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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협박'에도... 디킨슨이 현실에 맞서며 선택한 건

[조곤조곤 23] 영화 <조용한 열정>

18.06.27 10:11최종업데이트18.06.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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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영화 <조용한 열정> 스틸 컷 ⓒ (주)디씨드


글을 쓰는 사람이 쉽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다면 무엇일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둡게 적는 걸 '잘 쓰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물론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에 가득 차있으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단순히 '나쁜 곳', '끔찍한 곳'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정확하게 씀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글이 모호하고 복잡해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그 '모호함'과 '복잡함'이 어떤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흠결이 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납작하지 않다. 나는 명쾌한 구도를 그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이 단순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바라보고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들 때가 있다. 도무지 여지가 없으면 어떡하지. 정말 오래 고민하고 지켜보고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이고 어둡기만 한 말밖에 쓸 것이 안 남으면 어떡하지. 글에 담을 것이 추악함뿐이면 어쩌지. 나는 우리가 인간성의 바닥을 이미 오래 전에 보았기에 앞으로 더 놀랄 일도 없을 것이라 항상 생각한다.

위악을 부리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세상에 대한 기대를 낮추어두어야 어지간한 사건을 보고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된다. 그 일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근래에 벌어진 몇몇 논쟁과 사건들은 내가 그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종교도 없는 주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거잖아요, 사람이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글은 숭고함을 담을 수 있을까

영화 <조용한 열정> 스틸 컷 ⓒ (주)디씨드


나는 그래서 이따금 문학을 쓰는 작가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그들은 글 속에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담아낼까. 그렇다고 작가들이 혼란한 세상을 회피하고 홀로 유유자적 감상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직면한다.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고 언어로 풀어낸다. 앞서 언급한 모호하고 복잡하지만 제대로 적은 글들의 완벽한 예가 바로 위대한 작가들이 쓴 것들이다. 이런 글에는 부차적인 코멘트가 붙을 필요가 없다. 홀로 완벽하다. 또 다시 설명할 여지가 없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막막해지지만 독자로서는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 <조용한 열정>(2015)의 주인공 에밀리 디킨슨도 그런 작품을 썼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이 작품의 도입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복음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마운틴 홀리요크 여성학교에서 1년이 흐르고 학교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주님에게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녀는 크리스천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그저 구원만을 원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가기를 명령한다.

하지만 디킨슨은 홀로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은 채 남는다. 깨닫지도 못한 죄를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그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본인의 영혼을 지키고 있느냐는 목사의 물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겉과 내면의 독실함을 혼동하지 않는 것

말하자면 영화 속 에밀리 디킨슨은 구원과 평온을 얻기 위해 하나님에게 의탁하지 않는다. 대신에 영혼을 지킬 미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행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가 정직함이다. 수잔과의 한밤 중 대화에서 디킨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남들도 속인다, 그리고 그것은 최악의 거짓말이다. 디킨슨은 그런 거짓말을 하느니 자신의 인생이 하찮고 어떤 사랑은 빼앗겼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적으로 엄격한 것이 결코 행복을 대체해주지 못함도 받아들인다.

사실 목사는 그녀가 기도하지 않았을 때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협박했지만 사실 디킨슨에게 세상은 어느 정도 그러했을 것이다. 전쟁이 나 수만에 이르는 사람이 사망하고, 누군가는 세상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제외하고도 우리가 천천히 전진해오길 기다리는 죽음이 있는 때로는 메마르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이 아연한 지옥.

이런 디킨슨에게 절친한 친구인 브라일링은 진실과 경험 없이는 그녀의 모든 맹세가 비겁한 짓이 될 것이라 충고한다. 세상과 등을 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독방에 가둔 사람의 정직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디킨슨이 정신적으로 가장 의지했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그녀는 집 밖은커녕 자신의 방에서도 나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런 디킨슨의 모습은 칩거 혹은 은거에 가깝다.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디킨슨은 그런 자신의 행동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저항이라고 말한다. 남성과 동등해질 수 없기에, 그래서 사랑이든 아니면 어떤 식이든 관계를 맺는다면 억압받을 수밖에 없기에 이 현실에 맞서 그녀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유를 지킨다. 이는 진압되지 않으면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은밀하고도 유일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브라일링의 충고처럼 디킨슨은 겉과 내면의 독실함을 혼동하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이 발산한 조용한 열정

영화 <조용한 열정> 스틸 컷 ⓒ (주)디씨드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추악해졌니."

영화 속에서 디킨슨이 남긴 마지막 대사다. 방안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녀는 문틈으로 세상을 보고 계단 위에서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가 아내가 있음에도 다른 여성과 부정을 저지르고 인생에 걸쳐 지키고자한 고결함을 버리는 것에 분노하고 호통을 쳤다.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인간성에 대한 기준을 낮추지도 않았으며 죽음과 같은 생의 필연적인 비극으로 부터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를 통해 계속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남겼다. 나는 이런 생각에 다다르고 나서야 왜 그녀의 시가 숭고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저항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망가진 세상에 맞추어 자신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꼿꼿하게 서서 버티는 저항 말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에밀리 디킨슨은 조용히 열정을 발산했고 그녀의 시는 고결한 기록으로 남았다. 나는 디킨슨의 글에서 위안을 얻는다. 앞서 내가 했던 걱정처럼, 비록 세상이 아무리 추악하고 끔찍하다 해도 우리의 글까지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함께 추락하길 거부함으로서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그런 자세로 글을 쓸 때에 투쟁은 기록으로 남는다.

싸움이 항상 시끌벅적하며 외부를 향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와 거리가 멀다는 디킨슨의 말에 브라일링은 너는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깝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완벽히 동의한다. 마지막까지 신의 존재와 구원에 회의했지만 디킨슨은 영화 속 어느 누구보다 신실한 사람이었다. 브라일링의 대사처럼 나는 그런 에밀리 디킨슨의 용기가 감히 부럽다.

조용한 열정 에밀리 디킨슨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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