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 없는 축제한마당 '평화와 통일의 길로'

21일 열린 '북한 바로알기' 통일축제한마당

등록 2018.04.24 16:26수정 2018.04.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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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 작가의 통일그림전 광화문을 지나가던 시민이 통일의 염원을 담아낸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 박명훈


지난 4월 21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는 풍성한 통일행사가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시민들은 정상회담을 가리켜 "평화와 통일의 길"이라는 무대 위 사회자의 발언에 호응하며 머지않아 도래할 평화통일의 봄을 만끽했다.

오후 2시께 북측 광장 옆길에 설치된 천막에서는 '북한 바로알기'를 주제로 한 행사준비가 한창이었다. 부스로 들어서는 길목에선 서울역=>평양역 2만5000원(194km), 서울역=>모스크바역 62만9000원(8146km) 등 남과 북의 협력으로 대륙으로 뻗어나갈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자동찻길을 손수 담아낸 수채화 여러 점이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남한과 닮은 듯 다른 북한의 일상을 소개하고 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다채로운 이벤트의 막이 올랐다. ▲이진석 작가의 통일그림전 평화철도 ▲'미국은 제주 4.3에 대해 책임져라!'를 구호로 내걸어 4.3 당시 미군의 개입으로 민중이 학살되었음을 알리며 미군과 유엔의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판문점 기념사진 찍기 ▲2018 DMZ 평화통일민족예술제 ▲진천규 기자의 평양이야기 ▲통일체험마당 ▲통일헌법을 만들어요 ▲정상회담 환영 단일기 거리조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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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규 기자의 평양이야기 한 남성이 ‘사진전’ 진천규 기자의 평양이야기를 둘러보고 있다. ⓒ박명훈 ⓒ 박명훈


최근 북한의 풍경을 직접 취재한 '사진전' 진천규 기자의 평양이야기를 둘러보던 중년의 남성 참가자는 "(북한이) 괜찮게 잘 사네"라고 말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단일기 배지 판매, 스마트폰을 활용한 평양 VR(가상)체험, 얼굴에 한반도 페인팅 그리기, 시대흐름에 맞게 남과 북이 쌍방을 존중하는 '신설 통일조항'을 담은 통일헌법의 찬반 여부를 묻는 스티커 설문에 발걸음을 멈추고 부스에 머무르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스위스 취리히 소재 방송사 SRF(Schweizer Radio und Fernsehen) 취재진의 밀착취재도  인상 깊었다. 이들은 행사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과 부스 주변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또 통역원을 대동해 행사 관계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며 연거푸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밀었다. 관계자들은 그에 화답해 자리에 서 손짓을 동원하며 열정적으로 취지를 설명했다.

"남북 노동자 모두 다 함께" 통일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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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F 취재진 SRF 취재진. ⓒ 박명훈


오후 3시 30분부터는 북측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노동자가 바라는 통일세상 노동자 평화통일한마당'이 열렸다. 현장엔 민주노총을 필두로 각지에서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모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반도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한반도가 평화의 기운, 통일의 기운으로 여름만큼 뜨겁다"고 목소리 높였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통일실천단은 무대에 올라 코미디언 김영철의 노래 <따르릉>을 개사해 "멈춰라 멈춰라 전쟁훈련 멈춰라. 지금 당장 평화협정 체결해"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췄다. 참가자들은 "평화협정 체결하자" "조국통일 실현하자" "자주교류 확대하자" 등의 구호에 손팻말을 높이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이날 통일한마당의 백미는 '토크, 청년이 만나는 평화통일'이었다. 젊은 사회자가 "노동자들이 그동안 어떤 자주교류를 했을까"를 묻자 금속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건설기업노조 소속 통일위원장들이 북에 다녀온 생생한 경험담을 쏟아내 이목이 쏠렸다.

서울과 평양 노동자 간 '경평축구대항전'에 참가한 바 있는 엄강민 금속노조 통일위원장은 "2015년 손님으로서 북엘 갔었죠. (남측) 선수들에게 세게 제대로 뛰라고 했더니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못 하더라"며 "이번에 경기를 (홈그라운드인 서울에서) 하게 되면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엄 위원장은 "남북 노동자 만남에 정치적 계산 없는 민족의 맏형인 우리 노동자들이 평화통일을 활짝 열 마중물이 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남북 교육교류와 관련한 경험담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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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리고 통일 참가자들이 ‘평화 통일’이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 박명훈


장두철 전교조 통일위원장은 "2004년 남북교육자대회가 금강산에서 있었고 공동수업을 하기로 했다"면서 "북에 있는 (교육)단체와 (남측의) 전교조, 교총과 올해도 (남북교육자대회가) 진행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장 위원장은 사회자가 '북한과의 공동수업은 위험하지 않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지자 "애들이 빨갛게 되나요? 수업을 가지고 파란색이다 빨간색이다 하는 건 의미 없다. 와서 직접 보시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양현지조사교육사업, 고구려유적수학여행 등의 북한현지방문을 비롯해 남측 참교육실천대회에 북측 선생님을 초청하는 방안 등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한 건설기업노조 통일위원장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 노동자가 평양에서 함께 만났던 감격스러운 순간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능라도 경기장에 (북측 주민들이) 10만 명 넘게 모여 외친 우렁찬 함성이 지금도 제 가슴에 쟁쟁하게 울린다"며 "2007년 량각도호텔에서 내려다 본 평양은 주체사상탑 주변에 들어온 불을 제외하면 스산했지만 2015년은 총천연색이었다. (북한의) 발전을 미래과학자거리를 통해 확인했다. (북한에서는) 평양속도란 말도 있다"고 말했다.

