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구' 같다면? 인정욕구를 의심하라

[서평] 선행을 베푸는 인간의 속셈,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등록 2018.07.03 16:38수정 2018.07.03 16:38
0
원고료로 응원
a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책 표지 ⓒ 갈매나무




이 책은 성역을 건드리고 있다. 이 책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더 이상 도덕성·윤리성에 관한 한 순수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존재다. 뇌와 관련한 신경 메커니즘을 연구한 결과 그렇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 의하면 기존의 철학자들이 말한 인간의 이타심에 관한 이론들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과학적인 실험이나 증명 없이 심리학을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으로만 이해하던 자들도 반성해야 한다. 더 이상 '대가없는' 성선설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법 도발적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성에 관하여 논의한 근래의 책들 중에서 단연코 제1순위로 추천하고픈 필독서다.

책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가 말하길, 인간이 이타심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뇌 영역은 '복내측 전전두피질'이다. 이 곳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들을 저장하고 그 저장한 것들을 일종의 직관처럼 필요한 때마다 발휘시킨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저장한 교육물 중에는 "도덕적·윤리적 행위, 즉 이타적 행위는 생존에 유리하다. 친사회적으로 행동하면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얻고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직관'이 있다. 인류가 진화 과정 속에서 터득하고 유전자에 각인한 내용물이다. 그리고 이렇게 뇌 속에 프로그래밍 된 내용물이 현대 인류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하고도 상식적인 얘기이다. 인류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하며 살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부족의 먹을거리를 구하는 데 열심히 참여하고 그 먹을거리들을 구성원들과 기꺼이 나눠 갖는 사람들은 그 부족 안에서 중요하거나 필요한 존재로 대접받았을 테다.

반대로 부족 안에서 노동을 전혀 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일궈놓은 생산물들을 무임승차하듯이 얻어가기만 하려는 사람들은 심할 경우 집단에서 추방될 것이다. 또 남이 도움을 청할 때 그를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은 나중에 도움을 준 사람으로부터 보답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남에게 도움만 받으면서 정작 본인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잠깐은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a

생존능력으로서 이타심 진화의 산물 ⓒ Pixabay


간단히 정리하자면 인간이 남에게 이익을 베푸는 이유는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도 근대나 현대 이후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문자도 없고 언어도 단순했던 역사 시대 이전에, 그저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 몸으로 직접 겪고 뇌에 아로새긴 교훈이다.

뇌는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도움을 줘라. 그렇다면 그로 인해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그 이상의 대가를 누리는 때가 올 것이리라." 조금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뇌 과학과 진화학에 따르면 결코 순수한 선행은 없다. 착한 행동을 하는 까닭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로서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입기 위해서다.

인정욕구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이를 조금 단순화해서 '인정욕구'라고 말한다. 남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이 타인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것이 바로 이타심을 발휘하는 근본 이유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행의지를 인정욕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사람에 따라 이러한 인정욕구가 과한 경우도 있고, 무딘 경우도 있다고 얘기한다. 전자든 후자든 저자가 보기에 둘 다 바람직한 이타심은 아니다. 우선 인정요구가 지나치면 인정중독이 된다. 자신이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얻게 된 원래의 보상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타자로부터 더 큰 인정·존중 나아가 경외심까지 원하는 경우가 인정중독이다.

책에서는 그에 관한 대표 사례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제시한다. 자신이 굴지의 대기업에서 중책을 맡는 사람이므로 국가와 사회에 큰 공헌을 한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남들로부터 비정상적일만큼 과도한 대접을 요구하게 된 케이스이다.

반면 인정욕구가 무뎌지면 '대가없는 선행'을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얻게 된 원래의 보상보다 훨씬 적은 보상을 받음에도, 그를 개의치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흔한 말로 천사나 성인 등으로 불릴 만큼 희생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속칭 '호구'가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입는 손해는 생각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바람대로 이용당하고, 그로 인해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정욕구가 과소한 것도 문제다. 결국 이 책에 따르면 이타성 추구와 인정욕구에는 꼭 중용이 필요하다.

한편 인간은 인정욕구 때문에 공정성·정의·복수를 추구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존감이 상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서다. 따라서 인정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은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 싶어 하고,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폭력도 불사한다.

이렇듯 인정욕구는 인간이 소위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데에도 핵심적으로 기능한다. 물론 이때도 중요한 점은 인정욕구를 충족하여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과하지도 과소하지도 않은, 적정수위를 지키는 일이다. 예를 들어 상대의 인격을 말살할 정도로 사과를 요한다든가, 범죄 수준으로 복수를 행하는 일 등은 지양해야 한다. 혹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상대에게 항의하기를 포기하거나, 무턱대고 자신부터 비하하는 일 등도 지양해야 한다.

a

인정욕구는 본능이다 적정한 수위를 지켜야하는 인정욕구 ⓒ Pixabay


자기중심성과 이타성의 기묘하지만 완벽한 동거

과거의 철학자나 심리학자들 중에서 '이기적 이타주의'의 개념을 강조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20세기 후반쯤 들어서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와 같은 과학 서적들이 '이기적 이타주의' 개념의 단초를 제공했지만, 과거의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여전히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이 과학이 말하는 이기적 DNA와 층위가 다르다며 자위해왔다. 어떻게 인간의 고매한 도덕적 감수성과 자기반성 능력, 그리고 이타심을 학습하는 능력이 한낱 DNA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심리학도 점차 실험과학이 되고 있다. 그리고 연구가 거듭될수록 인간은 이기적인 DNA와 뇌의 작용 때문에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점차 정설로 바뀌는 중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역설적이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하나 알려준다. 대부분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득을 바라고 선행을 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의 평가란 어딘가에 '맹자님이 싫어합니다!'라는 표식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우리는 보다 인간이 얼마나 '현실적'인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중심성과 이타성은 상극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요소라는 점도 깨닫는다. 아직도 학교의 윤리 과목에서는 성선설, 성악설, 백지설 등 인간의 도덕적인 본능에 대해 온갖 학설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제는 이익 추구와 윤리적인 행위가 양립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인식의 지평을 조금은 바꿔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정욕구도 본능이다. 본능은 죄가 아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인정을 받아 심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 역시 죄가 아니다. 비록 그 행동의 껍데기가 이타적인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인정욕구의 적정수위를 지키는 일이다. "이타심에는 속셈이 있다", 그 점이 독자가 배워야 할 메시지이고 향후 인문학계나 교육 일선에서 추가로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
갈매나무, 2017


#이타주의 #진화 #뇌과학 #인정욕구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