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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아버지 고발한 아이, 판사는 왜 안 들어줬을까

[리뷰] 모두가 극찬한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8.06.05 22:10최종업데이트18.06.0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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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스터 ⓒ 판씨네마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함께 산다고 가족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었다고 모두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친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부르는 어떤 아이가 있다. 자신의 운명을 판단할 판사에게 서툴지만 진솔한 아이의 문법으로 호소한다. '그 사람'과 살기 싫고 엄마에게 '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판사는 모든 걸 고려하고 제출한 서류를 검토한 후 변호사에게 알리겠다고 한다. 그 결과는?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사회를 다녀왔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지만, 한국 뉴스에서도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 몰입하기 쉬웠다.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보며 프랑스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던지는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법과 공권력, 그 위치와 온도는?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 컷 ⓒ 판씨네마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줄리앙(토마 지오리아 분)'의 운명을 결정하는 판사가 나온다. 노련해 보이는 그녀는 부모 양측의 의견과 양육을 당하는 당사자인 줄리앙의 편지를 냉정하게 청취한다. 판사라는 직업이 양측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제공한 자료를 깊게 검토한 후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가미하여 판단하는 직업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미 아이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끔찍함과 오죽하면 자기 아비에게 '그 사람'이라 칭하겠냐며 감정이입을 하지만 판사의 생각은 다르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 판사의 생각이 아니라 법이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법이 가진 경계가 확실하다는 걸 보여준다. 법은 아주 가깝거나 아주 멀다. 그 중간 지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측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양측 모두 보호받지 못한다고, 자기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결정된 지점과 내 감정의 여백이 클 수밖에 없다.

줄리앙 모자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피해서 살지만, 어느 늦은 밤 그가 침입한다. 총 들고 문 두드리는 모습을 본 이웃은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정확한 주소와 이름 철자를 받아 신고 접수를 하는 전화기 너머의 경찰은 너무나 침착하다. 뒤늦게 신고를 한 줄리앙 엄마의 전화에도 이미 접수되었다며 차분하게 대답한다. 냉철함일까 아니면 매뉴얼에 따른 대응일까?

그런 냉철함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겠지만 뜨거운 현장에서 보여주는 차가움이 공권력의 거리를 느끼게 해준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 경찰관이 무심하게 응대하고, 문밖의 여자 경찰관은 담담하게 말한다. 현장의 피해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원했을까? 전화기와 문이라는 설정이 그 어떤 벽, 공권력과 시민의 거리를 잘 표현했다.

법과 공권력을 포함한 법치 국가의 모든 시스템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민보다 우선순위로 자리 잡은 형식(routine)과 절차(process)를 꼬집는 감독의 목소리로 들렸다. 사람의 체온과 목소리가 배제된 아쉬움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을까?

왜곡된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

줄리앙의 아버지는 강해 보인다. 덩치가 크기도 하지만 작은 아이와 상대적으로 왜소한 엄마의 체격과 대비된 모습이 상징적이다. 언어뿐 아니라 행동도 거칠어 보이는 줄리앙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와 자격 즉 한 여인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양육비를 주고 지켜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줄리앙을 사냥에 데리고 가겠다는 언급이 이 사내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힘으로 다른 생명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은유다. 트렁크에 보관한 사냥총도 그의 강한 남성성을 은유한다. 이 사내의 아버지, 줄리앙의 친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의 캐릭터다. 손자에겐 친절하지만, 그 가정엔 아내, 엄마,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무시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싸우고, 할머니는 둘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설정과 상황에서 잘못된 남성상과 왜곡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비판한다. 영화지만 이런 아버지의 가정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아버지들이 가족에게 벌인 범죄의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고 있지 않은가?

현장 음향과 롱테이크, 캐릭터의 극대화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 컷 ⓒ 판씨네마


줄리앙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남성성과 그 폭력성은 자동차 안에서 극대화된다. 디젤 엔진 소리와 거칠게 바꾸는 수동 변속기어 소리가 그것이다. 차가 거칠게 출발하고 기어 바꿀 때마다 덜컥거리는 소음과 움직임이 그의 거침과 폭력성을 은유한다. 그 옆에 탄 줄리앙의 불안은 안전벨트 경고음, 점차 커지는 소리로 표현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배경 음향이 귀를 사로잡는다.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현관 벨 소리, 밤늦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소리, 새벽에 문 두드리는 소리 등 귀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많았다. 또한, 롱테이크로 긴박한 상황과 인물의 긴장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줄리앙이 아버지에게 쫓기는 장면은 마치 사냥 장면을 보듯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사냥이 취미이기도 한 아버지는 아이를 노련하게 쫓았고 유인한다. 그 롱테이크에서 들리는 줄리앙의 숨소리와 아버지의 발소리는 보는 사람까지 긴장하게 했다. 줄리앙의 공포와 아버지의 폭력성을 한 장면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엄격한 아버지'와 보수 정치인

미국의 대표적 정치 성향인 '보수'와 '진보'를 다룬 책들의 리뷰를 쓴 적 있다. 얼마 전 JTBC 손석희 앵커도 뉴스에서 언급한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들이다. 그는 보수와 진보를 가정(家庭)으로 비유했다. 보수를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으로, 진보를 '자상한 부모의 가정'으로.(관련기사: 보수의 프레임에 말리지 않으려면, 이 책 어때?)

영화를 보며 이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 비유가 계속 떠 올랐다. '아버지'만 언급한 것을 보듯이 이 집의 중심은 아버지다. 밖에 나가서 일해 가족을 부양한다. 이 남자의 부인이기도 하고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여인은 집에서 가족을 챙긴다.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산다. '보수' 정치가 지향하는 가치를 그렇게 비유했다. 강한 가부장이 보호하는 가정. 물론 여기에서 지면을 할애해 자세히 묘사할 수 없지만, 정치 성향을 잘 표현한 비유라며 미국과 한국 정치판에선 저자인 '레이코프'의 연구를 인용한다.

엄격한 아버지의 긍정적인 역할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은 왜곡된 모습, 잘못된 모습 그 자체다. 특히 "나는 변했어!"라고 오열하며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올 때는 정치인 같기도 했다. 자신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방의 감정은 상관치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펴는 모습이었다. 줄리앙의 아버지도 그런 모습에 실망한 할아버지에게 쫓겨난다. 물론 할머니는 그 결정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지만.

프랑스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우리 옆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들렸다. 감독이 고민한 사회 현상을 탄탄한 이야기로 녹여낸 영화다. 프랑스 영화는 어렵다지만 몰입하며 보게 만든 영화다. 그런데 뭐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까? 주인공들은 "이제 끝났어. 끝났어"라며 계속 되뇌지만.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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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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