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실 즈음 피는 이 꽃,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포토 에세이] 자연의 품에 안겨 천천히 걷다 만난 것들

등록 2018.05.25 12:22수정 2018.05.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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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꽃창포&달팽이 노랑꽃창포를 찾은 달팽이가 내려갈 길을 찾고 있다. ⓒ 김민수


하루하루 허투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느 곳에서든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힘썼다.


40대 초반에 깨달았던 삶의 지혜, '작고, 느리고, 못생기고, 낮고, 단순한 것'은 지금껏 내 삶의 화두요, 아마 이 땅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내 삶의 기본을 지탱하는 삶의 철학이 될 것이다.

욕심이 있다면, 그것을 좀 더 깊이 체험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여, 삶의 본질을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사진과 글로 어우러진 안내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안내서는 이론서이기보다는 '이런 삶도 있고,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에세이집이거나 명상집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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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리 조금 늦은 봄과 조석으로 쌀쌀한 날씨에 아직도 꽃마리가 한창인 강원도 갑천. ⓒ 김민수


참으로 오랜만에 작정하고(?) 꽃사진을 담았다.

한때 야생화에 거의 미쳐있을 때를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몰입했다. 생각해 보니 거의 10년은 된 듯하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종이 아니면 담기도 귀찮았고, 이미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주제도 다른 쪽이었기에 카메라 세팅도 야생화를 담는 용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씩은 놓쳐버리고 흘려버릴 수밖에 없는 찰나의 순간에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익숙해졌고, 마음이 멀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사진도 잘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 출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야생화 탐방을 위한 재출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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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별꽃 꽃잎 한 장 한 장이 심장의 모양을 닮았고, 그 심장들은 모여 땅의 별처럼 빛난다. ⓒ 김민수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전의 사진과는 다르게, 나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렌즈와 카메라도 세팅을 하되, 야생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면을 편안하게 담을 수 있는 쪽을 택했다.

오래 걸으려면 가벼워야 한다. 이 욕심 저 욕심 버리지 못하고 살다보니 카메라 배낭이 늘 무거웠고, 막상 현장에서는 배낭에 없는 렌즈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그것마저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며칠 전, 헌옷을 산다는 가게에 1kg당 300원씩 받고 옷장에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옷들을 판 것이 계기가 됐다. 아까웠으나 내게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1만5000원밖에 받지 못했지만, 버림(?)으로 옷장은 한결 소박해졌다. 빈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은 '비움'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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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양지 물양지 노랑 꽃이 끝물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슬프기보다는 대견스럽다. ⓒ 김민수


머지않아 나도 이 세상과 이별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시간은 청년의 시간과 중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더 가까이 왔으므로, 훌훌 가볍게 떠나려면 지금부터는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점점 비우고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버님 추모 1주기, 작년엔 경황이 없어 생각하지 못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일과 하루 차이다. 이젠 잊을 일도 없겠다. 사실, 올해는 아버님 추모일이 언제인지 지난해 달력을 찾아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랬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이 세상과 이별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셨고, 우리에게는 아련한 추억만 남겨두고 가셨다. 그 이상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섭섭하지만 좋은 추억들과 흔적들 조금만 남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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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 백선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한방에서 귀한 약재로 사용되어서인지 야생에서 점점 만나기 어려워진다. ⓒ 김민수


부모님의 흔적과 추억은 재산이나 물질적인 것에 남아있지 않았다.

함께 걷던 길, 함께 먹었던 음식, 함께 가꾸던 밭,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에 앉아 계셨던 그곳을 내가 재현함으로 부모님은 기억되고 추모된다.

초고령사회가 됐다고 하지만, 나는 내 육신을 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내 몸의 근육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으며 몸은 비대칭화 돼 가고 있다. 지난해가 다르고 올해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체력이 더 좋아하지는 나이는 지났다는 판단에 은퇴 후의 삶을 앞당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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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아주 작은 꽃, 그러나 가만히 바라보면 그 여느 꽃과 다르지 않게 예쁜 꽃이다. ⓒ 김민수


큰 명아주는 지팡이 재료로 좋다고 한다. 나도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나이가 되겠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때쯤이면 '안락사' 혹은 '존엄사' 같은 것들이 합법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는다.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면서 연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연 앞에 서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꼬리도마뱀의 꼬리만큼의 자연으로 위안을 삼으며, 진정한 흙이 아닌 화분에 담긴 흙에 생명을 가둬 키우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물론 행복한 일이겠지만, 자연이 주는 그 행복에 비하면 나무 그늘이 아닌 시멘트 담벼락 사이의 그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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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씨앗 민들레, 퍼지고 또 퍼지는 민들레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 김민수


세상 소식도 자연 속에서는 완충 작용이 일어났다. 충격이 덜 느껴지는 만큼 반응도 덜 날카로웠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니 내가 받는 상처도 덜했다.

도시의 삶도 불행하거나 절망적이거나 하진 않았다. 인생에 만일은 없지만, 만일 내가 도시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자연의 삶을 선택했더라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거기에 대한 미련을 갖듯, 거기였다면 여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인생이란, 늘 내가 걸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있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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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무 국수나무에 꽃이 피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는 신호탄이다. ⓒ 김민수


신기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서 피어나는 자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 자연을 보면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연에서 배운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에게서 배우지만, 자연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은 오히려, 인간이 없는 곳에서 더욱 더 풍성하다. 그런데도 마치 인간은 자신들이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이런 가치의 전도가 가능한 인간, 그것이 비인간화를 가져오는 요인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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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하얀 산딸기에서 빨간 산딸기가 열린다는 것, 그것은 신비로운 기적이다. ⓒ 김민수


점심 밥상에 올릴 것들을 조금씩 얻어왔다. 아직도 연한 오갈피잎과 줄기, 부드러운 머위 잎과 줄기, 왕씀배 이파리, 민들레 이파리, 연한 더덕순, 개미취, 질경이, 산초이파리... 어떤 것을 데쳐서 먹고, 생으로 먹고, 삶아서 볶아 먹는다. 저마다 향이 다르다.

혼밥시대, 인스턴트 식품의 전성시대. 나는 그 맛의 근원에 대해 의심한다. 자연에서 온 맛은 아닐 터이니, 과연 그것이 우리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게는 할지언정 음식에 담긴 영적인 측면도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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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 부모님 무덤가에 심어둔 불두화가 탐스럽게 꽃을 피웠다. ⓒ 김민수


부모님 무덤가에 불두화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부처님 오신날 즈음에 마치 연등처럼 피어나는 꽃이다. 이 꽃이 이곳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오래 전이다. 먼저, 할머니 산소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 주변에 불두화를 위시해서 많은 야생화를 심으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님은 나란히 할머니 산소 아래에 묻히셨다.

어머니와의 추억은 이런 방식으로 내게 연결돼 있다. 무덤가에는 큰까치수영들이 한창 자라나고 있고, 무덤가 잔가지 많은 나뭇가지는 곧 피어날 으아리덩굴이 휘감아 자라나고 있다. 어머님이 할머니 산소를 오가실 때 뿌리곤 하셨던 더덕과 도라지는 이제 야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자연 앞에 오랜만에 섰다. 그리고 걸었다. 다시 한번, 자연과 친해지고자 한다. 그 걸음걸이에 함께할 것들과 세팅을 마쳤다. 아주 가볍다. 이제 무거워진 몸만 조금 가벼워지면 모든 것은 완벽하다.
#달팽이 #꽃마리 #자연예찬 #느릿느릿 #명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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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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