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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노래로 만든 뮤지컬, 신인배우가 연관검색어 오른 까닭

[인터뷰] 쥬크박스+창작 뮤지컬 <미인>, '독립운동가 시인'으로 출연 중인 배우 허혜진

18.07.09 16:44최종업데이트18.07.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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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너와 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 다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해"

'미인', '커피 한 잔', '아름다운 강산' 등 연령대를 초월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노래가 2시간 내내 나오는 뮤지컬이 있다. 오는 22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미인>이다. <미인>은 '록의 대부' 신중현의 음악으로 만든 첫 번째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 정권 찬양이 아닌 저항 정신을 내포한 '아름다운 강산'(우리에겐 가수 이선희가 부른 버전이 특히 유명하다)을 만든 후 다수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는 등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던 신중현과 그의 음악은 뮤지컬 <미인>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30년대와 1970년대, 2018년도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어우러졌다.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정원영, 김지철, 김종구, 이승현, 권용국, 스테파니, 김찬호 등 무대에서 경력을 다져온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가운데 배우 허혜진도 '병연'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뮤지컬 <미인>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조용히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그녀는 동성애, 마약 등 파격적인 소재로 청소년의 사랑과 고민, 삶과 죽음을 그려냈던 <베어 더 뮤지컬>(지난 2월 종연)에서 '아이비'로 데뷔한 신인배우다.

지난 6월 1일 오후,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배우 허혜진을 만났다. 아래는 배우 허혜진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성장하는 배우 되고 싶어... '도장깨기' 정신으로 연기하고 있다"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어. 뭐라고 해야 하죠? 저는 항상 기복 없이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매 작품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 어리지만 나아가는 모습, '이런 모습도 있고 더 깊어졌네' 이렇게 되고 싶은 배우 허혜진입니다. 그런 독기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도장깨기 정신으로 하고 있습니다(웃음)."

- 뮤지컬 <미인>에 출연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지인들에게도 하는 말인데 정말 새로운 도전이에요. 이렇게 춤이 많은 작품도 처음이고, 워낙 언니, 오빠들 경력이 화려해서 수업 듣는 기분이기도 해요. 이래서 이분들이 작품을 계속하는구나 싶어요. 연출님도 그렇고 스테파니 언니도 그렇고요. 신중현 선생님의 곡들은 워낙 유명한 곡이기에 어깨 너머로는 알지만 선생님은 잘 모르고 음악만 알았어요. 작품하며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었구나. 이 곡이 이런 곡이구나' 싶은 것도 많았죠.

그런데 원래 알던 노래의 느낌, 연습 시작하며 받은 느낌, 편곡된 후의 느낌이 다 달라서 정말 신선했어요. 원곡을 들어보시고 작품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음악이 드라마랑 잘 엮여있거든요. 배경이 1930년대라 작품에서 '올드한' 느낌이 나오면 어떡할까 했는데 그런 면이 전혀 없어서 신기했어요."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뮤지컬 <미인>에서 맡은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맡은 역은 '병연'으로, 가수이자 시인이며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번 작품(<베어 더 뮤지컬>의 '아이비')은 솔직했어요. '난 널 원해', '좋아', '슬퍼', '싫어'. 이런 걸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면이 많았는데 '병연'은 모든 걸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그 시대의 여성이 시를 쓰고 활동한다는 게 무척 어렵기에 지금도 고민 중이지만, 계속 고민할 부분인 것 같아요. 많이 참고할 수 있는 걸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나혜석이나 김명순 같은 당대의 신여성들을 찾아보거나 참고하기도 하고, 혹은 그분들과 반대되는 길도 가려고 해요. 그분들은 일본유학을 다녀오고, 언론인에 화가에 인권운동 등을 했던 무척 어려운 길을 간 사람들이잖아요. 지금에서야 멋있다고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보지 않았고 힘든 삶을 보내셨거든요.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는 병연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드라마에 다 표현되진 않아도 그런 선택이 잘 녹아들길 바라죠. 쉽진 않네요. 저번 작품에는 사랑이 거의 전부였다면 이번엔 강호와의 관계도 있지만 거기에 중점을 두지 않았어요. 러브라인보단 좀 더 단단한 캐릭터이길 바라요. 저 스스로가 감정적인 사람이라서 저로부터 출발하되, 저와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여러 번 보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분들에게도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의 어린 시절 듣고 '아이비', '병연' 이해했다"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전작인 <베어 더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얻었던 것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아이비'의 표현방식이 무척 낯설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지?' 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정말 솔직해보여도 숨기는 게 많은 친구예요. 그걸 연습 땐 잘 몰랐어요. 연습 때는 '아이비'를 이해한다기보단 머리로 공부하고 분석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하며 완전 바뀌었죠.

