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왜 보수적일까?

[서평] <권력과 교회>로 보는 권력과 교회-대형교회... 그들만의 리그

등록 2018.05.24 10:15수정 2018.05.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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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권력과 검찰」, 「권력과 언론」에 이어 「권력과 교회」를 펴냈다. 창비가 검찰과 언론에 이어 교회를 권력으로 주목한 이유는 개신교 신자인 파워 엘리트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하며, 동시에 권력의 장치로서 개신교의 사회적 파급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개신교 권력화 매커니즘을 총괄적으로 점검하고, 그런 권력의 독과점 현상을 해체해 권력의 평등한 분배에 기여할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도권 신학 바깥에서 민중신학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인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네 명과 대담을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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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교회 책표지 김진호 지음, 강남순, 박노자, 한홍구, 김응교 대담. 창비 출판 ⓒ 창비


「권력과 교회」는 '기독교인은 왜 보수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 질문은 현상유지를 원하는 게 종교라는 상식을 놓고 보면 상당히 의외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데 개혁적일 수 없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게 어디 종교뿐인가? 정치, 종교와 경제계를 비롯한 각종 세속 이데올로기도 다를 바 없다. 지난 21일 여야가 한통속으로 비리 의혹이 있는 자유한국당 염동열·홍문종 의원을 감싼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티격태격 싸우지만 현상유지를 원하는 정치판에서 현역 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어리석었다. 그들은 교주의 사익을 추구하는 유사종교집단이나 다름없었다.

LG그룹이 20일 구본무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구광모 시대를 공식화했다. 무려 4대에 걸친 경영권 세습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만 남한 역시 권력과 부의 세습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대부분 언론은 경영 세습을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권력과 지배세력은 언제나 좋은 말로 명분과 현실 등을 포장하여 신진들에게는 진입장벽을 치며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해 왔다. 불공평하고 불의하게 누리는 특권마저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이 누리는 독점적 권력과 엄청난 부와 명예는 제도로 뒷받침되고 강화된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당하는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둔갑하고, 먼 훗날 어떤 보상이 있을 거라는 허황된 논리를 주입한다. 그런 면에서 권력은 현상 유지를 희망한다. 종교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기독교인은 왜 보수적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권력'이라는 화두를 갖고 한국 교회의 복합적인 문제를 조명하기 위함이다. 첫 대담자로 나선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는 교회를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한국사회가 지닌 지독한 문제들이 교회 안에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한국 사회로부터 분리해 분석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요. 교회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요." -37쪽


강 교수는 교회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여성이 한복을 입는 행위 기저에는 남성은 진취적이고 여성은 전통의 보존자라는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한복이 더 이상 평상복이 아닌데도 특별한 행사 때마다 한복을 입은 여성을 등장시켜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역할로서 이상화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꽃'인 거예요. 남성들에게 다소곳하게 인사하고 남성들의 온갖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하는 거죠."


강 교수는 탈식민 담론에서 남성은 양복을 입히고 여성은 전통 복식을 입는 것은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상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일본 내 민족학교나 북한에서 여성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남성은 바지를 입는 것을 떠올려 보면 강 교수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한국 교회에서 여성이 한복을 입는 행위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성 관념이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강 교수는 제도적 틀과 교리로부터 예수를 구해서, 그를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믿는다' 또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저는 모든 개별적 인간들의 권리를 확장하는 일에 헌신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59쪽


대형교회, 그들만의 세상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 년에 영화 한 편 찍지 않는 연예인이 떴다. 과거 이름을 날렸던 유명배우가 연예계 활동을 재개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명박이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등 학연과 교회 인맥, 지연 위주로 인재를 발탁했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는 이때부터 저신뢰 연줄형 사회인 한국에서 '교맥' 즉 대형교회 인맥이 중요해졌고, 배타성이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내부 결합이 강력한 소사회는 대체로 배타적이죠. 그 소사회가 만약 개방적이고 열린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한국 교회는 성리학 이상으로 배타적입니다. 성리학자들이 애용했던 '이단'이라는 말을 지금 교회가 마구 사용하잖아요." -116쪽


이러한 배타성을 저자는 전형적인 '부드러운 야만'이라고 칭한다. 야만이 부드러울 수 없다는 점에서 도종환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야기한 것처럼 시적이나 슬픈 현실이다. 대형교회의 위선을 꼬집고 있다. 내외부에서 봤을 때 배타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상 배타성이 작동하는 소사회 구성원들은 겉으로 봤을 땐 점잖다. 그러나 그 모임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편견을 은연 중 갖게 된다는 점에서 야만적이다.

"'부드러운 야만'이란 누군가를 우리의 기억에서 삭제해가는 일을 가리킵니다. 생각을 하면 호혜를 베풀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죠. 그렇게 기억에서 삭제된 이들에 대한 몰이해가 발생하고, 이는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119 


생각하면 호혜를 베풀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연습한다'는 말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음을 뜻한다. 배제를 위한 연습은 배타성을 낳고 편견을 조장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교회의 혈통세습은 예외적 현상일지라도 권력의 독과점과 대물림까지 포함한 '권력세습'은 대단히 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혈통세습 그 자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 부당한 권력의 남용이 너무나 편만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세습을 둘러싼 전체 과정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존경받지 못하는 성직자가 무모하게 권력을 추구하는 것,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 낙관주의적인 승리에 대한 집착 등은 기독교의 뿌리 깊은 암초 같습니다." -198쪽


현재 한국교회는 '보수주의-권력의 독과점과 세습-양적 성공지상주의'가 악순환하며 서로를 강화하는 '나쁜 순환 고리'가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나쁜 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대형교회 패러다임에 흠집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대형교회의 뼈아픈 성찰이 없다면 검찰, 언론, 재벌 등에 보이는 나쁜 권력의 주역들처럼 개신교 역시 나쁜 권력이라는 사회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44 


저자가 표현한 '부드러운 야만'은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개신교는 더 이상 '부드러운 야만'을 연습해선 안 된다. 배제가 아니라 호혜와 섬김, 나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신앙은 무엇을 믿느냐보다 어떻게 믿느냐를 고민하라는 권면이다.

권력과 교회

김진호 외 지음,
창비, 2018


#대형교회 #세습 #권력 #도종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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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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