공개무대에서 '북한 발언'이 화두에 오른 것이 얼마만일까. 지난 2015년 1월 10일 박근혜 정권 시절, 여러 차례 북한을 찾은 재미동포 신은미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한국에서 추방됐다. 추방 기간은 2020년까지 5년간, 당시 박근혜 정권 휘하의 검찰은 신 씨가 한국에서 열린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대동강 맥주는 맛있다"고 한 발언에 재갈을 물렸다.

이번에 통일한마당에서 제기된 노동자들의 발언은 신 씨의 발언보다 훨씬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 주변에 배치된 경찰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새 국면이 '종북' '빨갱이' 등의 색깔론에 시달리던 우리사회의 상황을 크게 뒤바꿔놓은 것이다.

평화통일의 봄을 부르는 노래, 사람들

같은 무대에서 오후 6시부터 열린 '국민한마당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에선 노래극단 희망새가 첫 무대를 장식했다. 희망새가 부른 북한가곡, 가수 서현이 평양에서 부른 <푸른 버드나무>와 현송월 삼지현관현악단장이 "독도도 내 조국입니다"를 넣어 개사해 큰 화제를 모은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입니다>가 버젓이 울려 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블랙리스트에 오른 방송인 김미화 씨는 통일염원을 담은 시 <먼 벗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하기에 앞서 "'우리 손으로 만드는 평화'란 팻말이 보였다"며 "그래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거야. 이게 진짜 실화입니까?"라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 씨는 남북 대중문화예술인의 교류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북측 동포가 남측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사회를 봤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김 씨는 "그 때 제가 사회를 보면서 제가 대한민국 최고미인이라 이 자리에서 사회를 보게 됐다고 했더니 빵 터지시더라고요"라면서 "이렇게 말이 통하고 서로 웃을 수 있는데 왜 우리 못 만났습니까?"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에 4차례나 공연을 다녀온 가수 최진희는 "북한에서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드리겠다"며 지난 평양공연에서 북측 주민들을 감동에 빠트린 <뒤늦은 후회>를 노래했다. 이어 "여기 모인 분들의 생각이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실현되는 날까지 앞으로 전진하자"며 통일을 염원했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어깨동무 내 동무'의 배우들은 첨예했던 남북 갈등이 해소돼가는 상황을 연극으로 그려냈다. 북한의 가곡으로 196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임진강>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며 남측 12살 소녀 장다나가 등장한다. 임진강에 놀러왔다 실수로 개풍군으로 넘어간 장다나는 북측의 동갑내기 소년 리은혁과 우연히 마주친다.

"난 계속 여기 있었어. 동무가 갑자기 나타난 거지"라는 리은혁의 말에 장다나는 "동무라고 하지 마 기분 나빠 북한사람 같아"라고 말하며 대치한다. 하지만 대화와 만남을 통해 서로 쌓여 있던 해묵은 오해가 봄날처럼 풀린다. 장다나는 다시 임진강을 건너 남측으로 돌아가면서 "또 만날 수 있을까?"라 묻고 리은혁은 "그럼 통일되고 만나면 되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미래 통일조국의 평양, 리은혁과 결혼해 평양에 거주하는 어른 장다나가 남편과 함께 하는 서울나들이에 들뜨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밖에 남녀어린이들로 구성된 평창스노우합창단이 노래 <고향의 봄>과 <아름다운 나라를> 연달아 합창했다. "아름다운 나라"를 외치며 단일기를 단체로 치켜든 아이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클로즈업됐고 시민들이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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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경의선 타고!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노래 <경의선 타고>에 맞춰 '기차놀이' 몸짓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박명훈


마지막으로 노래패 '우리나라'가 무대에 올라 신곡 <가자 통일로>로 들뜬 분위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바로 이어 백두산 천지에 오른 감격을 노랫말로 풀어낸 <백두산에 올라>가 펼쳐졌다. <경의선 타고>에선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모든 참가자들이 벌떡 일어섰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쳐 통일의 봄길로 내달리는 흥겨운 '기차놀이'를 끝으로 정상회담 성공을 축복하는 행사의 막이 내렸다.

이날 통일행사에 반발한 이른바 애국보수집회가 광화문광장 주위를 돌며 이따금 항의 차 메가폰을 들긴 했지만 시선을 사로잡진 못했다. 어린아이들은 풀밭에 놓인 거대한 단일기에 앉아 통일을 바라는 글귀를 남기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우리사회가 색깔론이 더 이상 '씨알도 먹히지 않는' 내일로 전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
#한반도 #남북정상회담 #김정은 #문재인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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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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