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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봤어?" 박정희-전두환 치부 건드린 '그알'의 속내

[인터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기슭 책임프로듀서 "경쟁자들의 복귀, 좋은 자극"

18.06.18 10:07최종업데이트18.06.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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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최근 몇 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는 외롭게 지상파의 신뢰도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그알>의 경쟁자들도 돌아왔다. 돌아온 MBC < PD수첩 >과 KBS <추적 60분>이 남북 화해무드와 미투 운동 등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늘'의 이슈들을 다루며 안정 궤도에 안착했다.

하지만 최근 <그알>이 집중하고 있는 아이템은 과거 이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2001년 육군 상사 염순덕 피살 사건,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사건들이다.

지난 5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난 <그알> 책임 프로듀서 김기슭 SBS 시사교양본부 교양4CP는 "보이지 않는 역할 분담과 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방향의 경쟁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면서 말이다.

경쟁자들의 귀환... "좋은 자극, 반갑다" 

경쟁자들의 귀환. <그알> 김기슭 CP는 "좋은 방향의 경쟁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SBS


"개인적으로 족발 골목에 자주 비유하는데, 족발 골목에서 족발집이 하나둘 퀄리티 떨어지기 시작하면 골목 자체가 소비자들의 외면 받아요. 밖에서는 그냥 경쟁자로 보이겠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역할 분담과 공조가 있거든요. 그래서 진심으로 다른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들의 빠른 회복을 바랐어요. 탐사 프로그램의 역할은 사회를 감시하고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건데, 어느 한 곳이 독점하는 건 옳은 방향이 아니잖아요. 뺏고 뺏기는 개념이 아니에요. 서로 경쟁하면서 자극받고, 함께 높은 수준으로 함께 발전하는 게 좋죠." 

지난 1월, <그알> 팀의 새 사령탑이 된 김기슭 CP는 "<그알>에 쏠렸던 국민적 관심이 분산되는 시기인 만큼, <그알>만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김 CP와 PD들의 답은 "<그알>의 장기인 '미제 사건'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것이었다.

"흔히 '미제 사건' 하면 형사 사건만을 떠올리시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미제 사건이 형사 사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5.18도, 서산개척단도, 현대사를 다룬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역시 여전히 미제로 남은 사건들이죠. 저희는 '미제'를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사건이라고 봤어요. 여전히 드러나야 할 사실이 많은, 현재 진행형의 미제 사건들이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이 다뤄야 할 이슈가 <그알>에 집중됐지만, <그알>의 전통적인 장기는 미제 형사 사건이다. 1992년 첫 방송 주제도 '이형호 어린이 유괴사건'이었던 데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등 초동 수사 미흡이나 강압 수사, 과학 수사 기법 부족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현대 과학 수사 기법으로 해결하며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알>은 팩트를 기반으로 한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특히 미제 살인 사건을 다룰 때 빛을 발했다. 그래서인지, <그알>의 시청률과 화제성은 살인 사건을 다룰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 

"다행히 시청률에 대한 (회사의) 압박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알>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시청자분들 중에 '미제 사건만 해 달라' 표현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알>의 아이덴티티는 '소재'가 아니에요. 우리 사회를 위해, 시청자를 위해, 건강한 호기심과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를 촉구한다는 '형식'이죠. <그알>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그알>이 다루는 다양한 소재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청자들이 이해해주신다면, <그알>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그알>의 27년... <그알>은 진화했다

1992년 3월 31일 첫 방송 이래 27년의 시간이 흘렀고, 현재 진행자인 김상중 MC 체제로도 10년이 지났다. <그알>은 긴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토요일 저녁 시간대를 지켜왔다. ⓒ SBS


최근 <그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고문 사건, 서산개척단 등을 다뤘다. 어떤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주제지만, 또 어떤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다.

"사실 전 5.18 비디오와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세대예요. 그래서 지금 5.18을 이야기하는 것이,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의미 외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젊은 PD들은 제 세대와 5.18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더라고요. 서산개척단 같은 경우에도, 그 안에서 여성 문제를 짚어낸 박지은 PD의 시선에 깜짝 놀랐고요. 여러 번 반복한 주제라도, 다른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렇게 다르구나, 이런 시선에서 바라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보이는구나... 

우리가 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낸 데는, 여전히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1980년 광주의 가해자, 1987년 박종철 열사 사망 사건의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반복된 겁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고문이라는 형태로, 최근에는 블랙리스트나 사찰 등의 형태로, 가면을 바꿔 썼을 뿐, 인권 유린과 헌법 정신 훼손은 계속됐어요.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역사는 반복돼요."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을까, 누가 은폐했을까. 요즘 <그알> PD들이 큰 틀에서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젊은 시청자들의 '<그알>을 통해 지나간 현대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는 반응도 요즘 <그알> 제작진의 비타민이다. 

1992년 3월 31일 첫 방송 이래 27년의 시간이 흘렀고, 현재 진행자인 김상중 MC 체제로도 10년이 지났다. 긴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토요일 저녁 시간대를 지켜온 <그알>은 월드컵 중계로 16일, 23일 결방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상반기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27년 동안 굳건해진 형식인만큼 변화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김 CP는 "<그알>은 계속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방식도 진화해왔고, 전문가 활용법, 재연 방식 등 시청자들과 함께 <그알>도 성장해왔어요. <그알>은 고정 시청자가 많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전의 방식을 그저 답습하기만 한다면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이전에는 사람들이 월요일 아침 '<그알> 봤어?'로 대화를 시작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면, 지금은 SNS나 댓글 반응 등을 살펴요. 그 생동감 있는 피드백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숙제를 찾죠. 시청자 반응은 저희의 자양분인 셈이에요."

