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만든 국민청원... 혐오에 맞서는 특별한 방법

[주장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혐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등록 2018.06.20 14:52수정 2018.06.2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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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

국민 청원에 글이 올라왔다. 한 가지가 아니었다. 새 글로 올라온 글 중 대부분이 같은 주장을 담고 있었다. 언제나 여러 이슈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 국민청원 게시판이기는 하지만, 한 이슈에 대해 수많은 글이 한 번에 올라오는 것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말들로 표현되고 있었지만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글이었다. 바로, 예멘의 난민이 제주도에 난민 신청을 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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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신청 문제에 관한 국민청원 글 ⓒ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 서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6월 13일에 올라왔던 글은 사흘만에 18만명을 돌파했고 기어코 20만 명의 서명을 달성했다. 낙태죄 폐지에 관한 청원도,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에 관한 청원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서명이 증가하지 않았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예멘 난민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제주도 여성은 물론 한국여성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불안하다'라는 글도 올라왔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공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잊혀진 전쟁'

그렇다면 예멘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멘의 내전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릴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예식장에 폭격이 떨어진 날, 어떤 어린이가 죽은 아버지를 붙잡고 오열하는 동영상이 잠깐 언론에 보도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끔찍한 학살의 현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를 세운 북예멘 중심의 시아파와 인민 공화국을 세운 남예멘 중심의 수니파가 통일을 하며 예멘의 내전은 시작되었다. 시아파가 정권을 잡자 수니파는 반군을 조직하여 반격을 시작했다. 내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에는 주변 국가들의 이권과 결합된 이유도 있었다. 아랍에미리트도, 이란도, 사우디아라비아도 이 내전을 지원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아랍에미리트 등에 무기를 팔았다. 한국이 팔아먹은 탄약들은 어쩌면 예멘의 수도에, 거리에, 예식장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콜레라도 예멘을 덮쳤고, 사망한 이들 중의 25%는 어린이였다. 예멘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야했다. 공습을 피한 사람들은 징집이 되는 형편이었고, 징집이 된 후 살아남는다고 해도 반군의 보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서 있는 지형은 어떠한가


예멘의 난민이 이슬람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범죄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이슬람 혐오적인 이야기다. 나흘 만에 1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한 국민 청원의 내용도 인과 관계가 잘못된 말이었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국가가 난민 수용정책을 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 젠더 위계와 강간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개가 넘는 난민 수용 반대 국민청원과 수십만명의 동의는 우리에게 몇 가지를 시사해 준다. 국가는 더 이상 공동체 구성원들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이 우리로 하여금 연대 의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하게 지적해야 한다. 국민청원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공포'가 문제인가, 아니면 제주도로 들어온 난민들이 문제인가. 애초에 사람들은 왜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는가. 난민은 왜 제주도까지 떠밀려오게 되었는가. 공포를 마음속에 품게 된 사람들과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난민들은 우리가 싸워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야하는 대상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은 사회 제도와 난민을 사회 바깥으로 쫓아내는 정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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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한국 사회에서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성범죄와 혐오 범죄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후 '여자라서 죽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말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안전을 위협받는다. 미투운동 이후에도 일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좌절감과 분노가 사회 전체를 휩쓴다. 동일범죄 동일처벌이라는 상식적인 요구들을 외치기 위해 3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시위를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슬퍼했음에도 실질적인 삶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공포로 자리 잡았다.

국가 정책은 이주민을 사회 보호망의 바깥으로 내몰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살기 위해 한국에 온 난민은 여전히 목숨을 담보 받지 못하는 낯선 타자로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은 수많은 나라에 무기를 팔고 있고, 그 무기들은 난민들이 한때 삶의 터전으로 존재했던 공간들에 떨어졌다. 난민은 집에 있어도, 집을 떠나도 보호받지 못했다.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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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있는 문구. 한국은 전쟁'기념'관이 있는 몇 안되는 국가이다. ⓒ 신민주


진짜 문제는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이 현실에 있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들이 이성의 상징이 된 이 사회에서도 남성은 여성을 때리고, 사장은 노동자를 착취한다.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혐오는 지워지지 않았고,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을 경멸한다. 국가 내부에는 난민의 인권도, 여성의 인권도 보호되지 않았다. 소수자들의 삶을 바라본 채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개발한 후 소수자들의 삶을 정책 속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 보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실질적 삶의 평화는 이룩되기 어려웠다. 애초에 모두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난민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인데도 아무도 일자리 자체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난민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 원인인데도 아무도 시스템을 지적하지 않는다. 난민도, 여성도 보호받을 수 없는 까닭은 권력이 단 한 번도 먼저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먼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편을 향하여

우리는 국가가 난민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다만 그 '수용'은 그저 난민이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허가해주는 것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난민의 인권과 조금의 표를 맞바꿔치기하지 않는 정치를 원한다. 난민에 대한 혐오들이 고개를 드는 이 시국에, 우리는 다시 연대를 외친다. 우리가 싸워야할 존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야했던 난민이 아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신음하다 죽어간 사람들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국가가 지켜야할 구성원 속에 우리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보편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할 때다. 끊임없이 혐오를 재생산하고 가진 것이 없는 자들끼리 대립하게 만드는 정치가, 안전을 위한 어떠한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국가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어야 한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연대의식이 이 싸움을 이길 유일한 방법이다.

#예멘 #난민 #혐오 #여성혐오 #무기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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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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