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엘리트' 키워드로 들여다본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뷰]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등록 2018.07.18 16:53수정 2018.07.1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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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포스터. 아마 지금의 아이들에겐 익숙하지 않을 듯하다. 국민학교로 불렸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는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악으로 규정한 대상을 저지하고 타도하는 빤한 내용들. 그 덕분일까.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이따금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갑자기 무언가 들이닥쳐 모든 것이 없어지고, 학교에도 못 가고, 엄마 아빠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그거야 수십 년이나 지난 옛 이야기라지만,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북미 정상들이 주고받던 위험천만한 말들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외부에서 바라보기엔 평화롭게 일상을 사는 한국인이 오히려 의아하게 여겨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일본을 떠올렸다.


지진의 두려움을 안고도 의연할 수 있다며 그들의 국민성을 칭송하는 것은, 어쩌면 남의 속도 모르는 태평한 소리는 아니었을까. 평화를 온 마음으로 기도할 뿐, 의연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던 정세가 바뀌었다. 바뀌어도 한참.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정말로 성사됐다. 남북 정상이 만날 땐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으로 눈물겨웠고, 서로를 미치광이 취급하던 북미 정상이 만날 땐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지만 분명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은 맞는 듯하다. 그 발걸음 부디 순탄하게 이어져 판문점 군사분계선 문턱이 닳아 없어지고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 덕분일 테다. 매체를 통해 접하는 북한 관련 소식이 조금씩 바뀌는 듯하다. 이전에 주로 북한이 얼마나 가난한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북한 장마당에서 수입산 랍스터가 사고 팔린다는 말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인들 중에도 미국이나 유럽은 수시로 드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몇 해씩 살다 온 사람도 수두룩하지만, 북한에 다녀온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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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책표지 ⓒ 가나출판사


"전 세계인의 우려와 기대 속에 열린 2018년 남북정상회담. 뜨거웠던 그날이 지난 후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 됐다. 우리는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중략)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랜 세월 애증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몰라도 그만인 사안이 아니다. 휴전을 넘어 종전으로,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평화를 향해 발걸음을 뗐기 때문이다." - 31~32p
    


KBS 특별기획으로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가 제작됐다. 정상회담 분위기를 타 재빠르게 제작된 것이 아닌, 1년 반이라는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북한을 알기 위해 해외 취재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KBS가 맡고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은 독일 저널리스트 팀이 맡는 등 국제적 공조까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동명의 책으로도 출판되어 호기심을 안고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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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깜짝 외출 보도한 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시내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동남부의 마리나베이에 있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 에스플러네이드와 관광 명소 머라이언 파크의 연결지점 등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북한의 정치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키워드는 '파워 엘리트'다. 김정은 집권 7년간의 권력 구도를 알아보기 위해 북한 권력층의 인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들 상호 간의 연결관계를 네트워크 통계로 분석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현지지도 수행자 명단, 정보기관 내부 자료, 통일부 등 유관기관들의 자료도 모두 수집해 반영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북한 권력 엘리트의 대폭적인 재구성이 단행되었다고 한다. 당의 위상을 재구축하고, 권력 분점을 용납하지 않는 유일영도체제의 재건을 이뤄낸 것이다. 또한, 김정일이 군사 강국을 지향했다면, 김정은은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경제 강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작팀은 김정은을 '북한 최초의 시스템형 지도자'로 분석하고 있다.

"파워 엘리트라는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본 김정은은 의외로 냉철한 지도자였다. 그는 실무에 밝은 경제, 과학, 기술 분야의 젊은 관료들을 중용했다. 7년 동안 그는 주변을 아버지 김정일의 사람이 아닌 자기 사람으로 채워나갔다. (중략) 합리적인 지도자는 아닐지 몰라도 그가 그리고 있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명제를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합목적적 리더임은 분명했다." - 9~10p

제작팀은 북한 내부의 상황뿐 아니라 외부의 상황도 알 필요가 있다는데 주목하고,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숨은 사람들, 즉 해외 송출 노동자들을 취재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달러 영웅, 달러 히어로즈로 부르지만, 제작팀은 그들이 북한 정권의 빛인 동시에 그림자임에 주목한다.

북한은 1948년부터 소련에 노동자들을 파견했다. 이것이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면, 김정일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뤄진 노동자 해외 송출은 외화 획득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이는 김정은 시대에 더욱 활발해져 중요한 국가 추진 사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이전에 없던 전문 인력이 추가되고, 노동 분야도 더 다양해졌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이들의 수입이 북한 당국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중국으로 파견된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자의 절반 수준인 임금을 받고 하루 열두 시간 이상 일한다. 중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북한의 노동력은 필수적이지만, 고강도 노동, 불합리한 처우, 감시와 처벌 등은 이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러시아의 노동자들도 당국에 상납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이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말레이시아의 탄광은 북한 노동자들의 사고사를 숨기는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폴란드 내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과 착취뿐 아니라 심리적 우울감과 좌절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전세계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목숨까지 잃는 일도 많다. 이들의 목숨 빚은 과연 누구에게 받아야 할까." - 195p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은 대외 경제 관계를 활발히 하는 것은 물론 외화를 획득하는 주요 수단이고, 나아가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정과 권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국가적 사업이다. 이들에게는 수십 년 전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또한 모두가 지켜야 하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들의 어두움이 빛으로 승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간절하게 평화를 바랐던 우리 모두의 마음이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 261p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것은 전 세계인의 소망일 것이다. 각자의 구체적 구상과 원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평화만은 모두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평화 체제가 유지된 뒤 더 큰 혼란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북한에 대해 편견 없이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책들이 더 많이, 꾸준히 나오고, 또 널리 읽혀지길 바라본다.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한국 KBS, 영국 BBC, 독일 ZDF 방영 다큐멘터리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류종훈 지음,
가나출판사, 2018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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