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나무를 그리다

김은숙 <숲 · 숨 · 쉼>전, 오는 17일까지 홍대 입구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에서

등록 2018.06.15 14:53수정 2018.06.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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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 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어떤 것일까? 이 두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에서 오는 17일까지 전시하는 김은숙 작가의 <숲 · 숨 · 쉼>전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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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김은숙 작가의 개인전 <숲 숨 쉼>이 오는 17일까지 홍대입구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 <우>전시장 풍경 모습. ⓒ 김미진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를 들어서면 숲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숲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듯한 나무와 겨울을 맞아 눈을 덮어 쓰고 있는 나무, 비를 맞고 있는 나무, 엄마의 자궁처럼 품어주는 나무, 햇살에게 길을 내어주는 나무 등등.

김은숙 작가의 <숲 · 숨 · 쉼>전에서 만난 나무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가장 아름다운 나무들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참사를 기록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에요. 이 그림에는 그 날 참사를 당하신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304그루의 나무를 그렸어요. 보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지만 나무 위에 나무를 그리고, 나무 위에 나무를 그려 304그루의 나무가 마지막에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이게 됐죠. 옆의 사진이 이 나무를 그린 작업과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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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304). 김은숙. 150x120cm. 천에 아크릴. 2017. ⓒ 김미진


전시장 한 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와 그 옆에 전시된 작업과정이 담긴 사진에 대해 묻자 김은숙 작가가 대답을 한다. 발길이 멈추어져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먹먹하다. 그 날. 어제와도 하나도 다르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 그 날. 우리는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웃음을 웃는 것도 무슨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고, 아직 가슴 한편에 커다란 가시가 꽂혀 살갗 밑으로 눈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 작가님은 나무를 참 좋아하시는가 봐요. 왜 하필이면 나무를 택하셨어요?
"나무는 그냥 그 자리에 있잖아요. 어제도, 그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내일도 모레도 그 자리에 있을 거니까. 십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던 나무들을 만나면 고개가 절로 숙여져요. 아무런 말도 하지는 않지만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이리저리 살다가 죽는 것도 보고, 세상이 변하는 것도 보고. 온갖 것들, 볼 것, 못 볼 것 다 보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볼 때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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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김은숙. 53x7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8 ⓒ 김미진


김은숙 작가가 나무에 대해 "묵묵히"라는 단어를 써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지켜본 기자에게는 김은숙 작가야 말로 "묵묵히"라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미술인협회(회장 이종헌 · 아래 민미협) 회원이기도 한 김은숙 작가는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올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는 날까지 민미협 페이스북 '촛불혁명 1주년 기념 ON LINE 전시회'를 통해 회원들의 그림을 매일 한 점씩 소개했다.


그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로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끊임없이 그리고 묵묵히 소통을 하고자 하고 있다.

"4.16 어머니들과 여러분들이 다녀가셨어요. 도시락 싸와서 같이 밥도 나눠 먹고,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같이 시간 보내었죠. 무엇보다 오신 분들이 저를 꼭 껴안아 주셨는데…, 그렇게 저에게 되려 힘을 나눠 주셨어요. 큰 슬픔을 겪으면서 되려 단단해지셨어요.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건가 봐요. 진짜 사랑은 슬픔이나 역경, 고난을 만나면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울었어요. 우는 것 말고는 뭘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어머니들이 더 주변 사람들을 챙기셔요. 단단해지시고, 용감해지시고, 또 훨씬 너그러워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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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자화상). 김은숙. 165x210m. 천에 아크릴. 2017 ⓒ 김미진


너그러워 진다는 것. 너그러워 진다는 것은 내면에 힘이 생길 때만 가능하다. 세월호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그냥 "난쟁이"였다. 작은 행복과 작은 꿈으로 작은 공을 쏘아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살아도 충분했을 그들이 바뀌었다. 큰 슬픔을 겪었고, 큰 슬픔을 아직 가슴에 안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의 슬픔을 어루 만질 줄 아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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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김은숙. 165x120cm. 천에 아크릴. 2016 ⓒ 김미진


김은숙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 김은숙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힘이 있다. 그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그저 허공 중에 흩어지는 구호같은 "사랑"이 아니라 위안부로 끌려 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그림을 그렸고, 4.16 가족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그림을 그렸다. 마음을 쏟은 딱 그것 만큼,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숨을 쉬고 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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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숨 쉼. 김은숙. 165x210cm. 천에 아크릴. 2018. ⓒ 김미진


살다가 어느 날 사는 게 이게 아니다 싶으면 물 한 병만 챙겨서 숲으로 가보기를 권한다. 숲길을 걸으면 바람이 몸을 쓰다듬는다. 바람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다 잊고 다시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나무 아래 앉아보면 더욱 좋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이 길을 내어서 손등을 간질일 때 "숨"을 크게 쉬어 보기를 권한다. 그 때부터 "숲"에서의 "쉼"이 시작 된다. 이번 주말은 김은숙 작가의 <숲 · 숨 · 쉼>전에서 그렇게 해보라고 권한다.
#숲 숨 쉼 #김은숙 #무국적 #세월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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