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를 논할 때 '물'이 중요한 이유

[서평]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등록 2018.05.24 11:25수정 2018.05.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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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와 불가분의 관계인 패철(나침반) ⓒ 임윤수


어느 대선 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조상 산소를 옮겼다고 했습니다. 풍수 때문이라고 소문이 났고, 광명천지 요즘 세상에 무슨 케케묵은 미신이냐며 미심쩍어하는 표정들로 수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 세상인심과 무관심 하지 않은 게 풍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이를 먹다보니 1년에 몇 번쯤은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게 되고, 산소를 쓰는 장지(葬地)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묘를 쓰는 곳에 가게 되면 단골 주제로 회자되는 게 '풍수'와 '명당'이라는 말입니다.


지관(地官) 주변을 맴 돌다 기회가 되면 슬쩍 다가가 여기가 왜 명당이냐고 물어봅니다. 좌청룡우백호, 남주작북현무하며 산세를 따지고, 혈(穴)이 어떻고 수구가 저렇고 하며 좌향을 설명하지만 무슨 말지 쉬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듣지 않으니 아무리 설명을 잘해줘도 알아듣는 게 별로 없는 게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부러 묻고,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이라면 지관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는 설명이거나, 혹세무민하는 설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대선 후보가 조상 산소를 옮긴 게 풍수 때문이라고 하면 미심쩍어합니다. 마을 앞에 도로가 신설되면서 함께 생긴 높은 방음벽을 비보풍수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방음벽을 설치한 게 신설된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환경시설이라고 하면 이를 미심쩍어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풍수'라고 하면 왠지 미신을 좇는다는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이지만, '환경' 때문이라고 하면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방음벽처럼 인공건조물을 높이 올리는 모두가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반응입니다.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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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 지은이 최원석 / 펴낸곳 ㈜도서출판 한길사 / 2018년 4월 20일 / 값 24,000원 ⓒ ㈜도서출판 한길사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지은이 최원석, 펴낸곳 ㈜도서출판 한길사)은 비보풍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2000년부터 논문 등으로 발표한 연구물에 내용을 보완해 단행본 체재에 맞춰 였은 신간 도서입니다.

책에서는 풍수의 유래에서부터 변천사, 현실 속에서의 풍수까지를 문헌과 기록에 근거해 조명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풍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류사적 역사와 지역, 인물과 삶 등에 어떻게 투영돼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관계로 역할 하거나 기능했는지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풍수는 관음증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호기심 정도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흥미 위주의 내용이 아닙니다. 귀엣말로 혹세무민하고, 소위 작대기 풍수 노릇쯤 할 수 있는 얄팍한 풍수관련 내용이 아닙니다.

풍수의 본질을 원천적으로 이해하고, 풍수의 실체를 깊이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설명하고, 객관적 전거들을 결과로 설명하고 있는 입체적인 풍수입니다.

삶터풍수에서 수는 산, 방위와 함께 중요한 자연적 구성요소에 해당한다. 사실 풍수라는 용어도 "바람을 갈무리하고[藏風], 물을 얻는다[得水]"라는 데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물은 풍수에서 핵심요소가 된다. 풍수이론 중 득수법이 있는데, 이것은 물(지표수)에 대한 일종의 전통적 환경평가이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풍수에서 물이 왜 중요하다고 할까? 물은 생명력의 징표로 땅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말해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풍수에서는 땅에 흐르는 생명의 기운[生氣]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기운은 물을 얻은 곳에 있다 본다. 다시 말해 풍수에서 생명의 조건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304쪽-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물에는 발원지가 있습니다. 풍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수가 역사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오늘날 논문으로 구성될 수 있을 만큼의 학설과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뿌리 같은 원리, 발원지 같은 근거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뿌리 같은 원리와 발원지 같은 근거가 논쟁을 거치며 검증되고, 검증을 거치며 이어지고 확립된 게 삶 속에서의 풍수라 생각됩니다.

환경으로부터 상관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환경과 무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황량한 곳 보다는 아늑한 곳, 음습한 곳보다는 양지바른 곳, 살벌한 경치보다는 풍광이 좋은 곳, 교통이 불편한 곳보다는 교통이 좋은 곳,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곳보다는 좋은 곳을 선호하는 건 인지상정이라 해도 좋을 인간 본연의 본능입니다.

풍수와 불교, 풍수와 유교는 양팔저울처럼 서로 균형 잡아

'풍수'를 다른 말로 등치해야 한다면 '환경'과 '조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 됩니다. '환경'이 정량화해 수치(數値)로 계량화 할 수 있다면 '풍수'는 정성(定性)적인 요소 까지를 아우르기에 다소 애매함이 있을 수 있다는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풍수의 인문전통은 풍수와 불교, 풍수와 유교가 마치 양팔저울처럼 서로 균형을 잡으면서 한편으로는 견제하고 한편으로는 도우며 조화롭게 운용되었기에 가능했다. 땅의 여하에 따라 인사[人事]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풍수적 인식틀과 지리결정론적인 사유는,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어디라도 정토일 수 있고 정토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선불교적인 인식틀과 유심주의적 사유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513쪽-


모르면서 무조건 추종하는 풍수는 맹신일 수 있고 미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나 조건이라는 말로 등치시킬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게 풍수라고 생각한다면 풍수는 또 다른 형태의 학문이라는 걸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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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보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방향을 읽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층으로 돼 있는 패철 ⓒ 임윤수


어느 누구도 인간들의 삶이 환경(주거, 교육, 교통, 심지어 투자 환경까지)과 조건에 좌우됨을 인정하고, 사람들의 건강이 튼튼한 혈관과 맑은 혈액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할 것입니다. 풍수 역시 이런 환경을 따지고 저런 조건을 갖추려 노력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강에도 선천적인 건강이 있고 운동이나 약물로 보강하는 후천적 건강이 있고,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이 있듯 조금 생경할지 모르지만 풍수에도 자연풍수, 비보풍수, 마음풍수가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각각의 풍수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이력과 인간사에 끼친 이런 영향과 저런 관계까지를 읽게 된다면 풍수가 무엇인지를 알고, 왜 풍수인가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폭 넓어지며 두터워 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 지은이 최원석 / 펴낸곳 ㈜도서출판 한길사 / 2018년 4월 20일 / 값 24,000원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 그 실천과 활용의 사회문화사

최원석 지음,
한길사, 2018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최원석 #㈜도서출판 한길사 #마음풍수 #비보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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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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