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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옥류관 평양냉면 맛에 충격? 우리가 놓친 것들

[TV리뷰] < MBC 스페셜 > '옥류관 서울 1호점 1·2부

18.07.17 17:21최종업데이트18.07.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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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 옥류관 서울 1호점 ⓒ MBC


지난 4월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던 날,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 이들이 많았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멀리서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라고 말하고, 이후 만찬에 평양냉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평양 냉면'은 그저 냉면 종류 중 하나가 아니다.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맛본 이들의 동정은 남북정상회담만큼 회제가 되고 있다.

어느덧 시대의 상징이 된 음식, '평양냉면'에 대해 < MBC 스페셜 >이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씨에 따르면, 찰기가 없어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풀어져 버리는 이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기 위해 김칫국물 등의 차가운 물에 담근 것이라고 한다. 특히 추운 겨울 밤 덜덜 떨면서 먹던 그 '밤참'의 기억 덕분에 '덜덜이'라고 불렸다고. 벼농사가 흔했던 남쪽과 달리, 척박한 밭 농사 지역에서 흔히 수확할 수 있었던 특산물에서 비롯된 음식이 '냉면'인 것이다.

냉면가게에 가면 홍해 바다 갈리듯, 함흥과 평양 그리고 비빔과 물로 취향이 나뉘어진다. 하지만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나, 그 상징적 음식으로 '옥류관의 평양 냉면'이 등장하면서, 어느새 냉면의 대명사는 '평양 냉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평양 냉면'의 성지로 '옥류관'이 떠올랐다. 꼭 먹어봐야 하는 맛, 먹고 싶은 맛, 옥류관의 평양 냉면을 먹고싶어서라도 어서 빨리 '통일'이 돼야할 정도다.

장충체육관보다 넓은 평양냉면 '성지' 옥류관

MBC스페셜 - 옥류관 서울 1호점 ⓒ MBC


다큐는 당연히 '성지', 옥류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옥류관1~2층 합쳐서 1만2800㎡로 장충체육관보다 넓은 옥류관은 냉면 집이라기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곳에선 한 번에 2000명이 냉면을 먹을 수 있다. 하루에 팔리는 냉면의 양만 만 그릇이 넘는 곳이기도 하다. 육수가 제일 맛있다는 평양냉면은 순 메밀로 만든 사리에 김치, 무김치, 소, 돼지, 닭, 실지단, 달걀 반 알, 잣 세 알을 띄워 사리에 꼭 식초를 쳐서 먹어야 한다는 비법까지 가지고 있는 음식이다. 1961년 김일성의 지시로 평양 대동강변에 만들어진 옥류관의 대표 메뉴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면을 그저 '옥류관'에 가두는 건 아쉽다. 다큐는 냉면을 타고 흐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북한에 옥류관이 있다면, 남한에도 '옥류관' 못지않은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이 많다. 그 중 하나가 1.4 후퇴 당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 박근성씨가 차린 '냉면집'이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해 냉면집을 하시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대전의 피난민들이 많은 숯골에서 냉면을 말아 팔기 시작했다던 박근성씨의 그 냉면집은 이제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대전의 '맛집'이 되었다.

초가집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냉면을 먹던 시절이 있었건만, 그 '냉면집'은 이제 한 해에만 무를 1만 개, 배추를 7천 포기나 쓰는 소문난 맛집이 됐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메밀의 겉 껍질을 살린 거무죽죽한 면발과 겨울 무로 담근 동치미를 곁들이는 전통은 변하지 않았다. 방송이 나가기 얼마 전 결국 고향을 그리워 한 채 눈을 감고 만 박근성씨. 박근성씨 가게처럼 남한의 전통있는 냉면 집은 '실향'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냉면으로 이어진 '민족'은 한반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교포인데도 워낙 냉면을 좋아해 어느 덧 냉면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된 존박과 함께 찾아간 일본 효고현 고베시. 그곳에 옥류관보다도 몇 십년 앞선 1939년에 문을 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 있다.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한·장모란 부부의 자손들이 여전히 '조선'의 국적, 아니 남도, 북도 아닌 무국적인 채 이곳에서 '냉면'으로 가업을 잇고 있다. 어릴 적 아버님이 뽑던 전래의 냉면 틀을 기억하는 부부의 자손은 오늘도 평양식 물김치를 담그고, 손반죽으로 냉면을 뽑아내며 숙연한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서울로 내려온 옥류관 요리사

MBC스페셜 - 옥류관 서울 1호점 ⓒ MBC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도 옥류관 평양 냉면을 맛보는 게 가능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 혹독한 북한 사회를 견디지 못했던 옥류관 요리사 윤종철씨는 딸을 북한에 남겨두고 서울로 내려와 옥류관 시절의 맛을 되살렸다. 그에게 냉면은 낯선 서울 땅에서의 안착이자, 두고 온 딸을 향한 미안함이다.

다큐는 냉면을 통해 남과 북을 잇고, 민족을 되살린다. 단 250그릇 한정판으로 만들어 나눠준다는 팝업스토어 '옥류관 서울 1호점'에 냉면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의 음식으로 대동단결된 민족이다.

그런데, 평양 냉면이 정말 맛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유명하다던 평양 냉면들을 먹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좀 '밍밍한 맛'이다. 비빔과 물의 취향 차이만큼이나 또 하나의 '취존(취향 존중)'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밍밍한 맛'이 남기는 묘한 여운으로 인해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함께 갔던 이들이 다시 '이름값'을 넘어 '평양 냉면'의 마니아가 될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북한 옥류관의 냉면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2010년대, 2018년에 먹은 옥류관 냉면은 맛이 달랐다고 한다. 원래는 순메밀이었던 면에 찰기를 살리기 위해 전분이 더해지고, 심지어 2018년의 옥류관 냉면에는 붉은 다진 양념까지 제공됐다고 한다.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밍밍한' 평양 냉면이 정작 그곳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결국,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평양 냉면의 맛', 혹은 '이상향'이 어쩌면 또 다른 '냉면'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심심한 물에 담긴 메밀 국수를 평양냉면이라 부르며 길들여지고자 노력할 동안, 정작 본고장 냉면은 세상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음식은 시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한다. 똑같은 평양 냉면이라도 '대전'의 평양 냉면과 고베의 '평양 냉면'이 다르듯이 말이다. 애초 집집마다 긴 밤을 지내기 위해 말아먹던 '덜덜이 ' 국수에 정석이 어디 있으랴. 각 집의 손맛이 다르듯이, 김치 맛이 다를테고, 당연히 재료에 따라 냉면 맛도 달라질 것이다. 늘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음식'들이 트렌드가 된다. 한때는 비빔밥이, 또 한 때는 한식이, 부디 평양 냉면이 그런 호들갑스런 잔치상에 올려진 품목이 아니길 바란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을 확인하는 일은 뜨겁지만, '평양 냉면 제일일세'는 '과찬'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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