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떨어지고 1000만원 빚 남았습니다, 그래도...

[성공한 실패자②] 금천구 구의원에 출마했던 곽승희씨

등록 2018.06.18 16:36수정 2018.06.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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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곽승희(31)씨. ⓒ 이주연


'1, 2, 3.'

유권자를 앞에 두고 그는 3초를 기다린다. 상대가 자신을 먼저 쳐다볼 때까지. 카페 의자에 앉은 이를 향해 몸을 숙여 자연스레 눈을 마주치자 그제야 입을 뗐다.

"독서하시는 데 죄송합니다. 저는 <월간 퇴사>라는 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요즘 청년 세대에 퇴사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책을 만들 듯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시흥 1·4동 유일한 청년 구의원 후보입니다. 6.13에는 6번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안은 엄마에게는 "미래세대를 위해 젊은 후보가 필요하지 않겠냐"라고, 여성에게는 "유일한 여성 후보"임을 피력했다. 카페 한 곳을 돌며 인사를 하는 데 20분이 걸렸다. 거기서 만난 유권자는 20명 남짓. 그렇게 일대일 유세를 했다.

서울 금천구 다선거구(시흥 1·4동) 무소속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곽승희(31)씨의 선거 전략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곽씨는 2246표를 얻었다. 다섯 후보 중 5등. 그는 구의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2246, 평생 각인될 숫자죠. 참 많은 분들이 지지한다고 얘기하셨어요. 노인분도 있었고, 젊은 대학생분들, 성소수자도 있었고요.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골고루 지지받았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당이 충족해주지 못한 시민의 욕구를 대신할만한 정치가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맨몸으로 100일 여의 선거운동 여정을 끝낸 곽씨를 지난 14일 만났다. 


"음소거 선거운동이요? 모든 정치인에 엿 먹인 거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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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2일, 곽승희 후보가 아버지와 함께 '음소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곽승희 제공


곽씨의 선거운동은 유독 뭐가 없었다. 하루종일 떠들어대는 선거 트럭도 없고 스팸처럼 날리는 대량 발송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심지어 '음소거' 선거운동으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유세도 펼쳤다.

"동네 정치에는 그게 필요 없지 않을까요. 마지막날에 한 음소거 선거운동은 모든 정치인을 향해 엿 먹이는 거였어요. 원래 선거 트럭 쫓아다니려고 했거든요. 근데 선거차량이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요. 모든 후보들이 트럭 돌리면서 시끄럽게 외치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시민들은 다 괴로워 하거든요. 더 듣기 위해서는 더 조용히 해야죠."

기존 정당에 속한 선거 캠프에서 시도하지 못할 방식을 하나씩 실현했다.

"이 세상 살려면 더러운 것도 보고 배워야 해, 다들 그러잖아요. 우리는 그러지 않았고 그래도 된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쾌감이 있더라고요."

돈도 없었다. 수많은 선거용품들을 '다이*'에서 구매했다. 선거 공보물도 4페이지 짜리로 만족해야 했다. 그랬음에도 모아뒀던 퇴직금 500만 원이 '순삭'됐다. 거기에 1000만 원 안 되는 돈을 펀드로 모아 선거자금으로 썼다. 10% 이상 득표받지 못해, 선거비용은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한다.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정치 낭인에게 후원해주세요~ 해야 할까요. 하하. 사무장님이랑 '여자 후보에 여자 사무장'의 경험을 글로 써서 팔아보면 어떨까 했는데 '누가 살까요' 이러고 있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퇴사하고 그 이후부터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뭘 해야 한다'를 놔버리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굉장히 잘 살았거든요. 어떻게든 될 거예요."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젊은, 여성, 무소속'이라는 마이너함은 때로는 무례함으로 다가왔다.

"예쁘다고 먼저 말 거시는 분들, 저를 완전히 대상화 하는 거죠. 불쾌하기도 했어요. 얼평(외모평가)하시는 분들도 숱하게 만났고요."

