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도 사랑한 서울의 '비밀 정원'

도심 속 자연이 주는 위로, 백사실 계곡을 찾아서

등록 2018.05.24 13:54수정 2018.05.2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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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속 비밀 정원'

백사실 계곡(부암동 산25번지 일대)에 붙는 단골 수식어다. 겉으로 드러난 곳이 아니라 서울 토박이들마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몇 해 전 유명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뒤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비밀 정원'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백사실 계곡은 1급수 지표종인 도롱뇽을 비롯해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가 서식하고 있는 청정 생태 지역이다. 계곡 옆으로는 조선 시대 별서 터(백석동천, 사적 제462호)가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도 매우 크다.

이곳으로 가는 코스는 다양하지만 세검정 물줄기를 따라 현통사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택했다. 비가 제법 내린 뒤라 계곡물이 불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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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을 따라 흐르는 계곡 북악산에서 내려온 물은 백사실계곡을 따라 세검정으로 흐른다. 정자와 하나된 계곡의 모습은 환상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 채경민


이정표를 따라 언덕길을 넘어 10여 분을 올라갔다. 오밀조밀 모인 오래된 집들과 산 너머로 보이는 신영동 일대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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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신영동 일대 백사실 계곡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신영동 주택가 모습 ⓒ 채경민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자 현통사라는 절과 함께 계곡이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 위로 거대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떨어지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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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통사 백사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현통사 아래 바위를 따라 폭포처럼 흐른다 ⓒ 채경민


숲길로 들어서자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새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여기에 바람 소리, 계곡의 물소리까지 어우러지며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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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 숲이 제법 울창하게 우거졌다. 물소리와 어우러진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등산객을 반긴다. ⓒ 채경민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도롱뇽 서식지를 알리는 표지를 만나게 된다. 산림청은 지난 3월 도롱뇽이 산란한 알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태 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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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뇽 서식지를 알리는 표지판 1급수 지표종인 도룡뇽의 서식터다. 산림청은 지난 3월 도룡뇽이 알을 낳은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채경민


계곡의 중심부에 다다르니 조선시대 별서 터인 백석동천이 나타났다.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다시 말해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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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계곡의 상류 상류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 유일하게 손을 담글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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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계곡 부암동 백사실 계곡의 상류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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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계곡 계곡의 중심부. 비가 온 뒤라 제법 물이 불었다. 생태 환경 보호를 위해 계곡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 채경민


주민들은 이곳을 백사실 계곡으로 불렀는데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몇 해 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추사 김정희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문헌에서 찾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이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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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 터 백사실에 남아 있는 별서 터. 문화재청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채경민


돌계단에 앉아 한참 동안 연못을 바라보았다. 고즈넉한 정자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겼던 옛 선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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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 터 앞 연못 조선시대 별사가 있었던 자리 앞으로는 넓은 연못이 있다. 개구리를 비롯한 다양한 수생 동식물이 살고 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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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 가득한 백사실 계곡 백사실 계곡의 상류 ⓒ 채경민


푸르름이 깊어지는 계절, 멋진 카페를 찾아 차 한 잔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부암동 백사실계곡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 자연이 주는 위로의 힘을 느끼며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내 손안에 서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백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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