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흥할 때 경제도 흥했다'
35년 경제 그래프가 증명한 사실

[게릴라칼럼] 공장 다시 짓는 미국, 내보내기 여념 없는 한국 ④

등록 2018.07.17 11:56수정 2018.07.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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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조합은 '동네북'이다. 과거에는 우익언론과 보수정치권이 타격의 주체였으나, 이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까지 노조 때리기에 가담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유포한 '귀족노조'라는 모순적 조합어는 노동자의 '과분한 대우'를 비난하는 대표적 용어로 자리잡았다. 보수언론의 의제설정 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에서, '귀족노조'는 '철밥통'과 더불어 이들이 남긴 '유작'이라 할 만하다.

2015년 9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우리나라 대기업, 특히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부 과격·강성·귀족 노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 노조가 "매년 불법 파업을 일삼았다"면서, 공권력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였으며, 이런 김무성의 사고방식에 큰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여러 대목에서 아주 극우적이고 수구적인 인식"이라고 개탄하며,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아주 우려스럽다"고 강경하게 비판했다. 오랫동안 '노조'와 '좌파'는 보수정치권의 주적이자 만악의 근원이었다.

2017년 5월, 대선주자였던 홍준표는 '강성노조'와 '문재인'을 맹렬히 성토했다. 그는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3%도 안 되는 강성귀족 노조들의 기득권 때문에 대기업 등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며,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건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좌파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반기업 정서를 만들어 기업이 전부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강성노조'와 '문재인을 비롯한 좌파'가 합세해 기업을 내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진보진영에서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 년여가 지난 지금, '노조 때리기'는 보수와 진보를 하나로 잇는 '대통합'의 장이 된 느낌이다.

최근에는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까지 노조에 대해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를 본다. '억대 연봉 받으면서도 파업하냐'는 비난에, 비정규직, 하청업체, 청년 실업까지도 '귀족노조'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이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막말'로 악명 높던 홍준표의 발언과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파업을 해도 꼬박꼬박 월급 받는 연봉 1억 원의 강성 귀족노조가 협력업체,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삶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2017년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가 방송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노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다 외국으로 떠나고 청년들은 일자리 절벽에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말인가? 노조가 불과 1년만에 막장이 된 것일까, 아니면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적으로 바뀐 것일까?

'노조 망국론',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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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조직률이 한국의 8배에 이르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대규모 파업이 매년 늘고 있다. 왼쪽은 올해 1월부터 7월 초까지 발생한 중국의 파업횟수를 기록한 지도이고, 오른쪽은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확산하는 베트남의 상황을 다룬 최근 보도다. ⓒ China Labour Bulletin/TO


홍준표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이 아니다. '무노동 무임금'을 고수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파업기간에 월급을 주지 않는다. 하청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의 횡포며, 단기 이익을 위해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것을 '성과'로 간주하는 기업주들의 고질적 악습이다. 보수정치권은 대기업의 이런 '갑질'을 방관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노조가 기업 내쫓는다'는 주장은 어떨까? 기업이 노조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지만, 한국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대거 옮기던 2010년대 초에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역사상 최저치인 9% 대였다. 기업들이 열심히 공장을 옮겨가던 중국이나 베트남에는 노조도, 파업도 없었을까?

당시는 중국의 노조(공회) 조직률이 이미 75%에 이르렀고, 베트남 역시 노조 조직률 50%에 파업도 매년 두 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2011년 4월, 코트라(KOTRA)가 나서서 "베트남, 파업과 임금 상승으로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우려"라는 경고용 보고서까지 낼 정도였다. 이제 중국은 조직률 90%를 목표로 할 만큼 노조 설립 붐이 뜨겁고, 베트남도 80%를 넘긴 상태로, 양국 모두에서 대규모 노동쟁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 비해 노조 조직률이 반토막이 난 상태(10%)며, 파업 횟수도 가파르게 감소해 왔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파업 횟수는 101건이었는데, 이는 전년의 120건보다도 현저히 즐어든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가장 파업이 많았던 때라고 해야 2009년의 121회인데, 이는 노조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얼마나 많은 파업이 있었을까? 1988년과 1989년 모두 매년 천 번이 넘었다. 노조 조직률이 사상 최고였던 1988년에는 '불법'으로 규정된 파업 횟수만도 1143회에 달할 정도였다. 100건 정도의 파업으로 나라가 망한다면, 1980년 후반에는 도대체 경제 꼴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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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조조직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그래프. 노조의 추락과 함께 경제성장도 둔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조를 경제발전의 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경제성장이 노조조직률을 높인 측면도 있으나, 노조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점을 입증하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 강인규


직접 확인해 보시라. 1981년부터 35년간 노조 조직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그래프다. 놀랄지 모르지만, 노조 가입 비율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조직률이 낮을수록 경제성장률도 낮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상이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조가 경제성장의 적'이라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노조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예컨대 노조의 쇠퇴와 중산층 소득 감소가 동일한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통계가 그렇다.

