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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남편 빼앗고 시기·질투... '여고 동창'에 대한 불편한 시선

드라마에서 주로 갈등 관계로 그려진 여고 동창생... 최근엔 '동지'적 관계로 변화

18.07.13 10:29최종업데이트18.07.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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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 JTBC


고교 동창생인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우리 드라마에서는 낯설지 않은 소재다. 예전 어머님들 세대에서 '여고 동창회'는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 뒤 '다이아 반지'도 끼고, '악어 핸드백'도 들 수 있을 때쯤 나가는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들은 그곳에서 '내가 이제 이렇게 좀 살 만하다'며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인정' 받길 원했다.

특히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공산품 찍어내듯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대다수가 동일한 존재로 취급을 받았던 학우들의 후일담은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에서 다시 만난 여고 동창생들의 '서사'는 잊을만 하면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익숙한 소재'이다.

지난 3월 말 화제 속에 종영한 JTBC의 <미스티>는 여고 동창생의 애증을 적나라하게 다룬 드라마였다. 극중 주인공인 고혜란(김남주 분)의 삶에 불현듯 등장한 여고 동창생 서은주(전혜진 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고혜란의 발목을 잡는다. 물론 그건 고혜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서은주에게 고혜란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낚아채는 '연적'이었을 뿐이다. 드라마는 고등학교 시절 하명우(임태경 분)를 사이에 두고 갈등 관계였던 두 사람을 10여 년의 세월을 뒤 다시 한 남자 이재영(고준 분)을 사이에 두고 조우시켜 갈등을 극대화시킨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이었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 '연적'의 관계로 변하는 겨우는 드라마에서 빈번하다. 2007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치명적인 멜로 <내 남자의 여자> 역시 고등학교 동창인 두 여성을 등장시켰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이화영(김희애 분)은 미국에서 이혼을 한 뒤 피폐한 모습으로 고국에 돌아와 동창생인 김지수(배종옥 분)에게 의지하다 그녀의 남편을 유혹하게 된다. 이 서사는 우리 사회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여고 동창생'의 애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 ⓒ SBS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여고 동창생

역시 2007년 방영된 <강남 엄마 따라잡기>는 교육열을 소재로 했다. 아이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한 여고 동창생 현민주(하희라 분), 윤수미(임성민 분), 이미경(정선경 분)은 아이들을 앞에 내세워 치열한 '대리전'을 벌인다. 다시 만난 여고 동창생들은 '과거엔 별볼일 없던, 혹은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친구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보니, 나보다 잘 나가고 있더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시기와 질투를 불러온다.

2012년 방영된 <청담동 앨리스>에서 고등학교 시절 얼굴은 예뻤지만 능력은 없던 서윤주(소이현 분)가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갑질'을 하자, 이에 당하던 한세경(문근영 분)이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시계 토끼(청담동 안내자)'를 잡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이들 드라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만큼 우리 사회 속 '여여 갈등'의 전형으로 여고 동창생의 관계를 '전형화'시키면서 활용했다.

과거 대다수 드라마들에서 여고 동창생들의 관계가 갈등의 기폭제로 쓰인 것과 달리, 2010년대 들어 나온 드라마들의 경우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라 동지'라는 시각으로 진화되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 JTBC


2014년 JTBC를 통해 방영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39살이 된 여고 동창생 세 명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때는 꿈을 나눈 한반 친구였던 소녀들은 이제 이혼한 싱글맘(윤정완- 유진 분)에, 골드 미스의 대표가 되어버린 노처녀(김선미-김유미 분)에,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전업주부(권지현-최정윤 분)로 동시대 30대의 '리얼 라이프'를 구현한다.

시한부 드라마 작가 이소혜(김현주 분)와 톱스타 류해성(주상욱 분)의 달콤 애절한 연애담을 그린 JTBC 2016년작 <판타스틱> 역시 여주인공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다. 그 시절의 첫사랑과 그 시절 그녀의 친구들이었던 여성들이 서른 중반이 되어 다시 만나,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을 되살리면서 '시한부' 삶을 사는 그녀의 손을 잡아준다. 2017년 MBC를 통해 방영된 <20세기 소년소녀> 역시 서른 중반이 된, 하지만 여전히 20세기 소녀와 같은 감성을 지닌 여고 동창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웹툰이 원작인 tvN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며 순항하는 가운데, 또 한편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수목 저녁 시간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웹툰 플랫폼 KTOON에서 호평을 받으며 시즌 3까지 이어지고 있는 <당신의 하우스 헬퍼>가 동명의 드라마로 KBS2를 통해 방영을 시작한 것이다.

<당신의 하우스 헬퍼>가 기대되는 까닭

당신의 하우스 헬퍼 ⓒ KBS2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동명의 원작 속 인물들을 대부분 그대로 살려낸 것과 달리, <당신의 하우스 헬퍼>는 남자 하우스 헬퍼라는 원작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오되, 미니시리즈의 호흡을 살리기 위해 여성 캐릭터들을 '여고 동창생' 관계로 묶어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판타스틱>, <20세기 소년소녀>가 서른 중후반의 여성들을 전면에 세운 것과 달리, <당신의 하우스 헬퍼> 속 여고 동창생들은 이제 스물 중반, 바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살기 힘들다는 88만원 세대다. '온갖 잡다한 일을 시킬 때는 가장 필요한 사람 취급하고,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며 '드라이조차 사치'인 '인턴' 임다영(보나 분)와 반품을 가정하고 친구 결혼식에 명품 옷을 입고 가는 등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현실은 목걸이에 비즈를 꿰며 연명하는 백수 윤상아(고원희 분), 명색이 네일샵 사장이지만 유지비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주는 비용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자영업자 한소미(서은아 분), 세 명이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함께 살자고 약속하던 '몽돌 삼총사'였지만 갑자기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상아의 오해로 세 사람은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후 시간이 흘러, 임다영이 아버지가 남긴 집에 세를 놓게 되면서 여고 동창생 셋은 다시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이후 이 시대 20대 후반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진솔하게 그릴 것으로 보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갈등과 시기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여고 동창생들을 서로 돕고 의지하며 인생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그리는 드라마적, 사회적 변화가 너무 반갑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하우스 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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