 '다른 것'은 세계적 범위에 걸치는 것이었다. 그 '다른 것'이란 바로 미국발 무역전쟁이다.

자국 혼자만 대공황을 살아남고자 미국이 일으킨 무역전쟁과 관련해,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19일 자체 연구 인력인 오준범·김천구·홍준표·정민·김수형·신유란 명의로 발표한 보고서 <현안과 과제-관세전쟁의 시작과 한국경제의 위기>는 "과거 무역전쟁이 발생했던 사례는 대공황 시기가 대표적"이라면서 이렇게 서술한다.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 법안을 시발점으로 세계적인 무역전쟁이 발생하였다.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주의 강화 및 경쟁적 자국 통화 평가절하로 세계 교역량은 물량 기준으로 약 30%, 금액 기준으로는 약 60% 이상 줄어들었다.

주요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 충격을 가져왔다. 세계 산업생산은, 경제가 정점이었던 1929년 6월 대비 1932년 7월에는 40% 가까이 줄어들었고, 주식시장은 1932년 6월에는 약 70%까지 위축되었다. 실물경제 위축과 경기회복 지연으로 주요국에서 실업자들이 급증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930년 6월 17일 발효된 스무트-홀리 법안을 통해 수입품목 2만 1000개에 대해 관세율을 인상하거나 새로이 부과했다. 2만 1000개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무려 60%였다. 보고서는 이 관세율을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며 "이는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높이며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강이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에서 "미국 없이는 세계 경제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면서 "미국은 어쨌든 1920년대에 세계 제1의 수출국이자 영국 다음으로 큰 수입국이었던 것이다. 원료와 식량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15대 무역국의 총수입량의 거의 40퍼센트를 수입"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제대국이 위기 앞에서 책임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극단적 이기심으로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공황이 곧바로 히틀러 집권 및 제2차 대전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대공황을 명분으로 한 미국발 무역전쟁이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무역전쟁은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한층 악화시켰다. 그래서 실업률이 폭증하고 전쟁 기운이 각국을 지배하게 됐다. 미국발 무역전쟁으로 심화된 세계적 경기침체는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연설에 더욱 깊이 빠지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대공황이란 상처에 대해, 미국은 약을 바르는 식이 아니라 상처를 돌로 짓이기는 식으로 대응했다. 또 혼자만 살아남자는 식으로 대응했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또는 여타 국가들이 그런 미국을 제지할 수 있었다면, 대공황이 그렇게까지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미국발 무역전쟁이 없었어도, 상당 수준의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G20 경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세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발 무역전쟁이 히틀러의 등장을 낳고 종국적으로는 제2차 대전까지 낳았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말이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궤적을 보면, 트럼프는 평소에는 큰소리를 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이성을 차리고 상황을 수습하곤 했다. 이런 특성이 이번 무역전쟁에서 나타나지 않고, 트럼프가 정말로 끝장을 보려 한다면,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 극우파까지 자극해 세계가 그야말로 혼돈으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일으킨 미국발 무역전쟁은 아직까지 1930년 수준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은 '토네이도'를 잠재울 기회가 남아 있다. 상황 수습을 위해 인류가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될 때다.
#무역전쟁 #대공황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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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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