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귀농... 야망 같은 거 없어?"

귀농 청년 아나의 '엄마, 나 시골 살래요'

등록 2018.07.20 14:27수정 2018.07.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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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사는 사람들이 시골 농촌생활을 동경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 작은 텃밭이라도 일궈서 무공해 반찬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 경우는 대부분 직장에서 은퇴한 후 남은 삶을 그렇게 시골에서 보내려는 분들 아닐까요?

만약 젊은 사람들이 그런 시골 생활을 꿈꾼다면 뭔가 다른 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갑갑한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농촌에서는 즐길 수 있고, '특용작물' 같은 것들을 재배해서 부농도 꿈꿀 수도 있고, 시골여행 가이드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말입니다.


"'그런데 아나, 아나는 정말 귀농해도 괜찮겠어? 솔직히 아직은 어리잖아. 야망 같은... 그런 거 없어?' 헉. 갑자기 엄마가 내 앞에 있는 줄... 그런데 다른 동기들 몇몇도 인생 1막을 끝내고 2막을 준비하려는 자신들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내가 이런 교육에 들어와 있는 게 희한했나 봐요."(47쪽)

ana의 <엄마, 나 시골 살래요>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순창군이 주관하는 '농촌생활학교 10기'에 등록하여 4일차를 맞이한 그녀의 동기생들이 그녀에게 한 말이었죠. 24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2년간 살다가 순창에 내려와 농촌 삶을 배우고자 했으니, 나이 많은 동기생들이 그런 질문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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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표지 ana의 "엄마, 나 시골 살래요" ⓒ 이야기나무


물론 그녀는 시골에서 태어났던 까닭에 농촌의 삶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님도 농사 일을 했기 때문에 농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고 있겠죠. 하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것과 직접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완전히 딴 판이겠죠? 사실 이 책도 그런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해 교육 내용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자신의 안부를 알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과연 그녀를 포함해 교육생 8명이 그곳 순창의 귀농·귀촌 지원센터에서 배운 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농촌의 현실과 실태, 토종 씨앗과 자급자족하는 먹거리들에 대해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비닐하우스, 된장, 고추장, 청국장, 화덕난로, 평상 등을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들이었습니다.

"'도시탈출 귀농으로 억대 연봉 벌기', '귀농·귀촌 반값에 성공하기' 같이 희망적이고 손쉬워 보이게 귀농을 포장하죠. 그런데 실제 귀농을 시도했다가 다시 돌아가는 역귀농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개인에게 농촌으로의 진입장벽은 꽤 높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강조했어요."(119쪽)

이것은 귀농·귀촌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12년 전 강원도 화천으로 귀농해 살다가 2010년부터 폐교된 학교를 이용해 농사를 가르치고 있는 '화천현장귀농학교'의 박기운 교장 선생이 그곳에 와서 직접 강연한 내용입니다.

그 교장 선생은 귀농 귀촌의 현실적인 제약과 어려움들이 많다고 하죠. 이른바 농촌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 대책으로 내 놓은 게 '야간에는 외출하지 말라' 혹은 '밤에는 밝은 색 옷을 입어라' 하는 정도라고 하죠. 그만큼 농촌문제는 우리사회에서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고 하죠. 보일러나 난방비도 도심의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고 하죠. 더욱이 귀농·귀촌자들의 수가 급작스레 증가하면서 기존의 시골 땅값이 10배가 넘는 곳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농(大農)과 부농(富農)의 후계자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데, 아무 밑천 없이 귀농한 청년들은 다들 흙수저로 전락한다고 하죠.

어땠을까요? 귀농·귀촌 교육의 5주째에 접어들어 듣는 이야기였으니, 여태 품어왔던 기대감이 완전 실망감으로 돌변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박기운 교장 선생이나 전희식 선생이 강조한 것도 그것이었다고 하죠. 귀농과 귀촌은 단순히 몸만 농촌으로 들어와 사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만물을 키우고 살리고 상생하는 '살림의 가치'로 농촌에 내려와야 살아가게 된다고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내겐 시골 지역 공무원 중에 전문성이 뛰어나고 의욕이 넘치는 분들은 적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만난 주무관님은 순창 지역에 특화된 소득 작물에 대해 아주 전문적이었어요. 또 자신이 시험포에서 해 본 실험들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농가에 알려 도움이 되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열정도 대단했죠."(148쪽)

순창 농업기술센터의 주무관에 관한 이야기죠. 순창 농업기술센터는 구림면에 소득개발시험포라는 시설까지 따로 두고 있다고 하죠. 그 주무관이 그걸 직접 관리하고 있고, 교육생들과 농촌의 소득 작물을 꿈꾸는 분들에게 소개하고 보급하는데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나도 농촌 태생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런 분이 있다면 우리들의 농촌은 살맛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교육에서 '성공한 귀농을 위한 농사 비법'을 알고자 했거나, '귀촌해서도 밥벌이하며 사는 법'에 힌트를 얻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도시가 아닌 도시 밖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새 길을 찾고 있었다. 새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새로이 나와 마주하는 일이었다."(325쪽)

총 6주간의 농촌생활학교를 끝마치면서 쓴 에필로그죠. 흔히 시골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서 귀농귀촌을 배운 것이라면 뭔가 농산물에 대한 수확비법이나 밥벌이 할 방법들을 얻고자 배운다고 생각하기가 쉽겠죠. 하지만 그녀는 그 과정을 끝마치면서까지도 그 길에 발을 들여놓아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가야 할지, 고민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농촌생활이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이 책의 속지를 보니, 현재 그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구례로 이사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구례의 그 삶이 어쩌면 순창의 농촌생활학교에서 배운 삶과 결코 무관치는 않겠죠. 아무쪼록 어느 농촌에서 살든 순창에서 배운 그 '살림의 가치'를 고귀한 밑천으로 삼아 한 땀 한 땀 꾸려나갈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엄마, 나 시골 살래요! -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딸의 편지

ana 지음,
이야기나무, 2018


#ANA의 엄마, 나 시골 살래요 #농촌생활학교 #전국귀농운동본부 # 순창의 귀농·귀촌 지원센터 #‘화천현장귀농학교’의 박기운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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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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