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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고소' 김기덕 감독이 모르는 중요한 한 가지

[하성태의 사이드뷰] 방송 3개월 만에 < PD수첩 > 등 명예훼손으로 고소... 왜?

18.06.05 17:48최종업데이트18.06.0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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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영화제서 기자회견 준비하는 김기덕 감독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이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저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이 있다면 죄송할 따름이다. 피해자의 진심이 느껴지면 피해자의 입장을 그냥 전해 달라. 제가 잘못 살아온 부분이 있으니 반성하고, 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

김기덕 감독이 지난 3월 방송된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편 방영 전 < PD수첩 > 제작진에게 보냈다는 문자 내용이다.

약 3개월 만이다. < PD수첩 > 보도 이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기덕 감독이 입장을 표명한 것이. 지난 3일 김기덕 감독이 < PD수첩 > 제작진과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편에 출연해 김 감독에게 성폭행 등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배우들을 무고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와 관련, 4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과 전화 인터뷰를 한 < PD수첩 > 조성현 PD는 "취재 과정에서 대리인을 통해 반론권을 충분히 줬다. 그때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며 당시 김 감독과 오고갔던 문자 내용을 위와 같이 소개했다.

조 PD는 또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자를 하나 보냈는데, 그것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방송에 내보낼 정도로 김기덕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하지 않다가 법정대응만 하겠다고 하니 그 부분은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언론보도를 통해 고소 사실을 알게 됐다"는 조 PD는 "아직 정식으로 접수를 받은 것은 없다"면서도 "취득한 내용을 다 증거로 남기고 있고, 소송이 (시작된 이상) 철저히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과연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불과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김기덕 감독은 왜 무고와 명예훼손 등 맞대응에 나섰을까. 

김 감독이 < PD수첩 > 제작진에게 보낸 문자

4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한 장면. ⓒ MBC


"미투 운동 시작하고 나서 이윤택씨 취재를 시작했는데, 여러 채널을 통해 김기덕에 대한 제보가 더 많이 들어왔다.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피해사실의 유사성에 한 번 놀랐고, 진술의 구체성이나 정확도를 봤을 때 심각한 범죄가 있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취재를 했다."

조 PD가 <섹션TV 연예통신>과의 통화에서 밝힌 김 감독을 취재한 이유다. 당시 < PD수첩 >은 김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당사자들 세 명과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참여했던 전 스태프들 다수, 영화계 인사들을 취재했다.

피해 당사자들이 당한 경험과 고백은 고통스럽고 충격적이었다. 그에 비해 스태프들과 영화계 인사들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현장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증언했다. 역시나 '미투' 폭로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 조재현에 대한 내용도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방송 당시 김기덕 감독이 < PD수첩 > 제작진에게 보냈던 문자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먼저 직접 인터뷰를 못해 죄송합니다. 극단적인 생각만 들고 너무 힘들어서요. 그럼에도 드리고 싶은 말은 미투운동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또 사실 확인 없이 공개되어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그 후에는 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 내용은 자세히 모르지만 어떤 내용이든 지금 제가 드리는 세 가지 기준으로 해석해 주시면 어떨까요.

첫 번째, 저는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습니다.

두 번째,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습니다. 이 점은 깊이 반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은 없습니다.

세 번째,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하에 육체적인 교감을 나눈 적은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합니다.'

< PD수첩 >의 진행자인 한학수 PD는 당시 김기덕 감독의 문자를 이렇게 해석했다.

"여성의 동의 없이 성폭행을 한 적은 없었다. 즉,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은 문자에서 동의 없는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즉,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3월 < PD수첩 >이 만난 피해자들은 아주 직접적으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조 PD가 "피해사실의 유사성에 한 번 놀랐고, 진술의 구체성이나 정확도"를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김 감독은 이제 법정에서 '진실'을 다투자고 소송을 건 상태다. 3개월여의 침묵 끝에 그가 낸 목소리는 바로 '법' 앞에서의 호소였다. 앞서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던 김 감독이 이제는 무고와 명예훼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인권 눈감아 주는 관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3월 방송된 MBC < PD수첩 >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편 방송 장면 ⓒ MBC


공교롭게도, 김기덕 감독의 이러한 맞대응은 검찰이 '2차 피해' 근절을 위해 성폭력수사매뉴얼을 담당 기관에 배포한 직후 기사화됐다. 앞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대검찰청이 성폭력 피해 고소 사건 수사 중 가해 피의자가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하더라도 성폭력 사건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무고 사건 수사는 착수하지 말라는 개정 내용이 담긴 매뉴얼을 전국 59개 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은 또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된 사건의 경우 공익성을 고려해 명예훼손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위법성 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적용하라는 지시도 전달했다고 한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 사건 관련, 가해자로 지목받은 피의자가 피해 사실을 밝힌 상대를 무고로 고소해 오히려 피해자가 위축되는 '2차 피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됐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분명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해당 사항이 위와 조금 다를 순 있다. 여배우 A씨가 성폭력 등으로 김 감독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 지난해 12월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배우 등을 상대로 한 김 감독의 무고죄 고소를 합리화하기는 어렵다.  

앞서 < PD수첩 >에 보낸 문자에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합니다"라고 밝혔던 김 감독. 본인을 향한 폭로를 두고 "극단적인 생각만 들고 너무 힘들어서요"라고 했던 영화감독 김기덕에게 피해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지난 3월 < PD수첩 > 방송은 업계 내부에서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실제 피해자들을 출연시켜 공론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게 중평이다. 반론이 있었다면 김 감독이 당시 < PD수첩 >의 취재와 인터뷰 요청에 응해야 했던 것이 맞다.

불행하게도, 김 감독은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예술 운운으로 폭력을, 반인권을 눈감아 주는 관객은, 대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김기덕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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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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