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은 정치적 야합의 대상이 아니다

등록 2018.04.30 07:35수정 2018.04.3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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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야가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언론사가 지난 24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여야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당과 야당이 각각 7인과 6인을 추천해 총 13인으로 늘려고, 사장 선임 시에는 이사회 5분의 3 이상(8인 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선출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 최악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개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여야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이 안에 합의를 했다는 것이 보도의 주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언론노조와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공영방송사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찬성이 아닌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자는 수정안을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내용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은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했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은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는 국민추천제라는 대안을 이미 제시했고,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동철 원내대표가 제안한 수정안에 대해 최종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 카드로 여야가 방송법 개정을 논의했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방송은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기관으로 최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방송법 개정은 이러한 방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야가 밀실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정당끼리 나눠 먹는 형태의 야합을 논의했다는 것은 정치권이 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방송법 개정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도 아닌 원내대표 간 비공개 만남에서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추천권을 나눠 먹는 협상을 통해 방송법 개정을 논의했다는 것은 정치권이 방송의 독립성 보장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난해 박근혜 적폐 정권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를 새롭게 출범시킨 촛불혁명의 주역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국민을 대신해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 다시는 정권의 하수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기를 방송법 개정을 통해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방송법을 이용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분노마저 느끼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영방송이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공영방송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사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의 개입이 완전히 차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국민참여형 공영방송 사장 선출제를 방송법 개정안에 담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일반인으로 구성된 '사장추천국민위원회'가 사장 후보들에 대한 공개 면접을 실시해 복수의 사장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도록 하고, 이사회는 '사장추천국민위원회'가 추천한 후보들 중에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최종후보 한 명을 선출해 대통령에게 공영방송사 사장 후보로 추천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방송법을 논의하는 것은 방송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로 방송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원래 방송법 개정의 목적을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정치 야합이다. 따라서 국회는 이제 이러한 정치야합을 중단하고 어떤 형태로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줄 것인지, 그리고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최진봉 시민기자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 기사는 뉴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방송법 #방송의 독립성 #공영방송 #최진봉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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