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배달 왔습니다'... 치킨집 사장님이 왜?

단골 치킨집에 붙은 '임대'... 계절보다 더 빨리 바뀌는 간판이 아쉬운 이유

등록 2018.04.12 10:41수정 2018.04.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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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4월이라 하기엔 무색하게 덥다. 우리 동네 중심지이자 동네 주민들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 방죽어린이공원이다. 목련과 개나리, 벚꽃, 라일락까지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면서 연둣빛 이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그때도 달력은 4월 중순께였지만 초여름이 시작되는 것처럼 더웠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고 저녁이 되면 집 근처 방죽어린이공원 근처는 한층 번잡해진다. 고깃집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고기 냄새가 콧속을 자극한다. 막 차오르는 생맥주 거품을 보면서는 한 모금 마시고 싶었던 적이 있다.

쇠꼬챙이에 꿰어져 전기통구이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치킨. 언제부턴가 실과 바늘처럼 치킨이 있는 곳에 으레 따라오는 맥주. '치맥'은 우리 동네 상권을 주도하는 종목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공원 근처 길을 오가며, 저 값이라면 그냥 집에서 '마마치킨(가명)'에 파닭 반반을 주문하고 식구들과 같이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반반이죠?"
"네. 지난번처럼 해주세요."

주문을 하고 나면 '마마치킨' 아저씨가 오는 시간을 대강 알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나는 미리 문을 연다. 아저씨한테 현금으로 계산하고 물건을 받는다. 나무젓가락이 없고 후추소금도 없다. 절임 무는 두 개. 대신 콜라가 없다. 그리고 선물로 오는 쿠폰을 챙겨 위쪽 싱크대 한구석에 놓는다. 열 개가 모이면 파닭 반반을 한 번 그냥 먹을 수 있다. 쿠폰으로 주문한다고 해도 아저씨는 친절했다. 맛과 양이 변함없었다.

'마마치킨'은 동네서 가깝고 믿고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이 없을 땐 주문해서 먼저 먹고 나중에 계산할 수 있었다. '마마치킨'은 부부가 하는 체인점이었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고 부인은 안에서 조리를 맡았다. 두어 평쯤 되는 가게 안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치킨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면서 사는 얘기들을 나누곤 한다. 우리가 이곳에 살면서부터 '마마치킨'을 먹어 왔으니 6년이 넘는다.


마마치킨 아저씨는 마트 노동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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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근처 동네 골목 마을버스가 다니는 동네골목 ⓒ 한미숙


"어, 여기 '통통치킨(가명)'이 생기네?"
"그러게, '마마치킨' 아저씨네 괜찮을까?"

어느 날 '마마치킨' 인근에 연예인 전신모형을 가게 앞에 세운 '통통치킨' 간판이 걸렸다. 남편과 나는 '마마치킨' 아저씨네가 걱정스러웠다. 단장을 마친 '통통치킨'의 깔끔한 새 테이블은 밖에서 보기에도 환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사람들이 치맥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몰렸다. 시나브로 계절이 바뀌었다. 우리는 이따금 습관처럼 친근하고 익숙한 '마마치킨'에 주문을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아직 잘 버티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어느 날, '통통치킨'에서 정말 스무 걸음도 안 되는 곳에 새로운 간판이 또 걸렸다. '또롱이통닭(가명)'. '통통치킨'이 젊은 연예인을 내세웠다면 '또롱이통닭'은 갓 쓴 옛날 선비가 닭 한 마리를 안고 있는 그림을 앞세웠다. 불과 100여m도 안되는 거리에 치킨집 세 군데가 나란히 있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얼마 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마마치킨' 아저씨네 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있는 걸 보았다.

'임대'

결국 '마마치킨' 아저씨네가 밀려난 것이다. '임대' 쪽지가 한 달 넘게 붙은 걸 볼 때면 그곳을 지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간이 얼추 지나서 '마마치킨' 아저씨가 같은 동네의 중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그 마트는 우리 동네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다. 나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그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한다. 쌀과 생수배달을 부탁하고 온 날,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마마치킨' 아저씨다.

"하하,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멋쩍은 듯 인사했다. 나도 잘 지내시느냐고 겸연쩍게 웃었다. 며칠 후, 아저씨네 가게에 붙었던 임대 종이가 사라졌다. 순서인 듯 공사가 시작되었다. '마마치킨' 간판이 내려가고 새 간판이 올라갔다. 커피전문점이었다. 아저씨는 마트 로고가 새겨진 차를 운전하며 배달 일을 한다. 동네 떡집이던 곳은 주점이 되었고, 얼마 전까지 학생들이 들락거리던 문구점은 중국집으로 바뀌었다.

꽃잎 떨어진 나무는 이파리가 자라면서 점점 초록을 발산한다. 방죽어린이공원에는 조만간 자귀나무 이파리들이 무성해지고 꽃이 필 것이다. 나무는 제자리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는데 동네 간판은 한철, 한 계절도 못 넘기고 바뀌어간다. 우리 동네만 그럴까?
#치킨 #치맥 #간판 #동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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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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