배명진 교수, 막내 작가들의 폭로... 신뢰도 타격 입은 <그알> 

<그알>은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큰 사랑과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최근, 그 신뢰도를 지탱하던 두 기둥이 흔들렸다. ⓒ SBS


<그알>은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여러 기둥이 함께 지탱하는 <그알>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싹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두 기둥이 크게 흔들렸다. 그 첫째는 <그알>의 취재에 힘을 실어준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였다. 

배명진 교수(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는 <그알>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성을 분석하며,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혀왔다. 하지만 지난 5월, MBC < PD수첩 >은 배 교수의 분석이 비과학적이며, 방송을 통해 얻은 지명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논문 장사 등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여기에는 배 교수가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에 혼선을 빚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다행히 <그알>에는 배 교수의 잘못된 분석이 그대로 전달된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배 교수의 발언을 중요하게 전달해온 <그알>의 신뢰도 역시 타격이 불가피했다.

"언제부턴가 법 영상 분석이나 음성 분석을 수사에 활용하는 일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몇몇 분들의 의견을 의존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배명진 교수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숨겨진 총성을 발견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요. 

하지만 이번 배명진 교수 건을 통해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이미 신뢰를 얻은 전문가를 섭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함께하면서 신뢰를 검증해가기도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알>은 전문가의 의견이 모든 답을 제시한다고 보지도 않고, 그래서 어느 한 전문가의 의견을 절대적인 근거로 사용하지 않아요.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크로스 체크합니다. 

하지만 <그알>에 얼굴을 비췄다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신뢰도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겠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사랑을 받는 만큼 제작진도 더 큰 책임감을 갖겠습니다."   

또 하나는 <그알>을 '방송일 하면서 만난 최악의 프로그램'이라며 <그알> 안의 부조리를 폭로한 전 <그알> 작가의 글이었다. 지난 1월 '인니'라는 필명의 글쓴이는 <그알> 작가들의 일상적인 초과노동과 수면 부족, PD들의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막내 작가들의 일상을 폭로했다. 이에 대한 제작 책임자의 의견을 묻자, 김기슭 CP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보다 <그알>은 더 빨리 진보되었어야 했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우선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실 확인 등의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건, 그 과정에서 글쓴이가 누구인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어요. 작가분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거든요. 문제제기 해주신 작가분이나, 지금 <그알>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들을 위해서는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 대응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CP는 작가들의 근무 조건에 대해 "개선 중"이라고 했다.

"임금 인상, 휴식시간 보장, 근무여건 개선... 사실 (문제 제기되기 전인) 지난해부터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지금도 개선 중입니다. <그알> 뿐 아니라 방송 업계 특성상 막판에 일이 몰리는 것도 맞고, 방송 앞두고 밤샘 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맞아요. 어느 정도는 다들 암묵적으로 견디며 넘어간 부분이 있었죠.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 작가들의 근무 환경과 비교해 낫다, 안 낫다 이런 식의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 기준을 보편적인 기준에 두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 두고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알>은 SBS 시사교양의 뿌리이자 줄기

김 CP는 "SBS PD들에게 <그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 SBS


SBS 시사교양 PD라면 누구나 <그알>을 거치고, 한 번 가면 2~3년은 머문다. 여기에 고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까지. SBS 시사교양국 안에서 <그알>이 '군대'로 통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알>은 SBS 시사교양의 뿌리이자 줄기. 농담 삼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들 해도, 방송 이후 조금씩 변하는 세상을 보는 쾌감은 말로 다 못할 정도다.

"<그알>은 어떤 사건을 단지 이슈화시키는데 머물지 않고,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그래서 <그알>을 떠난 PD들도 <그알>에서 취재한 아이템에 새로운 상황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알> 팀에 알려줘요. 약 4차례 다뤘던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도 그런 케이스였고요. 이건 SBS 시사교양국의 오래된 전통입니다." 

김 CP 본인 역시 <그알>을 거쳐간 PD였다. 11년 만에 <그알>에 돌아왔지만, 다른 SBS 시사교양국 PD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았다고. 김 CP는 "SBS PD들에게 <그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며 웃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아이템이 '마음을 움직이는 시간, 0.3초의 기적'이라고, 우리 사회의 평범한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사실 <그알>이 주로 다루는 사회 고발이나 사건 추적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졸업 작품이라 마음대로 해볼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편이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상도 많이 받았고. (웃음) 

PD들과 이야기할 때,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요. PD들이 어떤 아이템을 가져오든 전혀 터치하지 않기도 하고요. 다만 하나, '왜 지금' 이 아이템을 다뤄야 하는지는 물어봐요.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있다면, 앞으로 <그알>은 어떤 이슈든 다룰 생각입니다. 어떤 영역이든, <그알>은 상식적이고 건강한 질문을 던질 겁니다. 시청자분들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기슭 CP 인터뷰 제공 사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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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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