노조는 경제의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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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조 쇠퇴와 중산층 임금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붉은 색이 노조조직률이고, 파란 색이 중산층 임금몫을 나타낸다. ⓒ EPI


안정된 중산층이 국가경제의 중추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수입을 가져다 주던 노조의 쇠퇴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미국 노조의 약화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 노조를 적대시하던 산업국들 사이에서 새롭게 반성이 일고 있다. 노조가 쇠퇴한 뒤 불평등이 심화되고 국가경제의 활력이 사라지자, 다시 노조 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바마가 입버릇처럼 '좋은 직장을 원하면 노조에 가입하라'고 말하고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리니치대학팀의 2015년 연구는 전성기의 절반(24.7%)으로 떨어진 노조조직률이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잠식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노조 조직률은 1975년에 최고조(49.9%)에 달했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한국보다 두 배 반 가까이 더 높다.

우리는 언론과 보수정치권이 주장해 온 '노조 말세론'을 구구단처럼 따라 외곤 한다.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이 떠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노조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노조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마음껏 일자리를 빼돌릴 수 있던 것이다. '강경노조'로 비난받는 현대자동차보다 노조 자체가 없는 삼성전자의 해외생산 비율이 더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일 노조가 경제의 적이라면, 지금 한국 경제는 정말 잘 나가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이 과거의 반토막 난 상태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에서도 최저수준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닥까지 떨어진 그 노조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일자리가 물밀듯 밀려오고 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까, 아니면 얼마되지 않는 일자리마저 씨가 마르고 임금은 더 추락하게 될까?

미국 시사 잡지 <디 애틀랜틱>지는 미국 노조가 70년대 수준을 유지했다면 고교 졸업장이이 없는 비노조 노동자들까지도 9% 이상의 임금을 더 받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렇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노조원의 소득까지도 상승했으리라는 것이다.

한국의 노조는 흔히 '이기적'이라고 비난 받는다. 기업별 노조의 임금 인상이 다른 노동자들의 인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노조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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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쇠퇴가 사회 전체의 임금 감소로 이어진다고 보도한 <디 애틀랜틱>지의 보도. ⓒ the Atlantic


'을들끼리 싸움 붙이기'

한국은 대부분 기업별 노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성과가 특정 사업체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반면 프랑스는 수치상으로 노조조직률이 한국보다도 낮지만, 산별노조 단위로 단체협약을 한다. 노조 활동의 결과가 사회로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의 단체협약적용률이 고작 10%인 반면, 프랑스는 90~95%에 이른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 파업이 적극적 지지를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습관적인 노조 때리기가 아니라, 정부에 기업에 산별단체협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국 노동자의 50%가 비정규직이며, 임금 역시 정규직의 50%밖에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과 보수언론은 마치 노조가 문제인 것처럼 상황을 호도하는 '질투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올해 초, 임금협상을 마무리한 현대, 기아, 삼성르노 노조를 향해 '독일에게서 배우라'고 훈계하는 기사를 썼다. 글을 읽는데 너털웃음이 나왔다. 한국 노조가 왜 '강성'이 되는지 아는가? 사용자를 설득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독일 노조는 경영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철탑이나 굴뚝 위 함성 대신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조용히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기업주나 임원들이 단기 이익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등의 결정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독일이 '제조업 강국'으로 위세를 떨치게 된 데에는 이런 노조의 힘이 있었다.

'독일에게 배우라'는 훈수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가야 할 말이었다. '강성 노조'가 싫은가? 방법은 간단하다. 노동자에게 발언권을 주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독일의 나치 정부에 저항했던 신학자 마틴 니묄러는 한때 히틀러의 신봉자였다. 이후 그는 생각을 바꾼 뒤 나치와 맞서 싸웠고,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시 한 편을 남겼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체포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감옥에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니까.

그들이 노조원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니까.


이렇게 진행되던 시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항의해 줄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전 기사 보기] 공장 다시 짓는 미국, 내보내기 여념 없는 한국

① 귀족노조 욕하는 당신이 놀랄 일자리의 비밀
② '나사 조이고 억대 연봉, 쳇' 왜 만만한 노동자에게만 분노할까
③ 3인 가족 '연봉 1억' 안 된다면 이걸 따져보자

#강성노조 #귀족노조 #산별노조 #단체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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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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