'인중 털이 거슬린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곽씨의 선택은 의외로 면도였다.

"제가 겨털쌀롱(여성의 몸을 새롭게 보는 명상 행사)도 한 여자인데, 이 문제는 또 다르더라고요. 제가 들이밀고 말을 하는데, 낯선 사람에게 불쾌할만한 요소가 있다면 배제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이 선거 유세에 불쾌하지 않게 하자 고민했던 것의 연장선이죠. 출근길에 '시바견' 사진 붙이고 유세하고 공룡탈 쓴 것도 다 그 일환이에요."

그는 길거리 유세에서 명함도 쉽게 건네지 않았다. 꼭 "제가 명함 한 장 드려도 될까요?"라며 상대의 동의를 구한 후 내밀었다. 곽씨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명함 줘야 한다는데, '내가 주니 너는 받아라, 내가 말하니 너는 들어라'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명함 하나 함부로 건네지 않는 것이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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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탈을 쓰고 선거운동 중인 곽승희씨. 억지로 명함을 떠넘기는 선거가 아니라 모두가 즐겁고 눈을 마주치는 선거운동을 꿈꾼다. ⓒ 곽승희 제공


많은 게 없었던 캠프에 사람이 남았다. 그의 선거를 보름 이상 발 벗고 나서 도운 사무장은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 치우고 캠프에 합류했다. 선거사무원들은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요' 하면 뚝딱 만들어 내는 '금손' 보유자였다. 공약 정리에 공보물 제작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순간들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 빚'도 큰 문제 될 게 없었다.

"사무장님이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왕따 당했는데, 이번엔 직접 참여해서 즐겁게 선거했고 평소 생각했던 걸 여길 통해서 이뤘으니 행복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치는 참견이 제 맛이다' 슬로건 만들어 주신 분도 '정당 안에서 재미나게 해보고 싶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내가 이루고 싶은 바를 여기서 이룬 거니 너무 고마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조금만 고마워하려고요. 하하."

처음에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준다"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점차 "인복으로 치부하기엔 그 단계를 넘어섰다"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제가 받았던 호의나 행운이, 새정치를 바라는 흐름의 앞에 제가 서 있었기 때문에 받은 거라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을 꽃피울 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저거 하면 재미있겠다!, 해서 저를 도와주신 거라고요."

이 같은 생각은 '정치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만의 답에도 닿았다.

"정치인은 개인이 이루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 의사에 따라 좋은 선택을 하게끔 판을 만들어주는 거죠. 타인의 꿈이나 바람을 이룰 수 있게 돕는 조력자요."

그랬기에, 곽씨는 '금천 마을 캠퍼스'를 공약으로 세웠다. 금천구 유휴공간을 동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그곳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거나 동네 주민이 가르치고 동네 주민이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돕고 싶었다.

'금천인맥지도'도 만들고자 했다. 카페 하다 망한 시흥 1동 사는 가정주부가 카페를 차리려는 시흥 4동 청년에게 조언해 줄 수 있도록, 노인분들이 인생의 경험을 아랫세대와 나눌 수 있도록 '인맥지도'로 서로를 연결해 주고자 했다.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 곽씨는 4년 뒤를 보고 있다. 뜻밖에도 본인의 재도전이 결론이 아니다.

"4년 후에 다른 청년 후보를 내는 게 꿈이에요. 더 많은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잖아요. 정치는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하니, 굳이 제가 그걸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이번 선거를 한 번 치러보면서, 정치인을 평가할 눈이 생겼는데요. 그 사람 주변에 누가 있나를 보는 거예요. 어떤 꿈을 가진 사람이 옆에 있어서 후보의 그릇을 넓혀주나 평가하는 거죠. 정치인은 샐러드볼 같아요. 많은 사람들의 꿈을 모으는, 거기에 많이 목소리가 담길 뿐이죠. 4년 후에, 그런 후보를 뽑아주세요."
#곽승희 #무소속 #금천구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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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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