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지간 북한과 중국, 어쩌다 혈맹이 되었지?

[서평] 중국 외무 부처 관료 출신 어우양산의 '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

등록 2018.07.04 14:53수정 2018.07.04 14:53
1
원고료로 응원
나온 지 10년이 지난 책을 다시 꺼내봐야 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고전과 같은 동서고금의 명작도 아닌, 최신 트렌드를 바삐 좇아야할 국제정치 영역의 도서인데 말이다. 그것은 남북관계의 진도가 9년 가량 멈춰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따라갈 필요가 없었던 탓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김정은의 신년사와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전쟁 직전에 놓여있던 한반도 문제가 전향적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및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북미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속도를 언론과 학계의 해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국인 특유의 화끈한 벼락치기 정신이 한반도 문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모양일까? 온라인에서는 30년 뒤 수능을 치를 수험생들이 근현대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온다.

중국 공산당 외무부 관리, 동맹국 북한을 저격하다

이 책은 혈맹인줄만 알았던 북한과 중국 양국의 산적한 갈등을 다룬다. 특히 중국이 쉬쉬하고 있던 북한에 관한 불만사항을 기록한 이 책의 저자는 중국 공산당 외무 부처 관료로서, 중국에서 직접 출간하지 못하고 '어우양산'이라는 가명으로 일본으로 우회하여 출판하였다. 또한 이 책은 다시 북중관계 전공자인 박종철 교수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정은이 박사가 진위를 필터링해가며 한국어 번역작업을 진행함으로써,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는 기구한 출생의 비밀이 있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중북관계를 '혈맹관계'라고 믿고 있으나, 이 말이 처음 불거진 조선전쟁 때부터 줄곧 깊은 불신과 경계심이 양국 사이에 놓여 있었다. 김일성은 조선전쟁 말기부터 정전 후까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북조선에서 배제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른바 '연안파 숙청'이다. p.53

저자는 중국의 입장에서 혈맹이면서 짐적인 존재로 전락한 북한 문제에 관한 중국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폭로한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북한으로 인해 입는 피해를 '마약 밀매'와 '위폐제조'로 인한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마약은 아편전쟁으로 나라가 반(半) 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의 역사적 역린이자, 사형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북한은 동맹조약에 숨어, 중국에서 버젓이 마약 밀무역으로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슈퍼노트'라고 불리는 북한의 위폐 달러로 인한 최대 피해국이다. 위폐 문제는 이후 9.19 공동성명 직후 벌어진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중국이 적극 동참하는 BDA사건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북중 양국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게 된다.


특히 양국의 갈등은 북한의 제1차 핵실험으로 그 절정에 달했다. 중국은 핵실험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북한 측으로부터 받았으나, 북한은 그 약속을 저버리고 핵실험 20분 전에 중국에 통고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보이며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이는 중요한 사안은 동맹국과 사전협의를 거쳐야한다는 북·중 동맹조약의 4조를 위반한 것이었다. 이에 중국은 '제멋대로'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며 격정적으로 동맹국 북한을 규탄하였을 뿐만 아니라,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718호에 미국 및 일본과 흥정 없이 조건 없는 찬성표를 던져 대북제재에 앞장섰다.

보수정권 9년의 실책, 원수지간에서 다시 혈맹으로

이 책에 따르면, 북한은 국공내전 당시 위기에 빠진 모택동에게 무상으로 무기를 제공하고 후방기지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붕괴직전에 놓인 북한을 구원한 중국에 빚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대대로 북한의 큰 형님은 소련이었으며, 졸지에 소련의 붕괴로 북한 문제를 떠맡아 경제발전과 대외전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음의 대목은 제 1차 북핵실험 이후 벌어진 중국 고위층 내부의 반북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반도의 남북은 서로 유사한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을 믿는 일은 있어도 중국을 신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근대사에서 중국이 조선에 발을 들여 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갑오전쟁과 조선전쟁은 중국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것을 계기로 발발했다. 갑오전쟁은 중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중국은 타이완을 할양해야만 했고, 수억 냥에 해당하는 백금을 배상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국력이 쇠약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본에 노출된 탓에 정복하기 쉬운 민족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것이 훗날 중일전쟁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 들지 않았지만, 중국이 조선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 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대륙과 타이완의 통일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p.67

특히 92년 한중수교는 북한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중국을 불신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권력을 승계 중이던 김정일은 중국을 '사회주의의 배신자'라 지칭하며 자신의 논문에 아예 못 박아 저격했다. 양국은 아예 8년간 정상회담을 중단하며 관계를 단절했다. 북한이 느낀 배신감은 만약 북한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과 수교를 했을 경우를 상상한다면, 그 정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중 양국의 갈등하는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수 정권 9년 동안 한미 양국은 북한이 곧 붕괴할 거라는 맹신에 빠져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5.24조치 대북 제재에 나섰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는 '셀프제재'만 초래했다. 박근혜 정권은 더욱 심각했다. 통일은 대박이라 말하면서, 급작스레 개성공단을 철수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과 발언을 쏟아냈다.

이러한 보수정권의 분열적 시각은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통해 달러가 북측으로 유입되어 핵실험에 사용된다며 밝힌 개성 공단의 철수 이유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제 2094호에 관한 2013년 6월 이행보고서에서 개성공단의 자금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될 가능성이 없다 보고하였으며, 이후 2016년 6월 보고서에서도 개성공단 달러 유입 관련 보고는 누락하는 등 엇박자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미 양국의 일치된 대북 강경책에 사지로 내몰린 북한은 원수지간에 가까웠던 중국에 의존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무장에는 반대하면서도 체제보장을 원했던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제로부터 북한을 적극 비호하며 대북붕괴를 막았다. 어쩌면 가만히 두었으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을 양국은 근거없는 대북 강경책으로 인해 혈맹으로 회귀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농밀한 중북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북관계를 '같은 팀의 우두머리와 부하'라는 식으로 파악한다. 이는 '중국이 뒤에서 북조선을 조종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조선을 저지할 수 있다'는 명료하고 단순하며,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본인만의 '염원'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국제관계의 술수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그래도 치명상을 피해왔던 것은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 덕분이다. 바다에 고마워할 일이다. p.20

이 책의 일본판 역자가 덧붙인 서문에는 한국의 보수정권 9년과 일본 정부의 시각이 일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9년간 한국은 북중관계를 혈맹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정작 북한과 중국을 혈맹으로 되돌린 것은 보수정권의 실책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중국에 의존하는 그 와중에도 중국 친중파 장성택을 처형하고, 중국이 낙점한 김정남을 암살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꾀하는 김정은 보며 느끼는 것이 없을까? 외교는 감정이 아닌 역사와 객관적 상황판단을 근거로 한 냉정한 것이야 한다. 모처럼 힘겹게 열린 한반도의 봄이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북한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한반도의 봄이 냉전의 유산을 녹여 평화를 꽃 피울 것을 믿습니다.

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

어우양산 지음, 박종철.정은이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 2008


#북한 #중국 #북중동맹 #북핵문제 #한반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