초반에는 노래나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공연 초반이 지나며 생각이 변했어요. 저희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엄마가 사실 어릴 적엔 미술을 전공하고 '온실 속의 화초' 같이 자라셨대요. 제가 아는 엄마의 모습은 '장군'이셨거든요. 사업하시며 남자직원들도 휘어잡는 카리스마 있는 분이었어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나중에 듣고 나서 '아이비'가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그렇게 변하게 된 건 가족 때문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변한 거죠.

'아이비'도 처음엔 부서질 것 같지만 이후엔 단단하게 바뀌어요. 'All Grown Up' 때도 좌절하지만 울지 않고 참으려고 노력했죠. '병연' 또한 같아요. 여성이 보호의 대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지만 그와 다른 좀 더 단단한 여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연'은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하지 않은 캐릭터예요. 목적이 뚜렷하고 필요한 과정을 알기에 '강호'를 오히려 귀엽게 보고 아우를 수 있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조금 더 단단한 인물이 되고 싶어요. 실제의 제가 그렇지 못해서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해요. 역할을 맡으며 더 제 자신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배우가 된 과정이 궁금해요.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나요.
"원래는 예고, 예대를 나왔어요. 그런데 사람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게 다르잖아요. 저도 배우는 잘하는 게 아니라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무대에 오르는 부담감이 있긴 해요. 데뷔할 때도 <베어 더 뮤지컬>이 신인들의 등용문이란 걸 알아서 '이렇게 시작해도 될까? 독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죠. 자신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한 편이거든요.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내가 지금 안 하면 나중에 언제 하겠어' 하고 학교에서 뮤지컬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런 일을 겪으니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도 되나?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아야 겠다고, 내일 죽더라도 아쉽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힘이 제가 지금까지 달리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가 제 앞에서 우시는 걸 못 봤어요. 정말 강한 분이셨거든요. 엄마는 강한 사람이고 전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나 생각의 차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고요. 그 후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오빠랑 저만 있거든요. 오빠가 저한테 늘 '내 나이처럼 살면 안 된다. 가볍게 즐겁게만 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런데 저희 공연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강산'이 독립운동 중에 변사인 '강호'한테 그래요. '두치'가 '넌 인생을 재미로 사냐?' 하는데 '강산'이는 '아냐. 강호는 재밌게 살아'라고 하거든요. 오빠는 좀 반대였죠(웃음). 그래서 모든 일에 한 번 더 생각하려고 해요.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나은 선택이 뭘까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레드북>을 최근에 너무 재밌게 봐서 여러 번 결제해가면서 봤었거든요. '안나'는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 질문이 있는 캐릭터예요. (배경)시대만 다를 뿐인 작품이라서 무척 좋았어요."

-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성 위주, 여성 중심의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중심 서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게 꼭 여성이 아니어도요. 이전과는 다르게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화두가 최근에는 '여성 중심 서사'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이게 시작이 돼서 다양하게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뮤지컬 <미인>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요.
"저희 작품. 제가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어요(웃음). 런(런스루 : 실제 공연처럼 끊지 않고 연습하는 과정을 말한다) 돌기 시작했는데 사실 주크박스+창작 뮤지컬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잘나온 것 같아요. 정말 가볍게 즐길 수도 있고 많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관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도 그렇고요. 전 마지막 신을 갈 때마다 엄청 생각해요. '이후에 어떻게 될까? 어떤 메시지일까?' 하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하고 다양한 상상을 하시며 보는 재미도 작품의 큰 요소가 될 것 같아요."

뮤지컬 <미인>은 완벽한 작품이라기엔 거리가 있다. 신중현의 음악에 덧대진 배우들의 매력적인 노래, 앙상블의 노력으로 메꾸는 무대이지만, 반면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 후반에 맥이 빠지는 이야기 등 창작 초연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점에 기대서 안정적인 완성만을 추구하기보단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역시 창작 뮤지컬의 과제가 아닐까. 허혜진 역시 신인 배우로서 아직 완벽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눈빛에서 '케어가 필요 없는' 병연의 모습이 겹치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인터뷰 중인 배우 허혜진 ⓒ 서정준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뮤지컬 공연 미인 허혜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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