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정부, 왜 혐오는 안 막나

[주장] 선거로 힘 얻은 정부와 여당, '나중'으로 미뤘던 성소수자 의제에 침묵하지 말아야

등록 2018.06.19 21:58수정 2018.06.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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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보좌관 회의 발언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상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던 지난 정권을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일을 이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불가능한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탄핵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졌다. 사상 최악의 부패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정치력은 거의 소멸하다시피 했다.

당연히 이어진 대선도 불 보듯 뻔한 결과를 맞았다. 사실상 견제 세력이 모조리 사라진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다못해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가 과반이 넘지 못한 핸디캡이라도 있었지 행정부 쪽을 살펴보자면 그만한 제약도 없었다. 즉 권한과 권능 내에서라면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볼 수 있던 조건이라는 뜻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일들이 있었고 이 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판할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권과 관련한 부분, 특히나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행보에서다. 가령 얼마 전 논란이 된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초안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이전의 두 정부에서도 들어있던 '성적 소수자의 인권' 항목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또한 지난 3월에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전달된 권고 중 성소수자와 관련된 23가지는 모조리 수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사회적 논란'이 있는 것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사실 인권의 문제를 사회적 논란으로 만든 집단이 어디인지는 이미 지겹도록 지목되어 왔다. 바로 보수 개신교계를 비롯한 혐오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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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습니다' 무릎꿇은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권우성


왜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그런데 정부가 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혐오 세력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나를 생각해보자. 2016년 20대 총선에서 반(反)동성애를 기치로 내건 기독자유당과 기독민주당이 기록한 득표율은 각각 2.63%와 0.54%였다. 두 정당의 표를 합하면 원내진출이 가능한 3%가 넘는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그것이 이들이 한 국가의 정책 방향을 좌우할 만큼의 지지를 모았음을 의미하냐면 답은 부정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막겠다는 등 보수 기독교계의 표를 의식한 발언을 했지만 결과는 압도적인 패배였다. 한 마디로 지금 정국에서 혐오 집단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좌지우지할 정치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정부는 계속해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 앞에서 주춤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손희정의 <페미니즘 리부트>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의 한 장인 '어용 시민의 탄생-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반지성주의'에서 저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반지성주의는 평등에 대한 강력한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권력을 가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큰 대중적 소구력을 가진다. 그래서 반권위주의/반지성주의에 호소하며 상징자본을 쌓은 이들은 집권에 성공했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고 재생산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지금의 정부와 여당, 그리고 지지자들의 이야기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여전히 '소수'로 남는 방식을 택한다. 책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한 팟캐스트 방송에 등장한 정청래 의원의 발언을 인용한다.

"문재인 행정부와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소수 권력이다"

정부와 여당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손희정의 날카로운 분석처럼 '소수'와 '권력'은 나란히 놓일 수 없는 개념이다. 소수란 이미 권력 위계에서 하위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저자의 말처럼 농담에 가까운 모순에 불과하다. 나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라고 생각한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보궐 선거에서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해 이제 의석수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또 시도지사 17명 중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중 151명, 광역의원 737명 중 605명, 기초의원 2541명 중 1393명이 여당 소속이다. 심지어 100석 규모가 넘는 서울특별시의회와 경기도의회의 경우 시의원 당선자 중 야당 소속 의원들을 모두 모아도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한다. 이미 수를 봐도 '소수'가 아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정부와 여당을 제대로 견제할 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 아닐까. 이는 시민사회계와 정부·여당이 대립각을 세울 때면 늘상 등장하는 '어렵게 탄생한 정권의 발목을 잡지 말라'는 말이 터무니없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차선으로라도 지지하여 정부가 가진 힘의 균형추를 맞출 실질적인 대안 세력이 없다. 발목이 잡혀질래야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지금 정권이 '논쟁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옳은 판단을 했다는 이유로 반사 이익을 얻어갈 정당이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안정적인 집권이 끝난, 정부와 여당 지지자들이 말했던 그 '나중에'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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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기습시위 벌인 문재인 회견장 2017년 4월 26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 남소연


정말로 의지는 있는가

때문에 나는 정부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 정책을 미루지 말 것을, 국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과 군형법 92조의6 폐지와 같이 차별과 배제를 막고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조치를 당장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의회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제는 의지가 있는가 뿐이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현 대통령과 여당 지지자들이 "하고 싶은거 다 해"라며 농담처럼 지지 의사를 표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가 확실히 도래했으니 이제 알 수 있는 것은 '정말로 하고는 싶은가'이다. 정부와 여당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막고 인권과 평등을 지켜내고 싶은가. 이제 그 답은 앞으로의 행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성소수자인권 #나중말고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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